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 Lee Holladay, Jeremiah: A Fresh Reading (1990)
양지웅(ABGTS, Th.M) 요약
연대기적 재구성으로 접근한다. 이는 과연 불가능한 것인가? I see no way out of the problem. This is the way I see Jeremiah!
1. 예레미야와 그 세계
예레미야서는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1, 2-23, 26-29, 30-31, 32-44, 45-51, 52장. 여기에서 26-29장과 32-33장은 전기적인 정보를 보여주지만, 연대기적 순서를 정교하게 짜맞추기는 어렵다. 한편, 성서 역사에 있어서 예레미야서의 중요성은 대단하다. 예레미야는 의문을 품은 예언자(the questioning prophet)이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시간은 627년이고, 장소는 팔레스틴으로 고지대의 테라스를 가진 농경 사회였다. 우기는 10월에 시작하여, 3-4월에 끝난다(북/서쪽이 농경에 가장 좋다). 분열 왕국 이후, 사람들은 야웨 아래에서 연합된 ‘한민족’임을 잊지 않았다. 주변 강국이 있으니, 오래 전부터 애굽(특별히 918, 671년)과 앗수르(나 1:12-3:14)의 영향력이 심했다. 결국, 앗수르는 722년 북이스라엘을 함락했고, 701년 예루살렘을 침략했다(왕하 18:13-19:4). 므낫세 시절(687-642년) 앗수르 아래에서 위성국가가 되기도 했다. 엄청난 세금을 지불하고, 유다는 점점 앗수르화 되어갔다(종교, 문화). 이때 요시야가 등극하는데(627년), 앗수르는 쇠약해지고 있었다. 612년 앗수르는 멸망하고, 바벨론이 신흥강국으로 일어섰다. 이 바벨론에게 587년 예루살렘은 멸망당하고 만다.
2. 모세와 같은 예언자
역사적 개요: 바위지대인 아나돗 출신으로, 예루살렘에서 5Km 떨어진 곳이다. 힐기야는 아나돗에서 희생제사를 주관했고, 또한 제사장의 교육(옛전승, 언약규범)을 담당하기도 했다. 아버지 힐기야와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사항은 ‘실로’인데, 실로는 아나돗 북부 20마일 거리이며, 100년전 언약궤가 있었던 장소이다. 이는 모세의 야웨주의와 연결된다(렘 15:10). 아나돗은 솔로몬 시절에 아비아달(엘리 가문의 최후의 1인)의 유배지이기도 하다(왕상 2:26).
1:4-10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627년 예언을 시작했다면, 다음의 문제들이 생긴다: ①627년 이후의 예언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②요시야의 개혁(622)과 관련된 것이 없다. ③북의 재앙도 언급한 것이 없다(4:6-7; 5:15-17; 6:22-23). ④15:16은 성전의 문서발견 이후(622년)를 암시한다. ⑤독신 선포(16:1-4)는 601년으로 보인다. 결국, 627년에 사역이 시작했다고 한다면, 너무 늦은 것이 된다.
신탁의 부재: 요시야에 대한 긍정적 반응(왕하 23:25; 렘 22:13-19). 2-10장(배교, 언약파기, 우상숭배의 매춘화, 북의 재앙)은 예레미야의 초기 사역으로 보기에 무난하다. 이는 요시야 시대는 아니다(대하 34). 오히려, 예레미야의 초기신탁은 여호야김 시대(요시야 사후인 609년)가 알맞다(3:12-14; 31:4-6).
요시야 개혁: 신명기의 발견(왕하 22:3-23:24)과 예루살렘 중심의 개혁(사 18:6-8; 왕하 23:8). 개혁의 또 다른 이유는 세금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무튼 개혁의 결과는 없었다. 예레미야의 반응도 없었다. 부정적(8:8-9)인가? 아니면 긍정적(11:1-13)인가? 결국, 어떤 명확한 말도 찾을 수 없다.
북의 재앙: 앗수르와 바벨론은 아니다. 헤로도투스에 의해 스키타이인들이 주장되지만 최근엔 부정된다. 이는 신화적 차원이며, 바벨론이 유력하다.
새연대기: 627년이 아니라, 여호야김 등극시의 성전 설교(609년)라고 한다면, 이 둘의 상관관계는 옳다(22:13-19; 36:11-32). 627년은 1:5을 예레미야의 생일로 본다(622년엔 5살이다). 15:16은 신명기를 상정한다(왕하 22:13; 23:2). 결국, 622년(5살)에 그는 부름을 받은 것이다.
