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aching/[설교: 얻어 먹은 주의 말씀]

인물설교: 에스겔

진실과열정 2013. 4. 4. 13:16

제목: 하나님, 그분이 힘주신다(거기서도!)

인물: 에스겔(laqez>x,y>)

 

0. 들어가기

 

한사람의 일생을 하나의 설교로 전달하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십년에 걸친 셀 수 없는 일들을, 어찌 한 시간에 전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불구하고, 우리는 기도하고 연구하며, 가르치고 설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만나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서, 이 시간은 단지 수천년 전에 살다간 과거의 인물을 추적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발견하고, 또 그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동일하게 함께 하심을 경험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번 바이블아카데미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소원합니다.

 

저는 이번에 예언자 에스겔이 경험했던 하나님을 증거하려 합니다. 들어는 보았지만, 많이 생소하고 어려운 인물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설교를 준비하면서,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마치 제가 에스겔이 된 것처럼,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조금 어색할지 모르겠지만, 오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여시고, 에스겔이 만났던 그 하나님을 깊이 만나며, 치유되고 회복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랑합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은혜주시니 찬양합니다. 이 시간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모두에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깨달아지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체험되는 시간되게 하옵소서. 간절히 성령님만을 사모하고, 또 의지합니다. 주께서 저와 우리 모두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 무너진 꿈

 

샬롬! 주님의 평강을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에스겔입니다.

어떻게 제가 경험했던 하나님을 나눌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무엇보다 저의 주민번호를 공개하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저의 주민번호는 220405로 시작합니다. 그래요. 저는 22년 생이에요. 여러분들보다 많나요? 근데, 여러분들보다 2600살 정도 더 많답니다.

 

왜냐하면 저는 기원전, B.C. 622년에 태어났기 때문이에요. 제가 태어났던 622년에, 유다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엔 엄청난 일이 있었답니다. 젊은 요시야 왕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성전에서 발견되었죠. 그 말씀을 읽은 요시야 왕과 제사장들은 가슴을 치며, 애통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뼈를 깎는 노력을 했죠. 사실 하나님의 말씀이 발견되기 5년 전에, 그러니깐 627년에 이미 요시야는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622년의 이 사건을 통해서, 바로 요시야라는 위대한 왕이,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대개혁을 일으킨 것이었어요.

우리나라를 뒤덮었던 모든 우상들이 무너졌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혔던, 모든 불의와 불법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유월절이 회복되고, 예배가 살아나고, 우리의 삶이 바뀌기 시작했답니다!

요시야 왕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게, 정말 눈에 보였어요.

우리는 날마다 기뻐하고 노래했죠!

 

사실, 우리 아버지가 제일 기뻐했어요! 저의 아버지는 성전 문을 지키셨던 제사장이에요. 평생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예배했던 분이었죠.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저도 역시 제사장이에요. 이 문을 지키는 일은 너무 중요합니다. 단지 문을 지키는 게 아니라, 성전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야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어야 하죠(레 10:10-11):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정결한 삶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겁니다. 왜냐하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집에 아무나 들어갈 순 없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깐, 우리 아버지, 그리고 저를 거쳐야,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거랍니다.

 

제가 태어났던 622년에, 우리나라에 이렇게 큰 부흥이 일어났으니, 이게 보통 일입니까? 요시야 왕의 개혁이 있기 전엔, 사람들이 ‘산당’이라고 하는 산꼭대기에 가서 나무나 돌같은 우상을 섬겼는데, 이제는 하나둘씩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여드는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너무 기뻐했죠. 매일 저희 집에서 가정예배를 드리면, 항상 이런 노래를 불렀어요: “쨍하고 해뜰날 돌아왔단다!” 아버지가 선창을 하면, 우리가 입을 모아 외쳤죠: “할렐루~ 야!”

 

    그러면서 제가 성인이 되는 날을 꿈꿨습니다.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서, 성전 문을 지키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말이에요. 참! 여러분은 제사장이 어떻게 성전에서 섬기는지 모르시죠? 제가 간단히 알려드릴게요. 일단 제사장은 25살에 부름을 받습니다. 그래서 5년 동안 도제기간을 거칩니다(민 8:23-26). 그리고 30이 되면, 드디어 위임 제사를 거쳐서 비로소 제사장의 삶을 살게됩니다(민 4:3). 위임 제사 기간은 일주일인데, 그 7일동안 성전 안에서, 날마다 제사를 드리고,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그 일주일동안 한 걸음도 밖에 나갈 수 없지요(레위기 8장).

