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구약성서 비평학 세미나-2] "구약성서 해석사"

진실과열정 2009. 10. 6. 10:55

구약성서    비평학   세미나(2009.9.29)

담당교수:   이  형 원 교수

발표자: 양지웅(Ph.D.,  구약학  4학기)

 


 

구약성서 해석사 - 구약의 정경화 과정부터 종교개혁까지


1. 서론: 비평의 본질

성서는 흔히 음식으로 비유되곤 한다(겔 3:3; 히 5:14).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음식점에 들어가는 손님에게 음식은 단지 섭취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그 음식을 솜씨 있게 조리하는 요리사에게 한 끼 식사는 연구와 분석의 대상이 된다. 다시 말해서 식재료를 온전하게 이해하게 될 때, 최고의 요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복어는 중국의 시인 소동파가 죽음과도 바꿀 가치가 있다고 극찬했을 정도로 미식가들 사이에서 최고의 ‘복’된 요리임에 틀림없지만, 전문 요리사의 손길을 거치지 않으면 생명을 위협하는 ‘독’이 되기도 한다. 마찬 가지로, 우리는 오랜 역사를 통해 성서의 책임 없는 해석과 그 해석의 분별없는 실천이 야기하는 오류의 현장을 목격하곤 하였다.1 그렇기에 말씀을 맡은 자들에게, 성서는 단지 소리를 내어 읽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섭취의 대상으로 머무를 수 없다.

성서란 본질적으로 다의적인 성격을 갖는 ‘언어’로 된 것이기에, 의미의 차이를 유발하는 시공간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2 더 나아가 참된 의미의 발견과 그 방법론의 개발, 그리고 결과적으로 독자의 행동 변화를 일으키는 신비로운 영역까지도 성서가 아우르고 있는 세계임에 분명하다.3 그러므로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라고 말했던 에디오피아 사람의 외침은 성서 비평학의 존재의 당위성을 충분히 변증하는 것이라 하겠으며(행 8:31),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שׁרפ)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였던 에스라와 레위 사람들의 노력은 성서 비평학의 시원적 모습을 보존하는 것이라 하겠다(느 8:8). 이렇게 볼 때, 성서는 본질적으로 해석 혹은 비평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대상임에 분명하다.

사전적 의미에서 비평이란, 하나의 학문적 대상에 대하여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혹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① ‘평가’하는 작업이며, 또 그렇게 하기 위하여 그것을 다방면의 과학적이고도 논리적인 ② ‘방법들’을 통하여 연구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p.12). 그러므로 이러한 정의를 가지고 구약학에 적용시켜볼 때, 구약성서 비평이란 구약성서의 가치를 올바로 ① 평가하기 위하여 논리적이고도 학문적인 ② 연구를 다양하게 시도하는 것을 의미하며, 구약성서 비평학이란 구약성서를 보다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① ‘해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생겨난 제 비평 방법들을 소개하고 각 비평 ② ‘방법들’의 독특성과 한계성을 평가하는 학문을 뜻한다(p.13). 결국 고대 문헌인 성서를 연구의 대상으로 놓고, 그 뜻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통하여, 오늘의 살아 있는 텍스트로 본연의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밝혀내는 작업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볼 때, 구약성서 비평학은 그 대상이 분명하며 또한 접근자세도 구체적으로 요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구약의 정경화 과정부터 종교개혁까지

1) 구약성서의 정경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평적 해석

성서의 ‘정경화 과정’이란 말은 다양한 개념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 말은, 무엇보다도, 성서가 한 순간에 완성품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말은 성서가 오랜 시간의 산물임을 말해준다. 또한 이 말은 공동체의 평가 기준과 말씀의 거룩한 권위 사이의 민감한 교감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기도 한다. 그 정확한 과정을 재구성하는 일은 불가능하겠지만, 히브리성서가 타나크(TNK)로 지칭되고 있는 보편적인 현상을 살펴볼 때, B.C. 400년경의 오경(토라), B.C. 200년경의 예언서(느비임), 그리고 A.D. 100년경의 성문서(케투빔), 이렇게 3단계 정경화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알려진다. 그리고 최종적인 종합의 장소를 얌니아 종교회의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 최근에 캐럴 반 데 툰(Karel van der Toorn)은 다른 견해를 주장하였다. 그는 정경화 작업을 2단계로 말하고 있는데(B.C. 450년경의 토라; B.C. 300-200년경의 예언서/성문서), 그 이유로 예언서와 성문서가 확고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았음을 제시한다.4 실례로, 요세푸스는 성문서에 해당하는 상당 부분을 예언서에 속해 놓았으며, 오히려 확고한 분리는 토라와 토라의 해설(예언서/성문서)로 잡고 있다. 또한 반 데 툰은 랍비들의 자료들을 철저하게 분석한 결과, 얌니아 종교회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5