소명: 1:4-10에서 4절의 ‘야웨의 말씀’(다바르)은 ‘말’과 ‘일’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야웨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은 실제적인 개념이다. 모세와 같은 예언자는 신 18:18; 렘 1:9,7에 나타나는데, 이를 예레미야의 자기 확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예레미야는 주저했다(4:1-17), 그의 소양이 부족한 듯하다(출 4:10; 렘 1:6). 한편, 예레미야는 신명기를 들을 수 있었을까? 신 31:10-13은 대속죄일(욤키푸르)의 낭독을 언급한다. 즉, 622년, 615년(12살)엔 참여가능했을 것이며, 608년(609년에 성전설교)으로 이어진다.
야웨로부터 확답을 받음: 고대근동 상황에서 유소년인 예레미야의 활동은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시 22편은 예레미야의 모세 기술이다(출 1:22; 시 22:10). 그러므로, 1:8의 야웨의 안심이 절대로 필요하다. 소명은 두려운 것이기 때문이다(1:10). “뽑으며(pluck up), 파괴하며(break down),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build), 심게(plant)”에서 중앙의 두 개는 후대의 삽입이며, 교차대구 형태를 띈다. 뽑으며, 심는 것은 나무이며, 파괴와 건설은 집이다. 1:11-14의 환상은 예레미야의 소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언어유희가 독특하다. 이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소리’의 힘까지 고려되고 있다. 두 번째는 조리그릇이 살균되는 의미로(겔 24:11), 예레미야는 북지파의 회복을 말했으나, 후대는 바벨론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3. 성전설교
609년 상황. 7:1-15은 설교의 내용이며, 26장은 네러티브이다(7:13-15; 26:5는 후대의 삽입이다). 배경은 앗수르 격파(612년)로, 두피한 잔당의 하란 거점이 격파된다(610년). 바로느고가 등극하는데, 바벨론의 하란 접근에 경계를 하게 된다(609년). 이때 요시야의 개입과 죽음이 이어진다(왕하 23:29; 대하 35:25). 이후 ‘땅의 사람’(개혁동조파?)에 의한 여호아하스 옹립이 진행되고(왕하 23:30), 갈르미쉬를 거점으로 삼은 애굽은 여호아하스를 인질로 삼고(22:10), 그 형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운다(609년 10월). 26:1의 ‘즉위초’는 새해 첫날 이전을 뜻하는 용어로 609년 가을이 된다. ‘여호와의 전’이라는 공식어구는 앗수르 위기(701년)의 극적 모면됨을 추측케한다. 또한, 요시야 시대의 중앙성전화로 인한 시온불패 의식도 있었을 것이다. ‘땅’도 그러하다. 악한 일을 돌이켜야 하며(26:3), 이는 우상숭배 하나만이 아니라 신명기적 윤리의 실천에 있다(7:6). 이는 공평, 약자보호, 야웨께 신실함으로 표현되는데, 바알주의와 대치되는 언약의 정신이다. 12절의 실로는 역사적 경험을 의미한다(시 78:60; 삼상 4). 성전도 그러하지 않겠는가? 조건적 멸망이 제기된다(26:3,13). 제의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이러한 선포에 대해서, 공직의 반응은(26:7-24) 11절에 의하면 신성모독보다는 반역죄에 해당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재판을 시도하는데, 방백들은 ‘종교적’ 차원으로 문제를 접근했다. 한편, 10절부터 ‘방백’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우호적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미가의 예를 들고 나온 장로들이 있었으며, 우리야의 죽음과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도움이 이어진다. 신성모독이냐 반역이냐: 당시엔 종교와 국가가 동일시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살해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22:13-19에서 여호야김의 땅의 사람들에 의한 세금 징수(왕하 23:35), 왕궁 건축의 부당한 방법(22:13-14)이 기소된다. 결국, 어리석은 죽음을 예고당한다. 17:11도 여호야김과 비슷한 맥락이다.
4. 하나님의 백성들아 돌아오라!