 

    한번 상상을 해보세요. 불과 구름으로 가득한 성전을 말이에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곳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겁니다. 아버지가 그러는데요, 성전안에는 금으로 입힌 그룹들이 가득히 그려져 있다고 해요(왕상 6:23-36). 번쩍 번쩍이고, 하나님을 높이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정말 평생 기억에 남는 일주일이었다고 해요. 제가 바로 곧 그런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거랍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내가 12살이 지날 즈음에, 그 요시야 왕이 그만 전쟁에서 죽고 만겁니다! 온나라가 난리가 났죠.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우리나라에 먹구름이 몰려왔다고 말들했어요. 정말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마치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 한가운데를 건너는데, 갑자기 연료가 떨어져서 연료등에 빨간불이 켜지는 것과 같은 거에요.

 

    그 먹구름이 이제는 칠흙같은 어둠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요시야의 아들들이 왕이 되었는데, 하나같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날은 예레미야라는 예언자가 성전 앞에서 ‘성전이 무너진다! 성전이 무너진다! 성전이 무너진다!’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지요(렘 7, 26장). 저는 그때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 내가 성전문을 지키는 파수꾼이 될 터인데, 그 성전이 무너지다니! 그럼 안돼!!!

 

    결국, 예레미야의 예언이 맞았어요. 바벨론에 의해 우리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답니다. 597년, 그러니까 제가 25살 되던 해에, 왕과 귀족들 그리고 제사장들이 모두 포로가 되고 말았답니다. 아! 얼마나 기구한 운명이란 말입니까? 제사장으로 도제기간의 첫발을 떼야될 그 때, 저는 불타는 성전을 뒤로하고 바벨론이란 나라로 포로의 발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했는지 모릅니다. 날마다 바벨론 강변에 앉아서,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울기도 엄청 울었죠. 바벨론 사람들이 놀려대며 물었죠: “야! 너 제사장이라며? 너 성전에서 너희 하나님을 예배할 때 부르는 노래좀 해봐라! 맞고 부를래, 그냥 부를래?” 그때 우린 이런 노래를 불렀답니다: (아리랑 버전)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 내 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시 137편)

 

    정말이지 눈물로 밤을 지새웠어요. 하나님을 원망했죠. 내가 과연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고생을 해야합니까! 따지기도 엄청 따졌어요. 왜냐하면 내 꿈이 무너졌기 때문이에요. 내 삶의 희망이 사라졌어요! 내 인생이 이렇게 꼬일 수 있단 말입니까? 도저히 다시 시작할 수 조차 없단 말이에요! 말 그대로 우린 망했어요!

 

    하루 하루 지나면서, 내 마음은 굳어졌습니다. 신앙? 믿음? 하나님? 교회? 한마디로 ‘흥!’이었어요. 딱딱한 돌같이 내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았어요. 그냥 그렇게, 그냥 그렇게 원망하며 눈물짓고 살았습니다. 우리에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2. 하나님과의 만남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어요! 하나님을 만난 겁니다. 바벨론의 그 강변에서, 눈물의 장소,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하나님을 만난 거에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해요: 30년 4월 5일(겔 1:1) 제가 30살이 되던 그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신비한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숯불과 횃불 모양에, 마치 하나님이 불의 전차를 타고 ‘짠’ 나타나셨지요. 엄청난 군대의 소리가 들려왔어요! 나는 거기에서, 바벨론의 그 강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던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저에게 7일 동안 말씀을 먹이시고 깨달음을 주셨어요(3:15): “여호와가 계신 곳이 영광의 처소이다! 여호와를 찬송하라!”(3:12)

 

    그때서야, 저는 깨달았죠! 아! 내가 원래는 25살부터 도제훈련을 시작하는데, 하나님은 그때! 포로생활의 첫걸음을 걷게하셔서, 진짜 도제훈련을 시키신 거였구나! 그리고 내가 30이 되면 성전에서 제사장 임직식을 받는데, 하나님은 그때! 나를 제사장 만드시려고 친히 영광의 처소가 되셔서 여기로 찾아오셨구나!

