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민수기

진실과열정 2013. 5. 9. 01:22

대부분의 성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하면 익명의 기록자는 자신들이 보유한 물질적, 비물질적 자료들을 가지고 자신들의 신앙안에서 편찬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신앙의 전승이 축적되고 발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편집비평이란 이름으로, 최종 편집자의 신앙을 발견하는 일은 의미있는 신학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민수기를 보면, 1:1에 출애굽후 2년 2월 1일이지만, 9:1은 출애굽후 1월입니다. 민수기가 연대기적 방식으로 기록된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지요(여호수아도 그렇고[1-2-3장], 다니엘[2:1], 예레미야, 에스겔 등). 여담이지만, 민 3:43은 쉽게 지날 수 없는 구절입니다. 민수기는, 대부분이 (비평학자들이 말하는) P자료이지만, 그 뿌리는... 고대로 올라간다고 봅니다: 비교문헌(5:23, Schniedewind 2004: 27f)이나 고고학(6:22-6, Dever 2005: 130; 발람네러티브, Mazar 1992: 330)적으로 말이지요.

어찌되었건, 민 9:15-23은 편집자의 주된 관점이 잘 반영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절대적으로 '야훼의 명을 좇아' 살아가야만 한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민수기에 의하면, 은혜의 도구라기보다는 충성됨의 기준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민수기는 1장 3절에,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민족'이 아닌, '군대'라고 말합니다. 명령에 복종하는 집단.

그런데, 문제는 이 민수기에서, 이스라엘이라는 군대가 처절하게 와해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거죠. 우리는 '불복종'이란 키워드로 제시되는 수많은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의 불복종, 지도자들의 불복종, 모세의 오른팔/왼팔의 불복종, 모세자신의 불복종.

그래서 나귀의 항변은(22:30), "나는 네가 오늘까지 네 일생에 타는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든지 네게 이같이 하는 행습이 있더냐?", 동물에게서 배우는 참된 충성의 본질이며, 더 나아가 이스라엘과 신앙인에 대한 도전적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야훼 하나님 역시, 참된 지도자로서 충성됨을 보여줍니다(23:18-24): 인생이 아니신 하나님, 후회가 없으신 하나님,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않으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 What hath God wrought!

이스라엘은 한때 와해했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그 인구는 유지되었고(26:51), 승리했으며(31:8), 공정한 사회가 되었습니다(35:8). 하나님은 의지를 보여주셨고, 이스라엘은 결국 해냈습니다.

그 최종점은, 앞서 언급했던 편집자의 입장을 보면, '슬로브핫 딸들'의 권리 회복에 있지 않을까요?(36:5-12) 화석화된 법률조항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이들에겐 내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새로 태어난 이스라엘은 옛시대의 계명을 새롭게 확장하면서, '슬로브핫의 딸들'을 사회의 여전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를 기뻐합니다.

은혜로 회복된 세계는, 그 은혜의 갚을 수 없는 무게를 알기에, 무엇이 더 소중한 가치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이 세계의 어머니들이 삶의 무게로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경험하고, 예수님을 배웁니다(눅 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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