신실한 이스라엘(2:1-3): 히브리시의 평행법이 등장한다. 2절의 ‘기억’은 창조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개념이다. 불신실한 이스라엘(5-13절): 5절은 대중관계를 수사적으로 표현하며, 특히, ‘헛됨’(헤벨)은 의미나 모양이 없다는 것으로(hot air), 음성적으로는 ‘바알’과 유사하다. 한편, 고고학적으로는 아스타롯(여성신)의 형상은 발굴되지만, 바알상은 없다. 고대인들에게 이 차이는 야웨의 ‘언약적-윤리적 행동요구’ 성격을 보여주는 차이이다. 즉, 예언자들에게 제의 의식에 있어서 방탕함 자체가 비난의 이유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가능한 연대는 2절의 원어표현이 신 31:11과 유사하므로, 7년 주기의 신명기 낭독회로 여길 수 있으며, 그러므로 608년 가을 장막절일 수 있다. 그럼, 왜 시인가? 전통전승의 여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2:14-37에서 이스라엘의 불신실하은 계속된다. 성적 간음으로 묘사되고 있다. 3:1-4:4에서, 유다의 불충이 다양한 시로 표현된다. 그 사이 두 개의 산문이 후대의 편집으로 끼어있다(3:6-11,16-18). 이스라엘의 아내됨과 자식됨은(3:1,19) 호세아 전승과 유사하다(호 1-3; 11:1-9). 에스겔은 이를 정리한다(겔 16). 여기서 초점은 아내와 자식은 남편과 부모에게 속해있다는 점이다. 계속해서 이스라엘과 바알(보세트, ‘수치’)과의 잘못된 관계를 비난하고, 참바알인 야웨와의 바른 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4:1-4는 이스라엘이 취해야할 기초적 자세를 보여준다. ‘돌아오고, 평정심, 진실말하기’이다. 성적 은유에 대하여, 오늘날의 고차원적 ‘외도’가 아니다. 실제적인 이스라엘의 개념이다. ‘알다’는 ‘성교’이며(창 4:1), 이스라엘 행위의 요점은 2:27의 ‘등을 향하다’(출 32:9)이다. 야웨는 이스라엘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
5. 전쟁준비, 예레미야의 낭독
4:5부터 10장까지의 시들이 있으며, 연구에 앞서 갈그미스 전투(605년), 토기장이 방문(18:1-12), 두루마리 낭독(36:1-6)을 볼 필요가 있다. 즉, 본문은 605년의 사건이다.
갈그미쉬: 갈그미쉬(46:3-12) 이후 시리아의 하맛(다메섹 북쪽 120마일)이 파괴되고, 그해 부친 사망 이후 느부갓네살은 왕이 된다. 604년 바벨론의 팔레스틴(아스켈론) 초토화. 바벨론의 봉신이 된 여호야김(왕하 24:1; 렘 2:18,36). 46:3-12는 갈르미쉬 전투를 의미하며,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을 세웠던 애굽의 힘이 보잘 것 없음을 조롱했다.
토기장이(18:1-12): 키워드는 ‘갑자기’(אמר)이다. 야웨의 절대적 주권을 의미한다. 이는 609년의 하란(애굽)에서 605년의 하맛(바벨론)으로 변화를 의미한다.
두루마리 낭독(36:1-8): 여호야김 4년은 605년 봄에서 604년 봄 사이이다. 이때 예레미야는 성전 출입이 금지되었다. 바룩이 고용되고, 그 내용은 경고와 심판 예고일 것이다(7절). 원본 두루마리는 아마도 2:1-4:4의 야웨의 기소의 부분일 듯하다(3:12,14,22). 4:5-8,13-18,29-31는 복잡한데, 두루마리엔 4:14는 같은 방향일 것이다. 13-18절은 화자의 변동이 심하다. 처음과 끝은 야웨+예레미야의 순서이다. 4:5-8은 공성전을 상정하며, 이때의 북방의 재앙은 여러 가지 의미로(겔 38:15; 욥 37:22) 바벨론이다. 언약파기 이유로 야웨 역시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선포하신다(출 15:3; 렘 2:3).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예견이 아니라, 회개를 요구하는 야웨의 가능한 계획이다(36:3). 6:1-8은 역시 마찬가지로, 여기도 회개를 요구하는 야웨의 경고가 들어있다. 결국, 첫 번째 두루마리에는 2:1-4:4의 기소사항과 네가지 시(4:5-8, 13-18, 29-31; 6:1-8), 그리고 성전 설교(7:1-12, 이는 6:1-8과 유사하다)가 들어있다.
두루무리와 서시관: 사실, 그 시기는 말하고 듣는 시대이다. 예언은 기억되는 것이며, 오랜 후에 제자들이 수집하고 하나로 묶는 것이다. 바룩은 교육받은 서기관 중 하나이며, 그마랴라는 동료도 있었다(36:10,14). 바룩 인장이 발견되었는데(7-6세기경), “Berechiah son of Neriah the scribe”를 말하고 있다. 한편, 45장에도 바룩은 언급되고, 이는 같은 연대이다.
6. 전쟁의 소문과 가뭄
604년 이후 3년간의 사건들이 나타난다.
604년: 렘 47장에 블레셋에 대한 예언이 있는데, 이전 애굽에 대한 비난(46:3-12)과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바벨론의 승리는 야웨의 뜻이다. 5:1-9에서 무리와 지도자 모두의 돌아섬이 나오는데, 전자는 하나님의 법 자체를 모르고, 후자는 하나님의 법을 알아서 버렸다. 무리와 귀인의 관계는 5:1-9; 14:2-6에서 나온다.