 

    그래요!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깨달았어요. 내가 멀리 포로로 잡혀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죽지 않은 겁니다! 그래요! 하나님께서 ‘힘주시는 분’이심을 깨달았어요. 하나님은 수천리 떨어진 이곳까지도 나를 만나시기 위해, ‘나를 힘주시기 위해’ 찾아오시는 분이었어요! 그래요! 하나님께서 여기에서도, 날마다 눈물만 흘렸던 바벨론의 강변에서도, 우리에게 참 소망을 주시고, 하늘의 비전을 주시는 분임을 깨달았던 겁니다.

 

    7일 후에(3:16)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제사장이었던 저에게 예언자의 사명을 주신겁니다. 진정한 파수꾼의 사명을 주신거죠: “이곳에서 다시 백성들을 ‘깨우쳐라!깨우치고 그들에게 일러주라! 그들로 깨닫게하라! 깨우치고, 또 깨우치라! 백성들을 깨우쳐라!” (3:17-21) 문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백성들을 깨우치라는 사명을 받은거죠. 깨우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님은 7번이나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이 먼저 나를 깨우쳐주신 거죠. 바로 내가 얼마나 연약한 사람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성전 문을 지키는 제사장이었지만, 그 제사장들이 성전을 너무나 더러운 곳으로 방치했음을, 하나님이 보여주셨어요: 성전으로 들어가는 그 문에 “투기의 우상”이 서 있었어요(8:3). 성전의 사방 벽면에 가증한 짐승들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어요(8:10). 성전의 동편 문에는 사람들이 ‘동방태양’을 경배하고 있었어요(8:16).

 

    이게 모두, 성전 문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어요! 나의 할아버지가! 나의 아버지가! 그리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로! 겉모양만 번지르르한 제사장이었지, 실상은 아무런 힘도 없는 - 그 어떠한 사람도 변화시킬 수 없는(!) 연약한 사람이었던 겁니다.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이었던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저를 ‘인자’(벤-아담)라고 부르셨어요. 원래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사람(이쉬 하엘로힘)’으로 불렸지요. 하나님의 사람 모세,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 엘리사! 얼마나 멋진 이름입니까! 그러나 그 이름이 우리를 얼마나 교만하게 했는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리고 싶었어요. 그 이름만 있으면 장땡이다 싶은 거였죠. 그런데 실상은 경건의 모양만 있고, 그 능력은 없는 껍데기였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이 없으면, 단지 ‘흙’(아다마)으로 돌아가는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신거에요. 그래요. 저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인자’(벤-아담)인 것입니다.

 

    사람의 힘을 의지하고, 사람의 지혜를 신뢰했던 게 깨닫게 되었어요. 뛰어난 왕이 우리를 변화시킬 줄 알았던, 인간의 교만을 깨달았죠. 하나님을 힘으로 삼지않고, 다른 것들을 붙잡았던 것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회개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회개케 해주었어요. 저는 돌 하나를 주워, 그 위에 예루살렘을 그렸어요. 그리고 오른쪽으로 40일동안 누웠어요. 하나님이 그게 40년이래요(4:6). 생각해보니까, 예루살렘이 587년에 무너졌고, 40년을 거슬러 올라가니, 그 때가 바로 요시야가 처음으로 개혁을 시작했던 627년이었어요. 우리가 요시야를 의지했던 것을 하나님이 회개하게 하셨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왼쪽으로 390일을 눕게 하셨어요(4:5). 그래요 390년이에요. 차분히 생각해보니까, 요시야 개혁으로부터 대략 390년을 거슬러 올라가니,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왕이 떠올랐어요. 그래요, 우리가 하나님을 왕으로 삼지 않고, 사람을 왕으로 삼았죠. 인간의 힘으로 살아보려고 했던 욕심이 떠올랐어요. 하나님 없어도 살수 있다는 생각, 그래요! 바로 죄가 떠올랐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가 죄인이었군요! 바로 제가 죄인이었군요!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자만하고 살았는데, 실상은 내 힘대로 살았었군요! 내 지혜대로 살았고, 내 계획대로 살았고, 내 꿈을 위해서 살았었군요! 내 평생 교회를 열심히 다녔지만, 실상 하나님 없이 살았군요! 말씀으로 살지 않고, 마음으로 살았고, 기도로 살지 않고, 기획으로 살았고, 사랑하며 살지 않고, 사기치며 살았군요!