어찌되었건, 여기에서 주목할 수 있는 점은 “구약성서의 각 부분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편집자들의 창조적인 손길을 거쳤다”는 점이다(p.14). 그러한 손길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앞선 본문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진 새로운 글로 나타나게 되었다. 즉, 보다 자세한 설명이나 이유를 부연하거나, 내용의 충돌이 있을 경우 조화롭게 만들거나, 혹은 새로운 시대의 필요성에 따라서 수정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이유에 대하여 앞선 본문들(민 20:12; 신 32:50-2)은 모세에게서 원인을 찾았으나, 후대의 편집자들에 의한 본문들(신 1:37; 시 106:32)은 백성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다윗의 성전 건축 계획에 대해서, 앞선 본문(삼하 7:5)은 수사적 질문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반해, 이미 사실을 알고 있는 후대의 본문(대상 17:4)은 확실한 부정 명령으로 바꾸어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편집자 혹은 서기관들의 성서 이해는 구약성서 자체의 생성과정을 보여주며, 또한 최초의 해석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앞에서 언급했던 반 데 툰의 책은 비교적 간단하게 구약성서의 편집자(서기관)들의 최초의 해석과정을 추적하고 있다(신명기와 예레미야 그리고 정경화 과정). 이보다 더 자세한 연구를 마이클 피쉬베인(Michael Fishbane)이 시도한 바 있는데, 그는 일찍이 1985년에 방대한 분량의 ‘성서 내의 해석’(inner biblical interpretation)을 분석하였다.6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성서는 구전 중심의 전승(traditio)과 기록 방식의 전승(traditum) 사이의 계속적인 전환을 통해서 완성되었고, 그러한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방식으로 ① 서기관들의 주석과 수정 방식, ② 법적 구문에 대한 해석(할라카[halakha]), ③ 법적 구문을 제외한 부분에 대한 해석(악가다[aggadah]/학가다[haggadah]), ④ 신탁과 관련된 부분(mantological)에 대한 해석을 자세하게 제시하였다.


2) 기독교 형성 이전의 유대인들의 구약 해석

이 시기에 유대인들은 크게 두 무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도권 안의 유대교 랍비와, 반대로 제도권 밖의 쿰란 공동체로 제시할 수 있다. 우선, 쿰란 공동체는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① 성서적 사건에 대한 해석적 보충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것을 미드라쉬라고 부르며,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순전한 여정을 설명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창세기 외경」을 제작하는 방식을 말한다. ② 율법들에 대한 재해석 방법이 있었다. 이를 할라크라고 부르며, 이것은 율법을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세부사항을 새로 규정하는 것을 뜻한다. ③ 예언서의 내용을 동시대의 실현으로 보는 종국적 해석 방법이 있다. 이는 페쉐르(םירשׁפ, 주석)라고 하며, 예언서에 등장했던 과거의 사건이나 대상을 현재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방식을 말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성서의 의미를 종말론적으로 보았고, 동시에 현재를 마지막 때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쿰란 공동체가 역사편찬적인 성격의 기록물을 남겨 놓지 않은 이유를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7 예를 들면, 나훔서 2장 12-13절의 ‘사자’는 본래 니느웨(아시리아)를 가리키는 것이지만(1:1), 쿰란 공동체는 나훔서 주석(4QpNah)에서 이들을 그리스 왕 데미트리우스(Demetrius III, Eukairos)로 보았다.8 이들은 종파 분리론자 특유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즉, 자신들의 공동체만이 의로운 집단이며, 그러한 집단을 이끄는 지도자(‘의의 교사’)를 제사장적 메시야로 이해하였다(다메섹 문서 3.18-4.4는 삼상 2:35과 겔 44:15를 결합하여 자신들의 지도자를 예언된 ‘사독계열의 그 예언자’로 보았다).9 그러므로 이들은 이론적인 분야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실천적인 면에 집중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해석 자체를 성서와 동등하게 높일 수 있었다.