601년의 가뭄: 두루마리 낭독(605)이후, 4년의 기간이 지났다(36:9ff). 601년이며, 선포된 금식일은 절기를 따른 것은 아니었다. 그럼? ① 604년 바벨론의 아스켈론 파괴를 보고 하나님 앞에서 금식일을 선포한 것이다(? 그런 여호야김이 두루마리를 태웠을까?). ② 601년 나일 델타지역에서 바벨론의 대패배 이후 위협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한 여호야김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가뭄의 맥락일 뿐이다. 이는 이스라엘 기후상의 특성이다(금식이 아니라 굶식일 뿐이다). 5:20-29에서 여호와를 두려워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형벌은 가뭄이다(24-25). 이어지는 새 사냥꾼의 모습은 가뭄의 상황에서 채무관계로 노예화되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9:2-9에서 백성의 악은 바알의 숭배와 관련된다(말의 힘?). ‘온전히 속이는’(야곱) 행위는 무엇인가? 법정상황인가? 8:4-13에서 601년의 신명기 법전 낭독이 장말절과 함께 있었다. LXX에는 10b-12절이 없다. 10a에서 장막절(feast of gathering)이 feast of ingathering이 되었다. 이는 종교적 상황에서, ① 우상숭배로 가뭄을, ② 북의 재앙을 가져다 주겠다는 표현이다. 14:1-15:9에서, 가뭄(14:2-6)과 북의 재앙(15:5-9)과의 연결이 이루어진다. ‘칼, 기근, 염병’(14:12,15,18; 15:2). 이는 601년 11-12월의 금식일로, 공동체 애가가 함께 한 제의적 행위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러한 제의에 반대한다. 그들에게는 스올의 공포만이 있을 뿐이다(15:5; 14:18; 15:7).
7. 왕이 두루마리를 태우다. 하나님이 드디어 행동으로 옮기다.
601년 나일 델타에서 바벨론이 패배하자, 여호야김은 봉신의 자리를 던져버린다(왕하 24:1).
바룩이 두루마리를 읽다(렘 36:9-31): 가뭄으로 인한 금식이 선포되자, 좋은 기회가 생겼다. 왕 앞에서 낭독하다. 누구도 옷을 찢지 않고 말씀을 찢었다. 사반이 신명기법전을 요시야에게 가지고 왔듯이 회개했으나, 사반의 아들 그마랴가 중심인물이 되어서(36:10,12,25) 회개하지 않았다고 Dtr은 보여준다. 36:25에서 본문의 문제가 있다. 재구성하면, ‘찢어라’(엘나단, 그달랴)와 ‘찢지 말아라’(들라야, 그마랴)에서 예언의 효력 상실을 위해서 여호야김은 두루마리를 태웠다. 예언의 방향이 바뀌었다. 왕이 심판의 대상이 되며, 이로 인해 온나라가 황폐해진다(5:4-5은 무리에서 귀인으로 바뀐다).
두 번째 두루마리(렘 36:32): 여기에는 신탁과 605년 갈그미쉬 이후 예레미야의 심경이 반영되어있다. 4:9-12,19-28에서, 평행하며, 4개의 키워드(마음, 심령, 광야, 말하다)가 나온다. 결국, 예레미야의 처음 두루마리(4:5-8,13-18,29-31)에 더했다(9-12,19-28절). 평강의 예언자들은(4:10) 거짓 예언자이다(14:13-14). 이는 예레미야가 처음엔 참 예언자라고 생각했지만, 19절의 예레미야의 ‘나의 그릇’에 22절의 야웨는 ‘나의 백성’으로 답한다. 23-26절은 완벽한 시로, 무생물과 생물이 대조되는데, 창조에서 언약백성으로 이어진다. 27절은 본문상에 문제가 있다. 모든 것이 무너질 뿐이다. 5:10-17에서, 야웨의 분노는 꺼지지 않는 불이다. 8:14-9:1과 9:17-22은 완전한 절망을 의미한다.
반모세-예레미야: 백성을 위한 기도를 금지 당한다(7:16-20; 14:11). 모세(15:1)의 반대이다. 어떻게 야웨는 그렇게도 무지막지할 수 있단 말인가(6:11). 이는 오래된 이야기일 뿐인가(창 18:23). 백성의 파멸(4:19-21; 8:18,21-22; 9:1)에 대한 연민이 나타난다(4:11; 6:26; 8:19,22; 9:1). 언약공동체는 ‘전체성의 원리’인가?
결혼 금지 명령: 호세아서와 정반대로 결혼이 금지된다(16:1-9). 이는 깨어진 언약관계를 말한다. 627년이 출생일이라면 601년은 26/7세이며, 627년이 소명일이라면, 601년은 40세이다. 상가/결혼식에 참여하지 말것은(5-9절), 돕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상징한다(9:17-22). 결혼 금지는, 생의 연속성을 의미하는 자녀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창 28:14). 이는 생의 종말이다.