 

    오! 하나님, 제가 죄인입니다.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바벨론 강변에서 울고 또 울었어요. 그런데 그 눈물은 이전에 흘린 눈물과 달랐어요. 내 인생이 비참해서가 아니라, 내 속사람이 너무 더러워서 운 거에요. 누가 나를 아프게해서 우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치료의 칼이 되어서 나의 굳은 마음을 도려내 주시니 감사해서 운 거에요. 내가 우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성령이 우신 겁니다.

 

 

 

3. 하나님이 힘이다!

 

그렇게 내가 울 때, 그때 하나님이 나를 만져주셨습니다. 돌처럼 굳어져 버린 나의 마음이 부드러운 ‘살로 된 심장’으로 바뀌었어요(36:26). 예전엔 불평이고 원망이었는데, 이제는 감사고 은혜로 바뀌었어요. 절망의 환경속에서 소망의 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겁니다.

 

    나 자신만을 위했던 삶이, 그래서 아무런 감동도 능력도 없던 나의 삶이,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것과 같은 에덴동산의 아담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진짜 참 아담으로 바뀐 겁니다. 진짜 참 아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목적을 위해 창조된, ‘아담’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새 피조물이 시작된 겁니다!

 

    이젠 깨달았어요. 우리 민족이 포로로 잡혀간 것은 하나님이 무능해서가 아니었어요. 나를, 아니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어요: 우리 안에 들어있는 탐욕, 교만, 자랑, 투기, 질투, 음란, 폭력, 허영심, 그리고 나의 꿈.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은 저 광야의 불에서 녹아내길 원하셨던 거에요.

 

“사람이 은이나 놋이나 철이나 납이나 상납이나 모아서 풀무 속에 넣고,

불을 불어 녹이는 것 같이, 내가 너희를 모아 거기 두고 녹일지라.” (22:20)

 

“가마가 빈 후에는 숯불 위에 놓아 뜨겁게 하며,

그 가마의 놋을 달궈서, 그 속에 더러운 것을 녹게 하며, 녹이 소멸하게 하라 (24:11)

 

녹이 소멸케 되리라! 녹이 소멸케 되리라! 녹이 소멸케 되리라! 그렇습니다! 비록 나는 바벨론에 잡혀있지만, 그것은 저주가 아닌 은혜였습니다.

 

비록 나에겐 지켜야할 성전문은 없지만, 그 대신에 지켜야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비록 나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은 없지만, 그 대신에 말씀으로 섬겨야 하는 이웃이 생겼습니다.

비록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는 없지만,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가 있습니다.

비록 성전을 감싸는 빛과 구름은 없지만,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를 비추었습니다.

그래요! 비록 예루살렘 성전과 수천리 떨어진 외딴 곳에 있지만, 바로 거기에! 하나님이 계셨고, 바로 거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내가 실패했던 곳에서 나를 일으키는 분. 죽음과 눈물이 있던 곳에서, 생명과 기쁨을 만드신 분. 거기에 계셨던 하나님! 그곳이 바로 내가 경험했던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그곳이 있지 않나요? 바로 십자가 말입니다. 내 안에 가득했던 죄악을 모조리 씻기 위해서, 주님이 피흘리신 십자가! 나를 자녀삼기 위해서,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라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 물과 피를 모두 흘리셨던 골고다의 그 십자가!

 

    바로, 그곳이 ‘거기에 계셨던’ 여호와 하나님의 장소였어요.  그렇습니다! 그곳이 바로 여러분이 다시 태어난 장소입니다. 우리 삶의 새로운 목적이 창조된 장소입니다.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을 바라보기 시작한 장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모든 것이 죽어가는 광야에서 하나님은 나를 만나주셨고, 나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진정한 ‘힘’이신 하나님이, 진정 우리를 다시 일으켜주신다! 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이, 죽은 우리의 모든 것을 생명으로 바꾸신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힘과 지혜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 ‘하나님’으로는 가능함을 저에게 직접 보여주셨던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죽었던 곳에, 새로운 생명이 창조됨을 보여주셨습니다.

