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역사의 다윗계약이 포로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예언자들을 통해서 '다양하게' 재해석되는 점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하 7장과 관련하여, 일찌기 F.Cross가 복잡한 편집과정을 제시한 이래로(1973: 254ff), J. Collins는, 많은 시편들과 관련해서, 포로이전 고대근동배경의 왕권신학이라고 보았는데(2004: 236ff; 참조 R. Hess 2007: 227), 어찌보면, 계약의 주된 대상이 이제는 더이상 백성(출 20:12)이 아닌 '왕'으로 대체되었음을 주목하는 것이 적절한 지적인 것 같다(M. Coogan 2005:278). 이리하여 하나님의 신실함을 대표하는 '계약신학'은 '왕'이란 키워드로 옮겨지고, 결국 (주변국의 현실을 반영한 것인지) '지상의' 왕이 아닌, '하늘의' 왕으로 진화되지 않았을까?
포로기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변화된 계약신학은, 이사야에 의하면 그 주체가, '왕'이 없이도 가능한(G. Garbini 1988: 98), '이스라엘 백성'으로 다시 회복되었고(사 55:3), 예레미야에 의하면 그 주체가 '예루살렘과 레위제사장'으로 변하면서(렘 33:14-22) 역시 다윗왕가의 중단을 해석하게 한다(M. Fishbane 1985: 473). 예언자집단의 반-왕정 신학(anti-monarchical ideology)이, 그들의 신적메시지로 새롭게 탄생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반해, 에스겔은, 정말 'Josiah's kids'였는지(M. Sweeney 2012: 325), 초월적-왕정 신학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면서, 시종일관, P의 어휘인, '(히브리어) 나시'를 통해 제한된 권력을 암시했지만(겔 34:24; 44:3), 결국 에스겔은 '(히브리어) 멜렉'으로서 다윗왕조의 회복과 함께, 그것이 시내산계약과 '통합'되어 새로운 신학으로 발전하게 하였다(37:24-28). 시내산 계약과 다윗 계약의 통합은(Coogan 397), "위대한 화합"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이 하신 진정한 회복의 청사진임에 분명하다.
이시간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 "위대한 화합"이 다시 한 번 이 땅위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정말 간절히 기도한다. 부러진 두개의 막대기를 '연합해서 하나가 되게 하시는'(겔 37:16-19) 야훼의 선하신 뜻이 분열된 우리 민족을 치유하기를 간절히 정말 간절히 기도한다.
신의 계약은 파기되지 않는다고 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예수님은 몸으로 그것을 보여주었다(막 9:9,31; 10:45). 교회의 사명 역시 그것을 재현하는 것이다(엡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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