8. 서기관과 예언자, 하나님께 대항한 예레미야
성전 예언자에 대한 적개심: 19:1-20:6에서, 하시드 문은 쓰레기를 버리는 힌놈의 골짜기를 향하는 것과 관련있을 것이다. 오지병은 קוּבק(바크부크)로 의성어를 나타낸다. 바스훌의 예레미야 핍박(20:1-6)에 대하여, 야웨는 그 이름(모든 면에서 풍성함)을 정반대로 바꿔준다(모든 면에서 공포). 23:9-33에서(34-40절은 후대의 삽입), 가뭄은 계속되며(10절), 거짓 예언도 계속되고 있다(14:13-18). 예언의 대결이 나온다(신 18:20).
예레미야의 고백: 이는 야웨를 향한 불평과 애가이다. 다른 예언 문학에서 발견되지 않는 부분이다. 두 시기에 발생한 것으로, 600년, 594년 여름이다. 11:18-23에서, 예레미야의 고백(18-20절)에 야웨는 응답한다(21-23절). 10a절은 ‘let us destroy the tree by his opponet’(바스훌)로 번역된다. 야웨는 공의로운 심판관이며, 야웨의 응답은 거짓(평화) 예언자들을 심판한다. 한편, ‘아나돗’은 후대의 첨가이다. 12:1-6에서, 법정적 용어를 사용하며, 계속되는 가뭄속에서, 지혜문학(시 1편)의 무용성이 거짓예언자들(23:23)에게 해당되고 있음을 말한다. 이에 대해 야웨는 거짓예언자1)들 간의 쟁투를 암시한다(23:21). 역시 아나돗은 후대의 첨가이다. 15:15-19에서, 예레미야의 핍박자에게 복수를 부탁하며, 자신의 소명사건까지도 언급하지만, 결국, 예레미야는 야웨가 바로 속이는 시내(2:13)이었다고 싫어한다. 이에 대한 야웨의 대답은 무엇인가? ‘네 자신을 회개하라’ 17:5-8에서, 지혜전승(시 1; 렘 12:1-2)이 회복된다. 야웨를 의지하는 사람은 가뭄에도 문제없다! 18:18-23에서, 모략가들의 음모에 대하여 예레미야는 저주를 구하고(4:19-21) 야웨의 구체적인 대답은 없다. 한편, 이러한 애가가 왜 남겨졌을까? 이는 신앙공동체가 신앙이라고 생각했던 신앙의 비밀이다.
예루살렘 포위(599-598년): 나일 델타지역 사건 이후(599년), 느부갓네살은 유다 주변의 암몬과 같은 나라를 조종하여, 유다를 공격하게 한다(왕하 24:2). 결국, 598년 12월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이때 여호야김은 돌연 사망한다(암살?). 18살 아들 여호야긴이 즉위한다(왕하 24:8). 10:17-25에서, 포위된 예루살렘과 성서를 인용하는 기도문(23-25; 잠 16:9; 시 6:1). 성서는 그들의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야웨가 이성을 지킬 것이다!” 22:24-27,28-30에서, 여호야긴은 급히 항복했다. 바벨론 기록에 의하면, 597년 3월 16일이다. 여호야긴(고니야)은 무엇을 잘못했는가?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29절) 이러한 표현은 무슨 이유가 숨어있는가? 이들은 포로가 되었다(왕하 24:12-16엔 만명끌려가서 남은자가 없다2); 렘 52:28은 3,023명이 끌려갔다). 여호야긴은 후에(37년) 풀려나, 직위복권된다(왕하 25:27-30).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김의 형제, 시드기야를 세운다. 한편, 여호야김의 다른 아들은? 시드기야는 누구였는가(36:12)? 결국, 파벌이 생겼다. 중요한 것은 예레미야는 포로민들중에 없었다. 성밖에 있었거나, 권력 주변인이었을 것이다. 한편, 에스겔은 잡혀갔으며, 5년후(593년) 예언을 시자간다(겔 1:1-3). 이 둘의 접촉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렇다면 바벨론의 정책은 어떠했을까? 또한 남은자들의 심리(적응/대응)는?
9. 바벨론의 평화를 구하라
사람들이 제기할 수 있는 두가지 문제: 합법적인 왕은 누구인가? 23:5-6에서 ‘시드기야’를 인정하는 것 같지는 않다.3)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은 누구인가? 형벌은 이렇게 끝나는 건가? 남은 우리는 괜찮은가?
자기만족(렘 24장). 좋은 무화과(유다 포로)와 악한 무화과(시드기야와 방백, 완전한 멸절을 예고함). 바벨론 우상화(10:1-16): 포로가 된 사람들에게 창조신이 아닌 말둑(50:2)신을 섬기지 말것을 요구한다(11절). 사람이 우상을 만들지 않았는가? 그러나, 야웨는 천지를 만들었다! 11절이 절정으로, 예레미야는 아람어도 능히 알고 있었다(바수훌, 20:1-6).