 

    어느날 하나님은 저에게 하나님의 창조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곳은 사방이 죽음의 뼈로 덮인 곳이었습니다(겔 37장). 그곳은 우리의 허물, 우리의 욕심, 우리의 지혜가 묻혀버린 곳이었죠. 죄로 죽은 이스라엘, 생명없는 교회가 머문 장소였습니다.

 

    사방이 죽음의 뼈였어요: 여기도 ‘뼈’, 저기도 ‘뼈’, --, --, -.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 ‘생기’가 죽음의 뼈를 대신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생명없는 뼈를 덮은 겁니다: 성령-성령-성령, 성령-성령-성령, 성령-성령-성령, 그리고 성령(루아흐).

 

    그리고 하나님은 저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뼈를 향하여 ‘대언하라’고! 죽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살아날찌라!’라고 선포케 하셨습니다. 생명없는 교회를 향해서 생명을 선포하라! 능력없는 성도를 향해서 생명을 선포하라! 선포자인 저에게는 힘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받은 말씀대로 선포했습니다: ‘대언하고’-‘대언하고’-‘대언하고’, ‘대언하고’-‘대언하고’-‘대언하고’, 또 ‘대언하고’. 7번 대언케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말씀으로 인해서 죽은 이스라엘이, 생명없는 교회가 살아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이 있는 사람은 ‘살아납니다!’: ‘생명’은 히브리어로 ‘하이’라고 합니다. ‘하이’-‘하이’-‘하이’, ‘하이’-‘하이’-‘하이’. 생명이 6번 나옵니다. 7번이 아니라, 6번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그냥 사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새로운 목적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살아난 이스라엘, 살아난 교회에게 새로운 목적을 주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위한 영적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군대’가 히브리어로 ‘하일’입니다. 생명과 군대라는 말이 히브리어로는 매우 비슷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새생명을 얻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영적 군사로 세우신 것입니다. 사망권세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장되시니, 이미 이긴 전쟁 끝까지 승리를 누리며 살라고, 우리를 영적 군사로 세우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실패한 우리를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여러분을 하늘의 군대로 일으키신 것입니다! 십자가로 새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군사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겁니다!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군대이다! 우리는 성령과 동행하며, 장차올 천국을 이미 소유한 하나님의 군대이다! 우리는 죽어가는 영혼을 생명으로 건져내는 군대이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4. 에스겔: 하나님, 그분이 힘주신다.

 

이제 저의 이야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삶을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하게 만들어가시는지, 여러분 모두 확실히 배웠을 것으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내가 죽을 때까지, 일분 일초도 쉬지 않으시고, 나의 삶을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나이 50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이제 제사장으로 은퇴해야만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 어쩌면 나의 삶이 끝나버린 것처럼 느껴졌을 바로 그런 때에, 하나님은 저에게 새로운 하나님의 성전을 보여주셨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사람에겐 ‘은퇴’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그날까지,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라고, 하나님을 증거하며 살라고, 하나님은 저의 은퇴기념일에, ‘에스겔아, 너에겐 은퇴란 없단다’라고 하셨습니다.

 

머나먼 타국에서도 내가 너와 함께하니, 너는 평생 사나 죽으나 나를 위해서 살아라.” 그게 바로 에스겔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여호와 삼마’. 머나먼 타국에서도 나 여호와는 거기에서도(!) 너희의 하나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 에스겔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 그분이 힘주신다”입니다. 신앙은 아주 작은 차이에서 그 빛이 드러납니다. 내 힘으로 사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가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결단이 신앙입니다. 나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숫자들을 보셨지요? 이게 바로 실패의 역사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잘 살아보려고했던 수많은 흔적들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 에스겔처럼, 여러분도 “힘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붙들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가 실패한 것처럼 보일 때도, 하나님은 나의 삶에 살아 역사하신 것입니다. 또 내가 계획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시간표에 움직이고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그분이 힘주십니다”. 지금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십자가로 나아오십시오.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십시오.

 

 

 

이제 나는 노래를 부릅니다. 장소는 똑같지만, 환경은 변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땅을 보지 않고, 하늘을 보며 노래합니다. 바벨론의 강변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거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그의 손이 그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네.

(시 139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