다음으로 유대인들의 해석을 보면, 이들 역시 성서를 실천의 대상으로 접근하였다. 토라를 풀어낸 것을 ‘할라카’라고 부르며, 토라 이외의 본문을 풀어낸 것을 ‘학가다/아가다’라고 불렀다. 이들은 특정한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각기 다양한 해석 방법들을 보였다. 다시 말해서, 지나친 문자적 해석을 보이기도 했고(샴마이 학파), 본문에 주해를 다는 미드라쉬를 주로 했던 집단도 있었다(힐렐, 엘리에젤). 한편, 쿰란 공동체와 같이 지나친 현재화된 이해를 추구했던 종국적 해석도 있었으며, 헬라 철학의 영향으로 본문의 이면적 의미를 추구했던 우화적 해석자도 있었다(필로, 아리스도불루스). 예를 들어, 이들 가운데 랍비 아키바(A.D. 50?-132)는,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데, 본문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생각하여 성서의 모든 단음절어(monosyllable)에조차 심오한 의미가 들어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다윗이 골리앗을 치러가며 사울 왕에게 자신의 용맹함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말했던,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בודה־םג יראה־תא םג)”이라는 구절을(삼상 17:36) “그(다윗)는 세 마리의 짐승을 쳐 죽였다”라고 이해하였다.10 또한 이들 가운데 필로(B.C. 20- A.D. 54)는, 마지막 경우에 해당하는데, 전형적인 우화적 해석가로, 사라와 하갈이 각각 미덕과 훈육을 표현하며, 야곱과 에서는 각각 신중함과 우둔함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11 이 시기의 해석자들을 간단하게 요약할 순 없지만, 비교적 기능적, 실용적 해석에 치중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본래의 의미를 찾기 보다는, 현재를 위한 적용에 우선권을 두었다. 그러므로 전통이 상당한 권위를 가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합리적 이해와는 상당한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3) 초대 교회 시대의 구약성서 해석 방법

신약성서가 정경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초대 교부들에게 구약성서는 신약의 상대적 역할을 담당했다. 물론 많은 부분에서 유대인의 해석 방법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와의 연관성을 가지고 읽는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초대교회가 구약성서를 해석할 때 지녔던 하나의 커다란 전제는 그리스도이신 예수가 구약성서의 진정한 의미를 밝힌다고 간주한 것이다.”(p.29) 그렇기에 구약의 여러 부분은 메시야적 구절로 해석되었다(삼하 7:10-14; 사 11; 민 24:17; 창 49:8-10; 슥 6; 사 2; 단 7; 시 110). 이렇게 볼 때, 초대 교회 시대 역시 실용적인 입장을 고수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증거 본문’(proof-text)의 성격으로 구약성서를 접근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자신들의 논리를 입증하기 위해 성서를 이용했던 방식의 좋은 예는 일레인 페이걸스(Elaine Pagels)의 연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12 그녀는 초대교회가 창세기 1-3장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유발된 성과 정치의 이면의 역사를 추적하였다. 즉, 정치적으로 말해서, 창세기 본문이 인간평등의 대원리를 설파하고 있기 때문에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고 주장한다(대표적인 사람으로, 유스티누스).13 그리고 성적으로는, 본문이 욕망에 속박되어 손상된 본성의 유전자(‘정자수태론’)를 가진 인류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금욕주의와 결과적으로 자유가 권위에 복종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되었다고 보았다(대표적인 사람으로, 어거스틴).14

전반적으로 논리가 결여된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회 시대에의 해석자들은 신학적으로 중요한 결과물들을 내놓기도 하였다. 바로 이들을 통해서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들이 틀을 잡아 갔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역사적 가치이다. 또한 오리겐은 「헥사플라」를 내놓아서 구약성서 각 절에 대한 다양한 번역본을 비교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고,15 유세비우스는 「오노마스티콘」을 내놓아서 성서 지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였다(p.30). 최근에 마틴 얀 멀더(Martin Jan Mulder)는 초기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 시대의 구약성서 해석에 관한 다양한 그들을 편집해서 내놓았다.16 또한 빌(G. K. Beale)과 칼슨(D. A. Carson)은 신약성서 각 권에 대해서 구약성서를 인용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주석을 내놓기도 하였다.17

 