594년의 사건과 예레미야의 반응: 595년 12월-594년 1월에 바벨론 내부의 반란이 있었다(곧 진압됨). 이 소식이 들려오자, 반란분위기가 조성되고, 이에 더하여 애굽에서 새로운 바로인 프삼메티쿠스 II세가 등극하게 된다. 렘 27장에서, 594년 초여름, 사신들의 회합(에돔, 모압, 암몬, 두로, 시돈)이 이뤄진다.4) 그러나 착각하지 마라! 야웨는 모든 땅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도 느부갓네살에게 양도했다! 이에, 예레미야는 줄과 멍에(목걸이 형태)를 보여준다. 이는 다른 나라에게 전해진 야웨의 선언(야웨의 주권)이기에 독특하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믿지 말라(시드기야에게도 거짓예언자들이 있었다!). 렘 28장에서, 594년 7-8월. 바벨론 패망과 여호야긴의 재기를 예언하는 하나냐. 그러나, 평화예언자는 그것이 실행되고 나서 결정난다. 한편, 예언자들의 ‘전쟁선포’는 중의법인가? 즉 예레미야와 거짓예언자들의 대결인가? 멍에를 깨트리며 ‘내년’을 약속하는 하냐냐. 철멍에가 대신하며, 하나냐는 올해 죽는다. 하나냐의 죽음은 594년 신명기 낭독 이후이다. 포로민들에게 편지(29:1-23)에서, 평화를 비는 인사말은 없다(5절로 시작). 그들은 그곳에서 사는 것이 평화의 길이다(7절). 바벨론의 평안을 빌라(시 137편?). 스마야의 편지(29:24-32)에서, 제사장 스바냐(바스훌과 같은 보안책임역할)에게 편지했다. 미친 예레미야를 체포하라!
새로운 고백: 6-7년이 지난 594년 새로운 고백을 하다(하나냐와의 관계는 계속된다). 렘 11:21,23; 12:6에서, 예레미야의 적대적 관계를 말하고 있다. 그들은 네 뒤에서 ‘취했군!’이라고 외칠 것이다(6절). 스마야가 했던 것 같이. 그럼 왜 가족들은 예레미야를 핍박했을까? 예루살렘 권위에 도전했기 때문에? 가까운 고향사람인 하나냐(기브온)와 대결해서?(28:1) 결혼/장례같은 가족일에 참여하지 않아서?(15:17) 렘 15:10-12에서, 가족의 핍박보다는 대적이 하나냐이며, 철멍에로 바꾸려는 명령이후(28:10-13)에 해당한다. 애초부터 예레미야가 쇠기둥이 되려고 한건 이를 위함이다(1:17-19; 15:20-21). 렘 17:14-18; 20:7-12; 11:1-13; 20:13; 20:14-18에서, 예레미야는 자신이 야웨에게 강간당했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그의 선포가 강포와 멸망이기 때문이다. 10절의 대적은 낙관예언자(11:18-19)이며, 도움을 간구하는 기도는 6년전에도 했다(11:20). 11:1-13은, 594년 10월초 신명기법전의 낭독이며(3,8절), 5절의 아멘(신 27:15-26)은 해석된다. 쇠풀무(4절) 애굽은 예레미야의 당시의 표현이며, 반역(9절)은 이웃나라를 끌여들이려는 시드기야를 가리킨다. 이 시기에 하나냐는 죽는다(28:17). 7월은 장막절로, 신명기가 낭독되는 시기이다. 사건 이후 예레미야가 인정받은 것인가?(신 18:20) 20:13은, 하나냐의 죽음이 배경이다(15:21). 예레미야 고백록의 기록이유가 드러난다. 즉, 하나냐의 죽음을 바라는 예레미야의 기도를 야웨께서 들으신 것이다. 예레미야는 참 예언자가 된 셈이다. 20:14-18은, 14절은 그의 생일이 이미 저주를 받았다고 선언한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옹호받지 못했다. 12년간의 심판예언이후 588년 갑자기 희망이 선포된다. 아나돗의 땅구입 이후이다.
토지 구입(렘 32): 조카인 하나멜이 재정적 도움을 청했다(레 25:25). 588년은 바벨론 2차 포위공격 시이다. 계속된 심판 예언으로 인해,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사실상’ 감금한다(전형적인 구속장치가 당시엔 없었다). 하나멜이 팔려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제일 가까워서? 이집트로 이주하기 위해서?) 이로 인해 화해할 수 있을까? 은 17세겔(200g)이라고 했는데, 주조 화폐는 페르시아 시대에 가능했으며, 이는 어느 정도의 가치였는지는 모른다. 바룩이 보관했다. 그러나, 사실 지금은 갈대아인의 손에 붙여있지 않은가?(16-25절) 야웨는 형벌 끝에(36절) 다시 돌이킬 것을 약속하셨다(37절). 여기서 예레미야는 야웨의 돌이키심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588년, 드디어 예레미야는 좋은 소식을 전한다.
