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성서 연구 개론

"온 국민이 즐거워하고, 성중이 평온하더라"(왕하 11:20)

진실과열정 2019. 10. 30. 08:58

"온 국민이 즐거워하고, 성중이 평온하더라"


열왕기하 11장 20절의 정확한 의미는, 농촌의 사람들은 즐거워했지만, (그러나) 도시의 사람들은 죽을 맛이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절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온 국민"은 히브리어로 '암 하아레츠'로, "그 땅의 사람들"이란 문자적 표시이지만, 많은 학자들은 이 표현이 예언자적 신앙전승을 이어받은 특정 무리들이라고 이해합니다. '암 하아레츠'는 이후에 계속해서 등장합니다(왕하 14:5; 21:14; 23:30; 25:18-21). 왕하 11장 20절은 13절부터 시작된 유다의 국민들이 이루어낸 왕정폐위사건을 기록합니다.


사실 '반역'이라고 기록된 사건들이 열왕기서에 많이 등장합니다. 히브리어 명사 "케쉐르"라는 단어가 그것인데, 이 단어는 열왕기를 기록했던 신명기적 역사가의 '역사 평가의 순간'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북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장군들이 '반역/모반'(카샤르)했다고 역사가는 서술합니다(왕상 15:17; 16:9; 16:16).


그러므로 열왕기하 11장 13-20절도 '반역/모반'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신명기적 역사가는 아주 지혜롭게(!) 그때 그 사건을 기록하면서, 아달랴의 입에서만 '케쉐르'가 머물도록 합니다(14절). 그녀가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역사가의 입장에서는 다르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20절에서, 신명기적 역사가의 간단한 역사평가야 말로 사건 이해의 정확한 열쇠가 되겠습니다.


성서를 정치적으로도 읽어낼 수 있어야, 그 신적메시지를 혼동하지 않을 수 있는데, 20절의 바른 이해에도 적용된다고 하겠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성전은 왕실의 번영을 약속하는 신적/정치적 수단이었습니다. 이것이 처음엔 왕조의 신적기원을 표명하는 순수한 신앙이었을런지는 몰라도, 이후에 계약이 갱신되거나 왕위 등극의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신께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다면, 성전과 그것에 수반된 여려 가지 '상징'들은 정치로 쉽게 환원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고대 사회에서 성전과 왕실이 있는 수도는 일반인들이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3%의 왕과 왕실 그리고 엘리트들의 소굴이 됩니다. 이와 반대로 성을 중심으로 주변의 공간들은 97%의 일반인들의 영역으로, '신의 임재'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소외된 사람들의 것이됩니다. 이들을 학자들은 '땅의 백성들'이라고 말하며, 그럼에도 이들 가운데 리더십이 있는, '농촌의 지주' 혹은 '지방의 지도자들'이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William Schniedewind는 20절의 "온 국민"(암 하아레츠)이 농촌 정치 세력이었고, "성중"(그 도시: 신명기적 역사가는 아달랴가 있던 예루살렘을 그 도시라고 했지요) 사람들을 친아달랴 세력이었다고 말합니다(2004: 66f, 77).


온 백성이 분노한 까닭은 그들이 '안티페미니스트'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달랴의 실정, 그것 하나때문이었습니다(18절). 바알의 종교가 무차별적으로 유입되면서(J.J. Collins 2004: 270), 그러한 외형 이면에 들어있는 '바알 이데올로기'의 폐혜가 고대 이스라엘 사회를 기형적으로 악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모스와 호세아에게서 실증적으로 설명이 됩니다.)


고대의 역사를 문자적으로 현대의 것으로 치환하거나 합리화시키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러나 그 때의 기록을 통해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회라고 한다면, 더 위험하다고 하겠지요. 고대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존경스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