4) 중세 시대의 구약성서 해석 방법

기원후 400년부터 1500년에 이르기까지 근 천년을 넘는 긴 시간 동안 구약성서는 공인된 기독교 제국의 울타리 안과 밖에서 여러 학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연구되어졌다.18 먼저 중세를 대표하는 가톨릭 교회는 문자적 해석, 예표론적 해석, 그리고 우화적 해석 방법을 사용하였다. ① 문자적 해석은 원어적 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제롬은 벌게이트 역을 완성시켰고, 휴와 엔드류와 같은 학자는 문자적 의미를 우선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문자적 해석은 13세기 수도사들을 통해서 보편화되었으니 이들은 본문을 돕는 참고자료들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② 예표론적 해석은 앞선 시대에서도 나타났던 것으로, 가톨릭 교회의 교리나 제도를 합리화시키는 의도로 제시되었다. 출애굽의 유월절이나 엘리야의 기름과 빵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성례전을 통해서 성도들에게 실제 경험하도록 하는 일이 훨씬 더 쉬웠을 것이다. 사실, 이 방법은 중세에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③ 우화적 해석은 헬라 철학을 중심으로 보다 심화된 철학 연구에 매진했던 가톨릭 학자들에게 선호되었던 방식으로, 대표적인 해석자로 어거스틴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기독교 제국 밖에 있었던 유대인들은 언어학적 연구, 철학적 설명, 그리고 교훈적 주해를 포함하여 다양한 해석적 전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들은 유럽 전반에 걸쳐 활동하였는데, 우선 스페인에서는 문자적, 언어적, 철학적 방향으로 연구가 활발했는데, 이들은 언어/문법/악센트/명사 분류/동사 변화/반의어/동의어와 같은 매우 기본적인 부분을 연구했고, 그 결과 마소라 본문에 대한 비평적 대안으로 기능하기도 하였다. 이들 중에 어떤 이는 시편의 후대성과 제2이사야서를 주장하기도 했고(모세 벤 사무엘 기카틸라), 또 어떤 이는 계시와 이성의 조화를 시도하기도 하였다(마모니데스, 나마니데스). 한편 프랑스-독일에서는 랍비 연구를 근간으로 주해적 교훈적 해석이 활발했다. 주된 학자로 라쉬를 들 수 있는데, 그는 성서 본문을 보충적이며 교훈적인 차원에서 철저하게 주석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또한 다비드 킴히는 마소라 학파의 케티브-케레 연구를 통해 본문 비평의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스테판 레이프(Stefan C. Reif)는 성서해석에 있어서 유대인들의 공헌을 평가하면서, 이들은 특정한 신학보다 언어에 집중했기 때문에, 문자적인 차원의 공헌이 지대하였다고 보았다.19

이렇게 볼 때, 1000년의 긴 시간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비평가들이 각자의 전통 속에서 해석의 기틀을 세워놓았음을 엿볼 수 있다. 존 H. 헤이예스(John H. Hayes)는 성서해석사전을 편집한바 있는데, 이 책은 정경과 정경 외적인 각 책들을 소개하고, 다양한 비평 방법론을 소개하는 동시에, 성서 해석분야에 업적을 남겼던 많은 해석자들을 소개하고 있다.20 한편 토마스 오덴(Thomas C. Oden)의 책임 편집 아래, 영국의 IVP 출판사는 2000년부터 「성경에 대한 고대 기독교의 주석」(Ancient Christian Commentary on Scripture)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는데, 2-8세기 사이에 씌어진 유명한 교부들과 주석가들의 성서 이해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또한 존 L. 톰슨(John L. Thompson)은 구약의 문제가 되는 본문들(입다의 서원, 시편의 저주문, 족장들의 비열한 행동)에 대하여 중세의 비평가들이 어떻게 이해했었는지를 분석하면서, 오늘날의 성서이해가 과거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음을 분석하고 있다.21

한편, 최근에 학자들은 그림이나 조각과 같은 예술작품을 통한 성서의 표현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윌리엄 존스톤(William Johnstone)은 중세시대의 유럽건축 양식에 나타나는 미술의 특징을 관찰하면서 당시의 성서해석에 주목하였다.22 그는 그림이 모형론적으로 전달하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고 평가하는데, 특별히 (그림 1)은 이러한 이해를 잘 보여준다. 사방에 빨간색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불인데, 이 불은 모형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리고 예수의 아래에 있는 불붙는 나무는 성령을 나타낸다. 이 그림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모세인데, 그의 지팡이가 이미 뱀으로 변화되어 있어서 이미 두 번째 소명의 사건임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림 1). “Bible window” in Köln Cathedral, in the Rhine valley in Germany (1280년)

