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신약 성서

나이먹기 혹은 까먹지않기

진실과열정 2019. 8. 10. 12:33

"나이먹기 혹은 까먹지않기"


—2년전 오늘—


히가시노 게이고의 천재성은, (특별히) 쉽게 풀리지 않은 추리소설의 영역에서 더욱빛을 발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과정과 그 결과에 주목하면서 '어떻게 해봐도 도저히 문제가 풀리지 않네'라고 말할 때, 오히려 출발점에 눈을 돌리게함으로써 우리가 엉뚱한 출발지점에 서 있었음을 고발하는데 있는데, (개인적으로 볼 때) 그러한 과정에서 독자를 배려하는 (혹은 인간 존재의 치유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기분 좋은 읽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찬란합니다. 그 좋은 예가 '용의자 X의 헌신'이 아닐까요. "출발점을 다시 올바르게 잡아놓으면, 문제는 올바르게 자리를 잡습니다."


이런 점에서 N.T.Wright (Paul and the Faithfulness of God) 역시 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태생적으로 철저한 바리새인으로써) 바울, 그의 신학의 첫번째 단추인 '유일신론'을 다루면서(ch.9), 라이트는 제2성전 유대교의 '유일신론'이 바울에 의해서 개정되는 핵심을 그 과정과 그 결과의 차원에서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선, 과정의 차원에서는, '쉐마'를 기반으로 한 유대교의 신앙에 집중하면서 살펴볼 때, 바울은 '한 분 하나님'를 일컫는 '야훼'(YHWH)라는 신명(신약시대에 와서 '주'[키리오스]라고 표기됨)을 메시야 예수에게 돌림으로써(고전 8:6) 신학의 틀을 바꾸어 놓았습니다(p.663f). 이것은 존재론적인 차원에서뿐만아니라("[T]he Messiah, in whose life, death and resurrection, Paul believed, YHWH himself was personally embodied," p.708), 기능적인 차원에서도 예수가 (왕으로서의) 야훼의 역할을 완전하게 수행했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이지요("[W]ithin this monotheism Jesus is allotted a role which in ancient Israel was spoken of as that of YHWH himself," p.736). 결과적으로 제2성전시대의 '유일신론'은 메시야 예수 앞에서 충돌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부활'과 성령의 '변화시킴'을 통해) 결과적으로 '이분이 그분'(This is That)임을 드러내게 됩니다.


한편, 그 결과의 차원에서 (로마서의 초반부를 읽어내며) 유일신론의 최대문제라고 할 수 있는 '신정론'(theodicy)을 (앞선 히가시노 게이고의 전략과 같이) 풀어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실타래처럼 더 복잡하게 꼬일수밖에 없는) 현존재앞에, 궁극적으로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나타내신 신적 해결책을 보면서, 바울은 문제의 출발점을 새롭게 재정의하였다는 발견입니다("Paul moved from his original [제2성전시대유대교의] understanding of 'the plight' to a 'solution' which revealed the full dimensions of the original 'plight'", p.750).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최후이자 최고의) 신적해결책을 생각하고 또 생각할 때,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지요("The 'solution' which the one God has presented, in raising Jesus from the dead, did not correspond to the 'problem' of which he[Paul] was aware. It forced him to radicalize that 'problem'", p.770). 그것은 다름아닌 '죄'의 힘이며, 그렇기에 이스라엘(과 토라)을 통해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제2성전시대의 이념은, '이스라엘 자체가 절망에 빠졌다'라고 제자리를 올바르게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신실하신 메시야'로 나타났다고 유일신론을 완성합니다(롬 3:21-4:25).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을 것인데, '다소의 사울'로 대표되는 옛사람을 '바울 사도'의 새사람으로 변화시킨 신학적 틀의 재발견이 (특히 라이트를 통한 체계적인 서술을 통해 깨닫게 되니) 놀랍습니다. 확실히 부활하신 메시야 예수와의 만남과 성령의 새롭게하심 속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풀어내는 모든 열쇠가 들어있습니다.


(***** 그러나... 바울이, 오늘의 많은 독법가들과는 달리, '칭의'와 '구원'을 섞어서 사용하지 않았다는, 매우 중요한 지점을 올바르게 지적하면서도[p.770], 어쩌면 그 논의의 쟁점이라고 할 수 있는 엡 1:7을 (지금까지, 그리고 성서 인덱스를 볼 때도) 전혀 다루지 않으며, 오히려 바로 다음페이지에 엡 2:1-3을 '턱하니' 올려놓는 대범함을 볼 때, 라이트는 천재이면서 동시에 기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