Bible Study/구약 성서

모든 "나쁜 고고학"을 경계하자-켄터키 사태..ㅋ

진실과열정 2019. 7. 15. 09:09

"마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거예요. 우리 마을을 되살리는데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어요?"


'켄터키'의 어느 시골의 주민이 던진 이 말은, 차라리 기획의 '거룩한' 의미보다 더욱 실리적이어서 안심이 된다. '켄터키'는 시골의 상징이고, 그 시골 중에서도 시골이었다고, 뉴스는 말한다. 사실 그러한 시골일수록 변화나 진보라는 생각에는 거리가 멀고, 근본주의적인 문자신봉주의가 생겨나기 일쑤다.


노아의 방주를 재건하는 일은, 성막 만큼이나, 기독교의 숙원사업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실 성서 그 어디에도, 성전이 세워진 이후 성막을 다시 만들려는 생각 자체를 구상하지 않았었다. 마찬가지로 유다왕국의 어느 누구도, 심지어 '건축왕' 솔로몬 조차도!, 노아의 방주를 시온에 만들려고하지 않았다.


제임스 쿠걸은 보수적 신앙전통의 성서읽기에 나타나는 4가지 현상들을 지적한바 있다(How to Read the Bible, 2007: 14-16). 간단히 정리하면, (1) 성서는 본질적으로 신비로운 텍스트이(어야만 하)며, (2) 성서를 읽는 현재 독자들에게 교훈이( 되어야만 하)며, (3) 성서는 완전하게 잘 짜여있으며(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며), (4) 결국 성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말씀이다. 주목할 점은, 기독교의 성서읽기 전통에 훨씬 앞서, 유대교의 보수적 읽기가 존재했으며, 그 영향을 (많은 기독교인들이 모르는 상태에서) 현재 기독교의 모양에 크게 끼쳤다는 점이다.


특별히 (3)은 비평적 읽기가 제기하는 문제이다. 쿠걸이 예를 들고 있는 재미있는 성서해석이 있는데, 바로 출 32장에서 느닷없이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배역'이다. ('인간의 죄성'과 같이 흔해빠진 "신학적 프레임" 해석의 폭력을 제외하고,) 쿠걸은 "왜 아론은 백성의 요구를 들어주었는가?"라는 질문을 고대의 해석자들이 던졌다고 말한다. 고대의 "보수적 해석자"는, 성서 안에는 그 어떠한 '모순'이 없어야 하므로, "훌"을 생각해낸다. 즉, 일찌기 '아론'은 '훌'과 떨어질 수 없었던 관계였다(출 17:10). 훌은 모세의 부재시에 충분히 리더쉽을 펼칠 수 있었던 위치라는 말이다. 그런데, 출 32장이라는 위기의 상황에서 과연 '훌'이 없었을리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보수적 해석자'는 한가지 생각을 집어 넣는다(James Kugel 2007: 282f): "백성은 우상을 요구했고, 훌이 먼저 나서서 백성을 막아나섰지만, 결국 백성들의 폭력으로 훌은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러한 해석자들은, "그러므로 아론은, 자신의 목숨을 아꼈던 비겁자가 아니라, 오히려 백성들과 평화를 만들어낸 '영웅'이었다"라고 평가했다는 점이다. 사실, 현대의 역사비평적인 입장(F.M. Cross 1973: 199; R.E. Friedman 1997: 72)에서는 이러한 보수적 읽기보다, 북왕국 전승을 비판하고 있는 남왕국 서기관의 이데올로기 읽기가 더 합리적이다.


어찌되었건, 문자를 평면적 차원에서 신봉할 때, 그러한 문자를 만들어냈던 시간과 공간이라는 다양한 측면들이 무시되며, 그렇게 될 때 '해석'은 '의미'라는 존재적 질문을 뛰어넘어, 그 자체로 '우상'을 만들어낸다.


'노아의 방주'처럼 완전하게 잘 짜여져있(게 보이)는 본문이 또 있을까? 아마 G. Wenham(1978)의 덕분에, 창 8:1의 "하나님의 기억하심"이란 주제는 많은 보수적 설교자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선물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료비평이 제기해왔던 J와 P의 충돌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J.J. Collins의 구약개론이 좋은 설명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방주'라고 번역하고 있는, 요즘 안쓰는 단어가 단지 종교적 개념으로 남아서, 현실적인 어떤 대상을 지칭하지 않고, 오직 무형의 어떠한 관념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네모 반듯한 모양의 배'가 없어지고, 오늘날의 혹은 고대 로마의 멋들어진 군함을 상상하게 한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창 6장 이후로 계속 등장하는 '방주'의 히브리어는 '테바트'로, 이것은 '네모 반듯한 상자(basket)'이다. 말 그대로, "길이는 삼백 자, 너비는 쉰 자, 높이는 서른 자"인 직육면체의 상자이다(6:15). (그것이 '상자'이므로, 창 7:16의 "닫는다"라는 행위가 설명이 된다; 참조 창 2:21). 이 상자를 공동번역은 아예 '배'라고 규정하였다. 이 상자(테바트)는 출애굽기에서 간난아기 모세를 넣었던 상자이기도 하다(출 2:3). 주목할 점은, 출애굽기의 내러이터 역시 '그것'이 누구에게라도 '배'로 보이지 않으며, 문자 그대로 '상자'로 보였다는 점이다(출 2:5). (거의 모든 영어번역본이, 창세기와 출애굽기에서 일관성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측면에서, '노아의 방주'는 문자를 뛰어넘은 이념의 상징임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고대의 문명사회가 만들어냈던 '배'의 모양은, 상식적으로도, 21세기의 켄터기의 시골 땅에 세워진 그것과 다르다(사진은 고대인들이 만들었던 배이다; A. Feyerick, Genesis, 73). 진정한 근본주의자들이었다면, 그들은 진짜로 직육면체 나무 상자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성서 해석'이 과연 무엇이었든지간에, 어떤 주민이 말했던 것처럼, 그들의 바탕에는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바램이 있었고, 그렇기에 그들은 성서의 문자적 구현이 아닌, 단지 또하나의 테마파크에 머무르고 말았다(켄터키의 전함 내부에는 공룡도 있다고 들었으니...).


사실, 제일 문제는 '대홍수'를 통해서 기독교가 얻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하겠다. 기독교의 욕망은 모든 텍스트를 '사건 일지(daily report)'로 환원하려는데 있는데, 그것을 고대인의 역사해석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한, 또 한 번의 '더 완전한 방주 건설'이 켄터키 다른 시골에서 나타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대홍수의 문제는, 그 어떠한 기록물들과 같이, 역사적으로 증명하기 쉽지 않다. (재미있는 읽기로, 브라이언 페이건,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가 있는데, 저자는 기원전 5600년경 지중해의 상승으로 에욱시네 호수가 흑해로 변해버린 사건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대홍수 이야기의 근원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171-74)). 오히려 기원전 7세기 초반 아시리아 대제국을 호령했던 아술바니팔이 자랑했던 것처럼, "돌판에 세겨진 수메르와 아카드의 홍수 이야기를 옛말로 읽는 즐거움"과 같이(G. Roux, Ancient Iraq, 339-40), 텍스트의 본질은 그것을 읽으며, 현존재가 이렇게 자리하고 있던 고대인 나름의 이유(원인론)에 대해 깊이 혹은 '즐겁게' 공감하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나쁜 고고학"을 경계하자(J. David Pleins, When The Great Abyss Ope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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