그림에 대한 두 번째 예로, 스테판 프릭케트(Stephen Prickett)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글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그림으로 성서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러한 그림 기법의 변천 과정을 통해 성서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주장하였다.23 다시 말해서 그는 중세의 그림을 분석하면서, 그림이 성서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으며, 또한 교회의 교권을 높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그림 2).24 (그림 2)을 보면, 누구라도 직감적으로 창세기 3장의 내용을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그림은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사건의 진행을 말해주고 있어서, 글을 읽지 못하는 대다수의 신앙인들에게 매우 효과적인 교육적 도구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이 그림은 에덴동산을 완전한 원으로 그려냄으로써 성서가 말하는 온전한 세계에서 쫓겨나는 인류의 고통을 느끼게 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성서가 말하지 않는 것까지도 의도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바로 원의 중앙에 (하나님이 아닌!) 교회를 집어넣음으로써, 그리고 에덴동산의 출구를 교회의 입구로 묘사함으로써, 절대적인 교권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출교란 곧 저주라는 통념이 암묵적인 가르침으로 굳어졌다고 하겠다.

 

그림 2. ‘Paradise on Earth,’ Les Tres Riches Heures du dec de Berry


글을 알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세계를 인식하는데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프릭케트는 이러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 계기를 원근법의 발견이라고 제안하는데, 이를 통해서 시간에 대한 입체적 이해가 가능하게 되었고, 결국 성서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입장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하였다(그림 3).25 이제는 하나의 그림 안에 모든 내용을 집어넣기보다는, 핵심적인 사건을 묘사하되 원근법을 통해서 공간과 시간의 입체적인 관념을 지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성서의 내용에 대한 무시간적이면서 동시에 호교론적이었던 권위적인 가르침에서 탈피하게 해주었고, 원인과 결과의 관계라는 이성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림 3. ‘The Adoration of the Magi’, by Albrecht Durer, from The Life of the Virgin 1511


5) 종교개혁 시대의 구약성서 해석 방법

계시와 이성의 관계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고민과 함께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중세 가톨릭의 견해에 반발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해석자로는 루터와 칼뱅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전통적인 해석에 분리를 선언한 자들이었다. “그들의 기본 목적은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높이는 것이었다.”(p.42) 우선, 루터는 자신만의 6가지 원리(심미적, 권위적, 문자적, 충족적, 그리스도론적, 율법과 복음적 원리)를 제시했으며, 이를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믿음에 근거한 영적인 해석보다 성서 자체에 근거한(sola scriptura) 문자적 해석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그리스도론적 원리를 강조함으로써 교리를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특정 신학(이신득의)을 주장한 나머지 배치되는 성서를 정경에 탈락시킨 것은 비평적인 자세로 보기 어렵다.

칼뱅 역시 루터와 마찬가지로 “성서본문의 원어연구, 문법연구, 역사적 상황 연구 등을 통해 성서가 성서를 해석하게 하려는, 문자적 해석을 강조”하였다(p.43). 루터와 차이점이 있다면, 루터는 제도권의 폭정에 쫓기면서 자신만의 성서해석을 완성시켰던 반면에, 칼뱅은 당시 제네바를 신정국가로 건설하려는 사상 초유의 제도권의 중심이 되어서 성서해석을 실천시켰다는 점이다.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는 않는 내용이지만, 전기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는 칼뱅의 실천적 해석을 비평적으로 분석하고 있다.26 그는 칼뱅이 성서해석을 통해 만들어낸 신정국가 사회 안에서 일어난 반인륜적인 행태들을 고발하였는데, 그가 보기에, 칼뱅이 시도했던 성서해석을 통한 사회교화 혹은 신정국가 건설은 인간 본성의 다양성이라는 꽃을 꺾어버린 독재이자 폭정이었다.27