희망의 두루마리(30-31장): 609년 이전의 소년 예레미야의 북에 대한 선언(3:12-14; 31:4-6)이 있기는 하다(요시야 왕에 의한 재결합-31:6,9,18,20).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남에 대한 것으로 바꾼다(30:5-7; 30:12-15; 30:18-21; 31:1; 32:2-6,9b; 30:15-17; 31:18-20; 31:21-22). 30:5-7,10-11에서, 야웨의 예루살렘을 향한 무차별한 심판이 행해진다. 7절의 희망은 원래는 수사의문문(네가 구원받겠느냐?)이다. 그러나, 남을 향한 예언으로 재사용했을때, 10-11절을 더하여 7절은 소망이 되었다(8-9절은 후대의 편집). 30:12-17에서, 12-15절은 북을 향한 심판, 16-17저은 남을 위한 확장이다. 30:18-21; 31:1에서, 북을 향하지만(21절의 요시야), 예루살렘의 회복도 들어있다. 22절(LXX은 없다), 23-24절은 23:19-20의 중복필사오기이다. 정리는 31:1의 재언약에 있다. 31:2-9에서, 재건을 말하면서(2-6), 연합된 제의가 부각된다(요시야의 개혁).
30:18-21 |
31:2-6 |
북쪽-요시야 |
|
7-8 |
남쪽-포로기 |
31:1 |
31:9 |
끝말 |
31:8은 6:21-22와 정반대되는 회복을 그린다. 10-14절은 매우 후대의 것이다. 31:15-17에서, 라헬은 에브라임의 할머니로 북왕국의 심판됨을 의미한다. 이어지는 야웨의 회복의 말로 위로를 받는다. 31:18-20에서, 렘 2,3장에서의 야웨의 감정이 다시 표출된다. 에브라임의 회개를 야웨는 들으셨다. 이는 588년의 상황이다. 31:22-23에서, 여성단수가 사용되면서, 남자의 일(30:5-7)이 역전되고 있다. 23-26절은 후기의 첨가이고, 27-28절은 희망의 두루마리 원본의 끝이다(30:1-3에서 시작한다). 29-30절은 후대에 겔 18잘이 요약하고 있다. 31-34절은 예레미야의 것, 35-37, 38-40절은 새언약에 대한 후대 첨가이다.
바벨론의 멸망 임박(50-51장): 이스라엘은 돌아올 것이다(50:4-5,17a,19). 한편, 50:3,9의 ‘북방’은 이스라엘이다(51:20). 이는 30:16의 역전을 말해준다.
새언약(31:31-34): 31:27-28이 원소망두루마리의 끝이라면, 31:31-34는 첨가이다. 588년은 예레미야가 소망을 외쳤던 시기이다. 그러나, 바벨론의 포위는 계속되어 587년 7월까지 이어진다(39:2; 왕하 25:3). 그리고, 587년 8월에 함락된다(왕하 25:8-10). 587년 9-10월에 신명기 율법이 낭독되고5) 이때 31:31-34의 맥락이 나온다. 31-32절은 신명기를 뜻하는 산문이고(수미쌍괄식으로 중심은 ‘애굽에서와 같지 않다’), 33-34절은 새언약을 뜻하는 시문이다. 1인칭단수동사가 4번 사용되는데, 야웨를 아는 것은 외부적인 가르침에서가 아니라, 내적 본성임을 말한다.6) 여기에서 예레미야는 다시금 모세가 된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이 말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계속되지 못했다(사 40:8). 한편, 이를 붙들었던 무리, 그들 자신이며 눅 22:20의 나사렛 예수의 추종자들과 관련된다.
11. 예루살렘 멸망과 예레미야의 수난
588년 봄부터 587년 가을까지 렘 37-44에 기록되어 있다. 이는 바룩의 기록이므로 비교적 완벽하다. 37:1-43:3은 도움을 구하는 시드기야에서 예루살렘 멸망후에 베들레헴에서 소규모 군대까지 언급하며, 43:4-44:30은 이집트로 압송된 예레미야를 언급하고 있다.
