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지역의 영웅전승이 유다 왕실서기관에 의해 편집된 사사기는, 그 역사적 진실과 함께 기억과 해석으로 내려온, '하나님이 없었던' 이스라엘의 과거에 대한 비판적 혹은 미래적 시각을 제시해줍니다. 비판적이라 함은 "지도자(삿 1:1; 21:25)가 없었을 때" 한민족이 어떻게 무너져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며, 미래적이라 함은 "(무너져감에도 불구하고) 언제든지 야훼께 전심으로 나아온다면(삿 2:18)" 야훼 하나님은 사사를 통해 구원하심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신명기적역사가의 신학의 눈으로 볼때, 예루살렘의 중앙왕실의 신적 통치가 없던 과거는, 비록 각 지역의 대표적인 영웅들의 활동(전승)이 있었음에도, 사실 그것들은 임시적이며 한계가 있음을 의도하고 있는 것입니다(삿 2:19이 잘 보여주고 있지요).
그럼에도 각 지역의 영웅들은 나름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성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사사기서'의 전반적인 신학적 의도를 역행하면서까지 말씀을 읽어내려갈 순 없겠지요. 삼손과 함께,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어쩌면 이스라엘의 (인정받지 않은) 최초의 왕조라고도 할 수 있는, 기드온을 읽는 것이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기드온은, 비록 성서의 인물을 '정신분석학'으로 연구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아존중감'이 낮았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첫번째 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드온의 등장은 사실 비참했던 공동체의 운명과 비슷하게 소개됩니다: 죽기살기로 농사를 져놓으면 파종할 때에 미디안이 침략을 해서 양식(짐승도 포함)만 쏙 빼갑니다. 성서는, 쿰란에 의하면 삿 6:-7-10이 확실히 Dtr2의 추가해석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 이유를 확실히 알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미약함'이 심하였다"고 말씀합니다(삿 6:6). 하나님과 열방앞에 '소중했던' 이스라엘이, 이젠 무기력한 껍데기로 존재하는 것이지요. 아마도 이러한 자아존중감은 이스라엘의 현상태였으며, 기드온 역시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성안 포도주틀에서 몰래 타작중일때, 하나님은 기드온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건드리지요(삿 6:12): "야훼가 너와함께, 대단한 용사!" (이 짧은 말은, 사사시대를 꼬집어내는 역설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드온을 포함한] 이스라엘은 야훼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고 느끼지 못했으며[13절], 또한 기드온은 그 등장이 대단한 용사가 아니었지요[히브리어로 '깃보르 하일'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후대의 전통은 사사시대에 '깃보르 하일' 즉 대단한 용사 혹은 유력한 사람이 다름아닌 '보아스'[룻 2:1]였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건 기드온은 사사로 활약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아존중감' 낮은 사사가 백성을 이끌때,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는 가를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그는 처음엔 이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6장 13절은 여섯번이나 '우리'라고 하면서,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일단 '바람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점차 자신만 보게 됩니다. 표현상으로 기드온은 몇번이고, "내 손으로"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6:36,37; 8:6-7). 어쩌면 그래서 하나님은, 거의 모든 지파를 모았던 드보라의 전쟁과는 달리, 기드온의 전쟁에서는 300명 만으로 족하다고 하시죠: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삿 7:2). 신나서 아침 '일찍' 일어난 기드온에게(7:1) 하나님은 하루 종일 그를 진정시킵니다. 자아존중감이 낮을 때 어둠을 즐겨 활동하는 것처럼, 기드온 역시 밤의 사람이었죠(6:25; 7:9). 속사람이 건강치 못하여서, 명예훼손에 노여움을 표출하기도 하였습니다(8:15 <- 8:6-7). 또한 남이 보는 곳에서는 빛을 보여주지만,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어둠을 그려내는 인물과 같이, 점점 왕적인 모습을 갖추고(8:18, 27), 속으로는 정말 왕조를 세우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8:22-23 -> 9:1-6의 '아비멜렉': 나의아버지는 왕이다; 또한 8:30-32은 그 패턴이 열왕기의 왕들과 유사합니다).
아마도 철저한 야훼신앙을 가졌던 신명기적역사가의 눈으로 볼때, 특별히 (기드온보다는[삼상 12:11]) '여룹바알' 즉 "바알과 다툰(법정표현; 삿 6:32)" 한 사람의 지역전승은, 비록 그의 활동이 한계적이었지만, 사사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지역영웅'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한편 성서가 품어내고 있는, "과거로서의 표지들"이 곳곳에 들어있으며(6:11; 9:6의 아세라), 또한 "문학적인 기교들"을 찾아내는 읽기(7:12-13의 관계를 보면, '동방의 모든 사람'이 오직 '누워있는'[이 단어는 죽음과 관련됩니다] 것에 비해, 단지 떡 하나가 무수히 많은 활동을 해내고 결국 '무너뜨립니다'[앞서 '누워있다'란 말과 같은 단어죠.)는, 성서가 얼마나 깊은 바다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누구에게나 기억되는 영웅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턱없이 부족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꾸며지거나 왜곡되는 영웅들로 역사는 흘러갈 것입니다. 쉽게 마음 주지 않으며(눅 7:24) 동시에 실망하지도 않는(눅 7:23), 건강한 관계를 그려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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