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입술이 무거운 모세와 마음이 무거운 바로

진실과열정 2014. 1. 15. 12:25

아브라함이 99세에
자기 집 이편 저편을 쉴새 없이
'급하게' '달리는' 모습을 생각하면 할수록(창세기 18장),
정말 성숙한 신앙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무게 잡지 않는 것이라고 깨닫게되니다.

우리가 어리석은 사람인지라
한번쯤은 무게잡을 수 있겠지요.

모세가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모세를 부르셨을때,
그의 대답이 이렇습니다(출 4:10):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합니다"
히브리어는 여기(뻣뻣/둔함)에 두번 다 '카베드' 즉 '무겁다'라는 단어를 씁니다.
말을 잘 못한다는 것을 둘러대는 표현이겠지요(11,14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 잘하는' 아론을 붙여주었지만,
말에 대한 공포는 모세를 사로잡고 있었나봅니다.
다시 한 번 모세는 자신의 말을 들을 사람은 이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출 6:12, 30): "나는 입이 둔하지 않습니까요".
여기에서 모세는 '무게'를 빼고서 말합니다.
히브리어로는 재미있게, "입술에 할례받지못했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 이 대목에서 '문서가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지만, 말씀을 있는 그대로 읽으면서 충돌과 변화로부터 깨닫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고것'은 패쓰~ **)
사실 이 표현은 예언서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상태(렘 6:10), 자격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겔 44:7), '무할례'는 곧 부정함과 같습니다(사 52:1). 모세는 어떻게 봐도, '할 수 없음'을 다르게 말한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어찌되었건, 모세는 더 이상 무게는 잡지 않았다는 겁니다.
한 번 "나는 입술이 무거워요"(출 4:10)라고 말은 했지만,
( <- 생각해보면, 이런 말 자체가 좀 멋지지 않나요? 말 잘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는 더 이상 무게 잡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나는 하나님이 쓰시기에 부정합니다 라는 마음으로
겸손의 자세를 취한 것 같습니다.

이에 대비되는 모습이 바로 '바로'에게 나타납니다.
모세와 아론이 지팡이를 던져 뱀으로 보여주는 신비로운 일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의 마음은 "완강"해졌습니다(출 7:14).
히브리어는, 바로의 마음이 '무거워졌다'(카베드)라고 말합니다.
모세가 무게를 잡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바로 역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게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계속 계속 무게를 잡습니다(8:15,32; 9:34).
참다 못한 하나님이 바로를 꾸짖었습니다(출 10:3): "네가 어느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네가 언제까지 무게 잡고, 내 앞에서 복종하기를 거부할래 라고 하나님이 묻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무게 잡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이
신앙인이 아닐까요.
신을 앙망하는 사람이니, 신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어야겠지요.
그래서 99세 아브라함이 대단한 신앙인이라고 다시 생각됩니다.
사람들이 볼때는 나이값 못한다고 손가락질하겠지만 말이지요.

새해가 되면서,
많은 분들이 '몸'의 무게를 빼는 일에 관심을 두는데,
몸의 무게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에 있는 '마음'의 무게를 빼는 일도 중요한(히. 카베드) 것 같습니다.

우리,
먼저 손내밀고, 먼저 인사하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