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독서] 좋은 책 이야기

닥치고 정치: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생각하며 움직이게

진실과열정 2012. 1. 21. 17:20

영어공부에만 매진하다 우연히 교회 청년에게서 책 한권 빌려 읽었습니다. 요즘 뜨고 있는 '닥치고 정치'라는 책입니다. 확실히 뜰 수밖에 없는 제목이지요. 그 어려운 정치에 '닥치라'는 유쾌한 명령을 던지는 작자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한 때, '닭살돋는 묵상'과도 같은, 오묘하며 신비로와야만 했던 성서에 새로운 바람을 던졌던 문화적 충격의 또 하나라고도 생각 됩니다. 혹은 보다 대중적으로 SBS 라디오 프로인, '컬투쇼'의 정서--정말 우연치 않게 수원-대전으로 신학교를 통학하면서 그 프로의 첫회를 청취했던 사람으로, 그 문화적 충격은 이루 말할수 없었죠--에 이제는 감정적으로 더 이상 요동치지 않을 수 있었던(개인적인 생각으론, 그러한 정서적 맺집의 최고 기여는 아무래도 '무한도전'이겠지요) 21세기의 한국인에게, 정말로 거부감없이 흥미 진진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정치에 대한 뜨뜻한 안내서인 것 같습니다. 이제 정치는 어렵지~ 않은 것일까요?

 

구차하면서까지 뭔가를 배우기 싫어하면서도 알 것은 다 알고 싶은, 현대인에게 인터뷰 형식의 가벼운 농담을 간간이 흘리면서 작가의 색깔을 반복적이면서도 깔끔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지금도 계속 잘 팔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한국도서십진표에, 사실 이런게 뭐 중요하겠느냐만, 정치학에 분류되어 있습니다(물론, 이 책 자체엔 그런 표기는 없지요). 혹자는 이거 소설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르죠. 저자 자신이 소설을 쓰고 있다고 몇 번이나 호탕하게 웃어대니 말입니다. 경쾌한 반어법일지도. 아무튼 정치하면 가질법한 은근한 무게를 확 줄여서, 아예 진공포장으로 만들어 내는 저자의 지극단순자극적비유에 경의를 표할 뿐입니다.

 

이 책은 정말 쉽고 재미있습니다. 우파와 좌파를, 유물론적인 차원에서 극히 단순하게 요약해버리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삶의 불확실성이라는 공포에 대처하는 자세로 설명하는 것이라든지, BBK라는 관련된 흥미롭지만 그 어떤 뉴스나 신문을 읽어도(내가 잘 못읽어서 그랬지요) 뭥미 하게 만드는 사건을, 몇 단계의 합리적인(?) 추론으로 그럴듯한 완벽한 (저자 표현) '소설'로 재구성("불법의 성실성")해는 탁월함이 정말 그렇습니다. 죄의식이란 이념과 경제만능주의에 물들었던 정치를 연애의 차원이라는 생생한 이미지로 재탄생시킨 본능적 통찰력 또한 빠질 수 없죠. 그리고 유재석 말고도 우리가 알아야할 사람들이라고 소개시켜준 여야의 잡다한 정치인들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한 마디로 재미있을 수 있었던 것은, 정치도 사람사는 것이고, 그래서 감성이 참으로 중요한 거(혹은 그래서 무서운 거)구나 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한 두번 들었던 '나꼼수'가 지나치게 시끄럽고 분주해서 집중이 안되었던 반면, 이 책은 내 마음대로 읽을 수 있으므로(저자가 '웃었던' 대목에서 나는 따라웃지 않을 수 있으므로), 오히려 그랬을 법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차분하게 짚어갈 수 있었습니다. 거기엔 저자의 탁월한 어휘사용능력이 큰 힘이 된 것 같습니다. 가려운 곳을 정확하게 긁어주는 어휘가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게, 정말 나름 도사이긴 하네요. 몇 가지 대목은 써먹을 만해요: "광고하면 스팸이고 전파되면 정보다"(305) "말의 내용 이전에 말의 형식부터가 컨텐츠다. 형식은 내용에 선행해서, 의식이 그 내용을 수용할 자세를 지정해준다."(306)

 

 

 

 

 

"정치를 이해하려면 결국 인간을 이해해야 하고 인간을 이해하려면 단일 학문으로는 안 된다.
인간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팩트와 가치와 논리와 감성과 무의식과 맥락과

그가 속한 상황과 그 상황을 지배하는 프레임과

그로 인한 이해득실과 그 이해득실에 따른 공포와 욕망,
그 모두를 동시에 같은 크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섭해야 한다." (292)

저자는 마지막에 이 말을 덧붙였죠: '나는 통섭한다.' ㅋㅋㅋ

 

 

 

정치가 쉽고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준 고마운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생각하며 움직일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저자가 던졌던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한 마디"가 좀 어이가 없어서 말입니다. 아~ 난 아직도 '무한도전 시대류'의 사람은 아닌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