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여행의 진정한 소득"
석달전에 다친 무릎이 아직도 온전치 못해서, 이번 여행은 거의 "날로 먹었다"라고 할 정도입니다. 운전할 때면 아내가 핸들을 잡고 놓질 않았으며, 캠핑에서 여러가지를 할 때도 저는 앉아서 자리만 지키고 말았습니다. 기껏해야 사진만 몇장 찍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럴줄 알고, 킨들을 챙겨서 그동안 멀리했던 소설들을 주구장창 읽으며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습니다. 처음엔 ATLA에서 다운받은 pdf들을 읽어보려했지만, 여행에서는 학자들의 어려운 글이 어울리지 않네요.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과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 그리고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입니다. ㅎㅎ 눈치가 빠른 분들은 저자가 'ㅎ'으로 시작한다는걸 아시겠지요. 파일정렬이 그렇게 되었나보네요. 별생각없이 순서대로 읽어보았는데, 그래도 뭔가 연결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식"은 종교가 정점을 이루는 중세를 배경으로 어떤 학자가 괴팍스러운 연금술사를 만나면서 경험했던 자기 세계의 확장을, 후반부의 파격적인 환타지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길지만 술술 읽히는 문체와 상상력이 가득한 묘사로 또 하나의 여행길을 오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죠. "비밀"은 유명한 추리작가의 뜻밖의 일탈이었을까요? 오래전에 '용의자 x의 헌신'을 슬프게 읽었는데, 이 작품은 쫌 젊어지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전형적인 드라마입니다. 우연한 사고로 아내와 외동딸 모두의 생명을 잃을뻔한 상황에서 아내의 영혼이 딸에게로 들어가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일본의 정서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톰 소여의 모험'의 여성판같은데, 조금 더 공간적으로나 주제적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스카웃'이란 어린소녀가 1930년대의 미국남부로 대표되는 당시의 시대정신을 깨뜨려야 한다는, 조금은 계몽적인 성장소설의 전형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다름을 이해하기'란 측면에서 세 소설은 좋은 관점을 제시합니다. "일식"은, 중세의 질서였던 '마녀사냥'이란 실제론 몰이해의 결과물이고, 그것을 확증할 수 있는 유일한 지성인(주인공)은 무지한 시대정신을 막아설 수 없는 유약한 학자일뿐이라고 한정합니다. 이에 대해서 "앵무새 죽이기"는 흑인의 인권문제가 미국의 발목을 잡는 핵심이라는 점을, 연약한 여자아이의 시선으로 용감하게 호소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그러한 판단은 '법'과 '가정'이라는 근본적 울타리(변호사 아버지)를 통해 지켜져나가야 함을 직선적으로 돌파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탁월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개혁해야할 시대를 바라보는 선각자의 자세에 대하여, 어쩌면 이것은 미국과 일본의 비교점도 될 수 있겠지요. '다름'의 폭력을 피하거나 혹은 맞서거나...) 그래서 "비밀"이 영악합니다. 다름을 이해한다는 건, '실제로' 그 자리에 있지 못하면 '이해'라는 건 불가능한 욕심일 수 있음을 비춰주기 때문이지요.
소설들을 읽으며 여행을 함께함이 좋네요. 여행한다는 것이 나와 다른 삶들을 체험해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다름의 이해는 우리의 영원한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7월은 이렇게 뜨겁네요.
2016. Columbus, OH, United St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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