3. 결론

지금까지 연구자는 구약성서 비평의 역사를 정경화 작업의 시기에서부터 종교개혁 시기까지 간략하게 정리하였다. 수 천 년의 해석의 역사를 간단하게 요약하는 일은 연구자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다.28 성서를 해석했던 다양한 집단을 살펴본 결과, 어떠한 해석은 보편성을 주장하기에 무리가 있으며(쿰란 공동체), 또 어떠한 해석은 지나치게 신비적이어서 문자 본연의 세계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우화적 해석). 때로는 억압적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성서를 인용하였고(유스티누스), 반대로 어떤 때는 억압적인 상황을 입증하기 위해서 성서를 이용하기도 하였다(어거스틴). 이렇게 볼 때, 성서가 객관성을 유지한 채 읽혔던 적은 많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의 해석자들은 ‘언어’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 자료집을 만들거나(맛소라학자), 다양한 언어로 번역하거나(종교개혁자), 혹은 그림을 통해서 성서의 의미를 전달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든 이유는, 성서가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 단지 인간의 감성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평가된 것이 아니라, 인간세계의 전 영역에 본질적으로 의미를 정해주는 거룩하고 권위 있는 신의 말씀으로 전달된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조금 더 멀리 보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아이작 뉴턴의 말과 같이, 고대 해석자들이 남겨놓았던 고민의 흔적 위에서 발전을 약속하는 오늘의 해석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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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oy B. Zuck, Basic Bible Interpretation (David C. Cook, 1991), 27. [본문으로]
  2. 강성열, 「설교자를 위한 성서해석학입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18. [본문으로]
  3. V. George Shillington, Reading the Sacred Text: An Introduction to Biblical Studies (New York: T&T Clark Ltd, 2002), 12-79. [본문으로]
  4. Karel van der Toorn, Scribal Culture and the Making of the Hebrew Bible (Massachusetts: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234, 248, 260. [본문으로]
  5. Ibid., 235.; 참고. David E. Aune, “On the Origins of the ‘Council of Javneh’,” JBL 110 (1991): 491-93; Jack P. Lewis, “Jamnia(Jabneh), Council of,” ABD 3:634-37; Lewis, “Jamnia after Forty Years,” Hebrew Union College Annual 70-71 (1999-2000): 233-59. [본문으로]
  6. Michael Fishbane, Biblical Interpretation in Ancient Israel (Oxford: Clarendon Press, 1985) [본문으로]
  7. Frank Moore Cross, “The Righteous Teacher and Essene Origins,” The Ancient Library of Qumran (3rd ed.;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5), 88, 90. [본문으로]
  8. Ibid., 97-100. [본문으로]
  9. Ibid., 101, 118. [본문으로]
  10. Zuck, Basic Bible Interpretation, 28. [본문으로]
  11. Ibid., 32. [본문으로]
  12. 일레인 페이걸스, 「아담, 이브, 뱀」, 류점석·장혜경 공역 (서울: 아우라, 2009) [본문으로]
  13. Ibid., 92-3, 113, 118-9. [본문으로]
  14. Ibid., 202, 206, 212, 220. [본문으로]
  15. 그는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에서 벌어진 해석의 갈등을 두고 이 작업을 벌렸으며, 히브리어보다는 칠십인경(헬라어)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헬라적인 문법적 정확성과 유대적인 전통(구전전통)의 갈등을 온전히 해결할 수는 없었다. 참고. John Van Seters, The Edited Bible: The Curious History of the 'Editor' in Biblical Criticism (Winona Lake: Eisenbrauns: 2006), 87, 97. [본문으로]
  16. Martin Jan Mulder ed., Mikra: Text, Traslation, Reading & Interpretation of the Hebrew Bible in Ancient Judaism & Early Christianity (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Inc., 2004) [본문으로]
  17. G.K. Beale and D.A. Carson eds.,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Use of the Old Testament (New York: Baker Academic, 2007) [본문으로]
  18. Zuck, Basic Biblical Interpretation, 41-4. [본문으로]
  19. Stefan C. Reif, “Aspects of the Jewish contribution to biblical interpretation,” John Barton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Biblical Interpretation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155. [본문으로]
  20. John H. Hayes ed.,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Nashville: Abingdon Press, 1999), xlix. [본문으로]
  21. John L. Thompson, Reading the Bible with Dead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7) [본문으로]
  22. William Johnstone, “Moses in the Typology of European Art in the Middle Ages,” 미간행발표물. [본문으로]
  23. Stephen Prickett, “The Bible in literature and art,” Cambridge Companion to Biblical Interpretation, 160-78. [본문으로]
  24. Ibid., 164. [본문으로]
  25. Ibid., 165. [본문으로]
  26. 슈테판 츠바이크,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안인희 역 (서울: 도서출판 바오, 2009) [본문으로]
  27. Ibid., 91. [본문으로]
  28. 간단한 요약으로 다음을 보라: Zuck, Basic Bible Interpretation, 56-7.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