예루살렘 붕궤(37:1-43:3): 중보기도(37:3-10; 42:1-43:3) 사이에 6번의 이야기가 나온다(“예레미야가 머물겠다(ב, 야샤브)”, 37:16,21; 38:13,28; 39:14; 40:6). 37:3-10에서, 588년 1월 바벨론 2차 포위가 나오며, 아나돗 토지 구입과 애굽 원정(37:5)이 언급된다. 이는 588년 봄/초여름이다. 한편, 594년 반란음모로 오해를 받아서 감금당한다. 그런데, 왜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도움을 구했을까? 이는 알 수 없다. 한편, 시드기야는 다른 예언자들에게도 도움을 청했을까? 37:11-16에서, ‘베냐민 땅에서 백성중 분깃을 받으려’는 성밖의 상황을 묻게하며, 전에 구입했던 토지와 같은지 의심스럽다. 며칠을 요나단(서기관)의 집(감옥)에 구금당한다. 37:17-21에서, 이집트 철수하며, 바벨론은 다시 포위를 시도한다. 시드기야와 예레미야의 밀담이 이루어진다. 38:1-13에서, 방백들은 예레미야를 요구하고, 예레미야는 구덩이에 떨어진다. 그를 돕는 이디오피아인 에벧멜렉(‘왕의 종’), 그도 엄청난 용기로 왕을 꾸짖는다. 예레미야는 시위대뜰에 머문다.
38:14-27; 39:15-18; 38:28에서, 시드기야가 세 번째 예레미야에게 묻는다. 왕의 갈등이 드러난다. 39:1-3; 39:11-14에서, 예루살렘은 함락당한다. 39:4-10은 52:7-16의 요약이며, LXX엔 없다. 587년 7월에 함락당한다. 느부사라단의 예루살렘 초토화가 이어지며, 예레미야에게 호의적이며, 그다랴에게 인도되었다. 한편, 그다랴의 아버지 아히캄은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 이후 그를 도운다(26:24). 40:1-6에서, 자유롭게 된 예레미야는 미스바에 남는다. 40:7-43:3에서, 예레미야 없는 그다랴 공동체 자료이다(40:7-41:18). 여러 방면의 무리들의 힘을 모으기 시작한다. 요하난의 왕족 이스마엘 경계(40:15-16)후에, 9-10절(신명기 낭독 절기)은 이스라엘의 그다랴 암살로 이어진다. 남겨진 유다인들이 사로잡히고 80명의 순례자도 살해당한다. 암몬으로 압송(41:10). 요하난이 이들을 구출하여 애굽으로 피난한다.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을 지나면서, 새언약(31:31-34)이 선포되었을 것이다. 중보기도를 바라는 요하난과 예레미야의 거부 선언(42:10-12).
애굽에서의 예언: 43:8-13에서 상징적 행위가 나온다. 44:1-25에는 하늘황후 숭배에 대한 예레미야의 말에 대하여 각각의 반응이 이어진다. 예레미야의 성스러운 역사가 풍요제의신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 44:26-30에서, 예레미야는 다시금 반-모세 역할이다. 야웨의 이름이 애굽에서 다시금 선포되지 않을 것이다.
결론: 예레미야는 예수의 수난과 종종 비교된다. 그는 야웨의 활동적 중재인이다.
12. 전승속의 예레미야
구약 예언전승에서의 예레미야: 호세아(신부된 이스라엘)부터 영향을 받았다. 다른 문학 장르에도 영향을 끼친다: 겔 2:8-3:3(//렘 15:16), 사 40-55의 고난받는 종(//렘 11:19), 욥 3,9장(//렘 20:14-18; 12:1-3), 예수(//렘 7:11). 예수는 예레미야로 불리웠다(막 6:4; 마 16:14; 눅 13:32-35). 바울(갈 1:15//렘 1:5). 히브리서의 새언약, 생수(계 7:17// 렘 2:13).
오늘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확신했다” 오늘의 우리에게 들리는 신학적 진술인 셈이다(교회적 신앙). 니케아 종교회의(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더 이상 고립될 수 없다. 예레미야의 예언을 오늘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여호야김에 대한 예언은 오늘날 특정인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질 순 없지 않은가? 신약이 구약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1) 이들은 누구인가? 이들이 바로 아나돗의 예언자가 아닐까?
2) 그렇다면, Dtr은 시드기야의 정부를 인정하지 않은 것인가? 여호야긴에게서 실상 다끝났다고 여기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여호야긴은 다시 풀려나지 않았는가?
3) 정말로 그러한가? 22장에서 왕들의 순서에 따르면, 23장에는 시드기야(의의 가지)가 그리 무리한 해석은 아닐 것이다.
4) 유다가 주변의 도시국가에 있어서 리더격인가? Dtr은 이를 시드기야가 모의했다고 보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왕권을 대외에 알리려는 모양인가(인사치레)?
5) 당시에 과연 가능했을까?
6) 핵심은 34a가 아닐까?
'Bible Study > 구약 성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스라엘 역사 연구의 논점들 (0) | 2005.11.12 |
---|---|
예레미야 연구-"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0) | 2005.11.10 |
후기예언서의 희극과 비극적 요소(Norman K. Gottwald) (0) | 2005.11.04 |
Grace I Emmerson의 "이사야 56-66장" 번역 (0) | 2005.10.08 |
예레미야 참고문헌 (0) | 2005.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