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개역한글 번역의 매력(?)

진실과열정 2019. 3. 7. 10:15

개역한글 번역의 매력(?)


개인적으로 영어성경을 NRSV를 보고 있습니다. RSV의 개정판이지요. 많은 성서학자들이 책을 내면서 성서를 인용할 때, NRSV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자세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어떤 학자가 서문에서 자신은 그래도 RSV를 선호한다고, 그래서 이것을 사용할 것이니 독자들은 이해해달라고 한 글귀가 있었습니다.


한글성서를 '개역개정'으로 사용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저는 '개역'성서를 읽고 있습니다. 너무나 익숙한 말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땐, 상당히 보수적이죠^^)


말씀을 읽다가, 개역성서를 번역하셨던 옛신앙인들의 '한국인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신앙의 흔적을 찾게 되었습니다. 바로 열왕기하 8장 9절과 9장 4절인데요. 왕하 8:9는 엘리사와 '하사엘'의 만남이, 왕하 9:4는 엘리사와 '예후'의 만남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원어에는 없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바로 '드디어!'입니다. (물론 여기에 느낌표는 없죠. 하지만 번역자들은 '드디어!!'라고 읽으라고 의도한 거 같네요.)


조금 더 자세하게 비교하면,
개역개정은(8:9), "하사엘이 그를 맞이하러 갈새"이지만,
개역은, "하사엘이 드디어 맞으러 갈쌔"이고,


개역개정은(9:4), "그 청년 곧 그 선지자의 청년이 길르앗 라못으로 가니라"이지만,
개역은, "그 소년 곧 소년 선지자가 드디어 길르앗 라못으로 가니라"입니다.

사실 원어를 찾아보니, 개역개정이 '문법적으로' 더 정확하네요.


그런데, 숨은 번역은 '드디어!'가 정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왕상 19장을 보면, 천지가 개벽하는 국제상황 가운데 세계질서를 유지하시는 야훼 하나님의 개입이 정말로 시급한데도 불구하고, 오직 '세미한 소리'로 나타나심으로써 인간의 성급한 역사관을 하나님의 것으로 수정시켜주시는 일종의 '신앙 교육'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힘있고 돈있는 사람이 세상을 좌우하는 것 같지만, 결국엔 하나님이 참된 신임을 믿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 와중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15-16절에 나옵니다: 하사엘과 예후라는 카드.


이후로 어디에서 그들이 나올까 노심초사 기다리며, 즉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게 됩니다. 하늘만 바라보는 숨은 신앙인들의 기도가 느껴집니다. 이제는 나오겠지 싶지만 이렇게 저렇게 시간만 흘러갔지요. 그러다가 왕하 8장에 (이미 엘리야는 없는 이 시점에서) 느닷없이 병이 든 아람의 왕은 '하사엘'을 엘리사에게 보냅니다. 정말 이 시점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렸던 사람은 자리를 박차고 손뼉을 쳤을 겁니다. "드디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는 이 두 구절의 '드디어'라는 단어에 크게 동그라미를 쳤습니다. 원어에는 없지만, 집어 넣어 읽는 것이 어쩌면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써는 충분할 것 같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