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신학-정치론], 김호경 역 (서울: 책세상, 2002)
성서를 연구함에 있어서,
언제나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영향력은 대단할 것이다.
아마 그 사람은 스피노자일 것이다.
중세의 1000년기의 사고를 뛰어넘은 '최초의 근대인'으로 알려진 스피노자는
'한세기를 앞서 간 생각'으로 성서해석에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인물이다.
사실, 교회사나 해석학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들은 '소문'만 무성했을 뿐,
스피노자가 원래 이름이 '바룩(Baruch) 데 스피노자'로 유대인이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안 사실이다.
약 400년전의 '선인'이 이러한 생각을 피력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움이다.
물론 번역자의 현대적인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스피노자의 감각은 정말 요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신학-정치론]은 스피노자의 글 중에서 3장(7,12,15장)만을 다루었다.
역자에 따르면(책 후반에 포함되어있는 역자해제를 통해서 스피노자를 간결하게 소개받을 수 있다),
스피노자는 [신학]을 통해서 기존의 중세사회 체제가 가지고 있는 권위적인 성서해석에서 벗어나,
누구나 권력으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종교를 가질 자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면에서 중세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의식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스피노자는 기존의 성서해석이 '정치적(이데올로기적)'이라는 면을 간파했다.
'자신들의 주장을 따르도록 다른 사람들을 종교적 명목으로 강요하기' 때문에, 그는 그러한 해석으로 가두어진 신의 말씀은 환상일 뿐이라고 폄하한다(p. 31).
스피노자는 당대의 계몽주의에 영향을 받아서 그랬겠지만, 매우 이성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즉, 중세적 개념이 가지지 못했던 원인과 결과, 즉 인과적 관계를 의미하는 '역사'의 접근을 선택한 것이다.
성서를 연구함에 있어서 저자와 독자, 문맥과 상황, 시대와 목적과 같은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평가기준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스피노자는 중요한 언급을 놓치지 않는다: '나는 말씀의 의미가 맥락을 통해 쉽게 드러나느냐 어렵게 드러나느냐에 따라 말씀을 불분명하거나 명료한 것으로 분류한다. 이는 진리가 이성으로 이해하기 쉽다거나 어렵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말씀의 진리 여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의 의미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p. 36)
이것은 해석에 있어서 매우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기존의 이해할 수도 없고, 또한 이해해서도 안되는(!) 신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스피노자는 최대한 인간의 삶을 위한(그것은 아마도 스피노자의 결론적인 주장인 보편적 자유라고 본다) 의미의 발견으로 '육화(incarnation)'한 성서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시대(계몽주의)의 장점을 분명히 인정했다(p. 56). 즉, 반대로 자신의 '이전의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피노자는 성서가 이성과 반대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계몽주의적 사고를 가지지 못했던 고대인들의 최선을 다한 노력으로 성서를 이해한 것이다: '각각의 복음서기자들이 그들의 복음을 선포할 때처럼,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분명하게 설명하려는 매우 단순한 목적으로 글을 썼다. 그들은 다른 복음서를 설명할 목적은 갖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사람들이 그 구절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이야기는 여전히 분명하고(의미가 되며!), 사람들도 여전히 행복할(진리일) 수 있을 것이다.'(p. 77)
이렇게 스피노자는 근대적 사고를 가지고 권위에 사로잡힌 성서의 족쇄를 풀어주었다. 그 뿌리에는 성서를 '제대로' 읽었던 내공(유대인으로 히브리어 안내서를 낼 실력은 충분했다)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 열매는 인간에 대한 바른 이해였다: '꾸밈 없는 순종이 구원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자연의 빛을 통해 정의할 수 없고, 구원이 우리가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신의 특별한 은혜에서 생긴다는 것을 계시가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에, 성서는 인간에게 매우 큰 위로를 해줄 수 있다. 인류 전체에서 비교해보면, 오직 이성의 인도로 덕 있는 삶의 방식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소수인 반면,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가능하기 때문에, 성서의 증언을 갖고 있지 못했다면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한 구원을 의심해야 했을 것이다'(p. 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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