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구약예언서 이해(차준희 편)

진실과열정 2006. 2. 4. 16:17
 

차준희 편, 구약예언서 이해, (충남:한국신학연구소, 1996)

양지웅(Th.M) 요약


 

*문서 예언서 이해(볼프)

전환점의 예언자-예레미야; ‘-을 위한 심판’: 이것은 결국 희망이다(25).


*예언서 연구사(최준희)

-창조적 개인성은 이스라엘 종교를 자연종교와 제사종교의 수준에서 윤리종교로 발전시켰다고 본다(둠, 48). 이는 예언의 독자적 중요성이 확보되었다는 주장이다.

-예언의 두가지: 약속, 위협의 미래선포(50)

-슈미트(Schmidt)는 아모스의 연구를 통해서, “백성 전체를 향한 심판 선포는 고대 근동에서도 그리고 이스라엘 스스로도 알지 못한 전혀 새로운 것이다”라고 말한다(60). 이러한 점들을 마리문서나 고대 근동에서도 그 유사점을 찾아볼 수 없는 이스라엘 문서 예언자들만이 지니는 독특한 면이라는 것이다. 마리문서의 예언자들은 왕들에게 조건적 심판을 선포하는 반면에, 이스라엘의 문서 예언자들은 자기 백성 모두에게 무조건적인 심판의 ‘과격성’을 보여준다(암 5:21ff; 사 1:10ff; 렘 14:11; 15:1). (61-62).


*예언 선포의 의도(차준희)

사회 비판, 회개 촉구 도 아니며, 막 도래할 멸망이 이스라엘의 죄로 인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임을 알리는 것(미래선고), 그럼으로 예언자들은 야훼의 정당성을 변호했다(93).


*예언자들의 메시지(W.H.Schmidt)

“예언은 다가오는 시대를 통한 현재의 절단을 바라지 않으며, 오히려 현재의 역사적인 관계들이 근본적으로 변화될 정도로 현재가 변형되기를 바란다.”1)


이스라엘의 역사와 비교하면서, 고대 근동의 예언과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황홀경 현상: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때제은 무리들에서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나타나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는 어떤 발전과정도 추론할 수 없다(99).

황홀경은 가나안인으로부터 이스라엘에 전수됨, 출신지를 따르면 이 예언은 아마도 소아시아의 것(G. Hoelscher, 103)  황홀경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J. Lindblom, 104).


비교자료:

-벤-아문의 여행기(가라, 보낸다의 정형화; 사 6:8-9; 렘 1:6-7),

-하맛의 짜키르의 비문(황홀경에 빠지지 않은 그룹),

-마리의 편지: 마리와 이스라엘 예언사이의 역사적인 관계 추측, 시리아-아라비아의 사막에서 BC 20C 경에 시리아-팔레스틴과 같은 메소포타미아의 정착지로 이주한 소위 (원)아람의 방랑운동에 합류했기 때문(M.Noth, 103).    평행구절의 발견으로 구약문서예언자들의 성격이 발견된다: 무조건적인 파멸의 예언(아모스).(104).


10세기 경에도, 근동지역의 두 현상: 단독 예언자들과 황홀경에 빠진 무리들의 예언이 역시 나타났다. 그런데, 이전에는 자의식이 상실되었는데, 이제는 지성이 기본적인 요소로 남아있다(왕하 3:15).


나비는 문서예언자들에게 기피된 용어이다(암 7:12-15; 사 30:10), 107).

예언자에 대한 명칭이 바뀐 것(삼상 9:9)은 예언이 원래 나중에야 비로소 한 개념 아래 요약된 서로 다른 종류의 현상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암시한다(108).


엘리야의 예언운동: 무리와 개별예언자의 갈등의 원조, 이는 야훼 신앙의 독특성과 배타성에 대한 증대하는 인식을 제공하는 요인이 된다(109). 첫 번째 계명의 준수자(출 22:20)이기 때문이다.

또한, 선생-제자관계의 전승군을 이루게 된다(111): 호세아-예레미야-에스겔, 이사야-2이사야-3이사야(112). 단독예언자의 순수성이 부각되는데, 집단예언자는 권력에 종속되는 사람들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문서예언자들은 왕권과의 대결자로 나타난다(113).


백성전체를 향한 파멸 선포는 문서 예언자들에게 위임된 일이었다(116).



메시지

1.예언양식

범죄행위를 비판함, 그러므로 예언함(왕상 12:19; 왕하 1:3-4)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라는 메신저 공식을 통해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117).


소명기사: 천상회의 환상(사 6장; 40장; 겔 1장; 왕상 22:10ff; 슥 1:7ff; 욥 1), 하나님의 대화(렘 1; 출 3-4장; 삿 6:11ff; 삼상 9장)(122). 이 소명이 그들의 근거이지만, 그들의 연설이 가장 중요하다.



전승과 예언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예언자들은 구원전승의 추종자인가? 파괴자인가?

유월절 전통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아모스(7:8; 8:2는 출 12:23,12의 단어이다).

출애굽 전통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호세아(1:9는 출 3:14, 3:7의 내백성에 반대한다).


참예언자와 거짓예언자와의 구분 기준(136)

생활 태도(렘 6:13; 23:10-11,13-14; 29:23; 미 3:5), 예언 전승과의 연속성(렘 28:8) 내지는 유비(26:17ff), 대적자의 전권에 대한 논쟁(23:16ff; 미 3:6-7), 계시를 받는 방법(렘 23:25ff).

성취의 유무(왕상 22:28; 렘 28:9; 신 18:20)는 회고의 수준이며, 제한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전환(구원의 약속)

위협의 말에 비해 약속은 매우 소수에 그치고 있다. 그래서, 후대의 문서라고 생각되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전환은 어떻게 기대되는가? 그것은 파멸 선고를 확정한 그 “나”가 또한 미래의 구원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심판을 넘어선 기대의 발단이 될 수 있다(157).

명백한 것은 구원이 이전에 존재하던 것의 계속이나 계속된 발전이 아니라 심판 안에서의 혹은 심판 이후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이다(159).



구원과 회개의 관계

구원약속은 일반적으로 인간적인 행위에 근거를 두지 않는다(164). 오히려 인간의 새로워짐은 죄의 용서에 근거를 두거나(렘 31:34; 사 44:22; 54:6ff; 슥 13) 혹은 영의 강림을 통해서(사 44:3; 겔 39:29; 욜 3; 슥 12:10) 기대될 수 있다. 참회는 구원을 위한 전제조건이 아니며, 오히려 구원이 돌이킴으로의 소환을 위한 전제와 근거이다(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