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등장에 관한 너무나 다양한 사건들이 소개된 이후(삼상 9:1-10:16; 10:17-27; 11:1-15), 사무엘은, 신명기적역사가의 필체에 의해(12:11), 고별설교를 합니다(삼상 12장. 특별히 삼상 12:20-25).
설교자는 청중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상태를 진단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위로을 제시해야 합니다. 사무엘은 백성의 상태가, '(17절처럼) 왕을 구하면서 신뢰를 저버리고... 이웃의 기준으로 자신을 격하시킨 죄'를 범했음을 확인시켜줍니다. 죄는 본인이 먼저 깊이 자각하게 됩니다(19절). 사무엘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백성을 위로합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히브리어 순서상으로는 사무엘의 위로가 제일 먼저 나옵니다.)
이어서 설교자는 무엇이 가치있는 일인지 정확한 판단기준과 근거를 내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세상사이에서 흔들리는 청중을 하나님의 뜻으로 인도해야합니다. 사무엘은 '야훼'와 '헛된것'을 비교하며 어떤 것이 가치가 있는지 깨닫게합니다. 이 세상에 가치있는 일은 '야훼의 뒤를 따라가는 삶'이지, '헛된 것을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Dtr2와 함께, 제2이사야[사 44:9,17]의 메시지는 청중들에게 쉽게 인식되었을 것입니다.) (인간 왕을 포함한) 헛된 것은, 사실 도움도 되지 못하고 구원하는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야훼 하나님은 가장 위대한 이름이며(진정한 왕!) 동시에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계약의 관계)으로 삼으시는 분입니다. (히브리어는 '키'로 시작되는 절이 반복대조되면서, '그것들은 헛되지 않느냐!'와 '야훼의 선함과 신실함'을 연속적으로 보여줍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자본주의의 선전과 달리,) 선택의 과정은 순간이 아니라 평생입니다. 그러므로 선택의 갈등은 오늘에 그치지 않고, 내일과 그 이후로 연속됩니다. 여기에서 설교자는 목회자로의 부르심이라는 사명이 있습니다. 단순하게 깔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청중의 평생 선택에 함께하는 고단한 삶의 여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와 말씀'의 사역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놀라운 가치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임무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너희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 너희가 좋은 길을 걷도록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겠다."
설교자는 변치않는 진리 앞에 타협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의 존재가치는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해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앞에서 계속적으로 거역한다면, 하나님은 역시 자신의 선하신 뜻을 통해 우리의 삶의 내용을 바꾸실 것입니다. 사무엘은 20절의 당부(마음을 다해 섬기자)을 24절에 강조하여 반복하며, 역시 20절의 진단(악을 행하였다)을 25절에 엄중한 경고로 제시합니다. (히브리어로 백성과 왕의 운명이, 마지막에 간결하지만 섬뜩하게 제시된 한단어로[티싸푸] 청중의 가슴에 깊이 박히게 됩니다.)
사무엘을 생각할 때,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저지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으로만 기억되었는데, 성서는 기도와 함께 '말씀/가르침'의 사역 역시 빠져서는 안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사람 뿐만아니라) 목회자의 중요한 모델로 여겨지는데, 성도들의 미성숙한 아픔을 위로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신앙인의 마땅한 선택을 강력하게 제시하며, 지속적인 승리의 삶을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목회자의 길을 그려보게 됩니다.
설교자는 청중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상태를 진단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위로을 제시해야 합니다. 사무엘은 백성의 상태가, '(17절처럼) 왕을 구하면서 신뢰를 저버리고... 이웃의 기준으로 자신을 격하시킨 죄'를 범했음을 확인시켜줍니다. 죄는 본인이 먼저 깊이 자각하게 됩니다(19절). 사무엘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백성을 위로합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히브리어 순서상으로는 사무엘의 위로가 제일 먼저 나옵니다.)
이어서 설교자는 무엇이 가치있는 일인지 정확한 판단기준과 근거를 내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세상사이에서 흔들리는 청중을 하나님의 뜻으로 인도해야합니다. 사무엘은 '야훼'와 '헛된것'을 비교하며 어떤 것이 가치가 있는지 깨닫게합니다. 이 세상에 가치있는 일은 '야훼의 뒤를 따라가는 삶'이지, '헛된 것을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Dtr2와 함께, 제2이사야[사 44:9,17]의 메시지는 청중들에게 쉽게 인식되었을 것입니다.) (인간 왕을 포함한) 헛된 것은, 사실 도움도 되지 못하고 구원하는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야훼 하나님은 가장 위대한 이름이며(진정한 왕!) 동시에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계약의 관계)으로 삼으시는 분입니다. (히브리어는 '키'로 시작되는 절이 반복대조되면서, '그것들은 헛되지 않느냐!'와 '야훼의 선함과 신실함'을 연속적으로 보여줍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자본주의의 선전과 달리,) 선택의 과정은 순간이 아니라 평생입니다. 그러므로 선택의 갈등은 오늘에 그치지 않고, 내일과 그 이후로 연속됩니다. 여기에서 설교자는 목회자로의 부르심이라는 사명이 있습니다. 단순하게 깔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청중의 평생 선택에 함께하는 고단한 삶의 여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와 말씀'의 사역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놀라운 가치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임무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너희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 너희가 좋은 길을 걷도록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겠다."
설교자는 변치않는 진리 앞에 타협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의 존재가치는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해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앞에서 계속적으로 거역한다면, 하나님은 역시 자신의 선하신 뜻을 통해 우리의 삶의 내용을 바꾸실 것입니다. 사무엘은 20절의 당부(마음을 다해 섬기자)을 24절에 강조하여 반복하며, 역시 20절의 진단(악을 행하였다)을 25절에 엄중한 경고로 제시합니다. (히브리어로 백성과 왕의 운명이, 마지막에 간결하지만 섬뜩하게 제시된 한단어로[티싸푸] 청중의 가슴에 깊이 박히게 됩니다.)
사무엘을 생각할 때,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저지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으로만 기억되었는데, 성서는 기도와 함께 '말씀/가르침'의 사역 역시 빠져서는 안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사람 뿐만아니라) 목회자의 중요한 모델로 여겨지는데, 성도들의 미성숙한 아픔을 위로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신앙인의 마땅한 선택을 강력하게 제시하며, 지속적인 승리의 삶을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목회자의 길을 그려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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