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 종말론 수업을 들으며, 특별히 계 13:18과 관련해서 어떤 분이 질문을 던졌다. 666을 창1장의 창조와 관련해서, '불완전한(6)' 인간의 완전수(3개)라고 교수님이 해석한 것에 대해서, '다른 사본에 의하면 616도 있답디다~'라는 질문이었다. 교수님은, 조금 얼굴이 벌겋게 되었지만, 그냥 고개를 절래 저으며, 질문을 무시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셨다. (초지일관 스크립쳐로 접근하는 조직신학이기 때문에, '사본학'이 들어갈 틈이 없으렸다~)
성서를 너무 그 시대와 동떨어지게 접근하는 현대인의 오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고대어인 히브리어는, 다른 고대어에도 있겠지만, 독특한 특징들이 있다. 기호가 조합되어 어떠한 의미를 포함하며, 화자와 청/독자가 상호 교류할 수 있는 장치가 언어인데, 이 언...어가 다른 공동체(독자)에게는 닫혀있게 하는 기술이 또한 언어의 매력인 것이다. 일종의 암호라는 것이 히브리어에도 있다는 것이다.
크게 3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게마트리아(Gematria)라는 것인데, 이것은 히브리어 알파벳에 일련의 숫자가 붙여진 것이다(이것은 암호라고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메시야(msyḥ)'가 숫자로 358인데, 이것을 두고 창 49:10의 '실로가 오기까지'(야보 실로)가 숫자로 358이 되고, 또한 민 21:9의 '뱀'(나하스)가 358이다(좀 무리이긴 하다). 한편 창 14장에서 아브람이 조카를 구하기 위해서 318명을 이끌고 가는데, 15장에 아브람이 의지했던 사람이 바로 '엘리에셀'이며, 그 이름의 숫자가 또한 318이기도 하다. 게마트리아는 계시록 13장 18절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네론 카이사르(nrwn qsr)'라는 이름이 666이기 때문이다. 사실 본문 자체가 '아무라도 그 숫자를 세보세요~'라고 말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616으로 발견된 사본(p115)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네론'에서 히브리어 눈(])을 빼면 '616'(nrw qsr)이 나온다. 로마는 일찌기 일곱 언덕의 나라로 알려졌다. 계 17:9에서 지칭하는 것이 로마였다. (일차적으로 역사적으로 이해 가능한 점을 무시한, 조직신학적 '공시성'엔 동의할 수 없다.)
두번째는 테무라(Temura)라고 하는데, 이것은 히브리어 22개 알파벳이 그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즉, 1번 타자인 '알렙'이 22번 '타우'가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a라고 쓰고 z로 읽는 것이다. 그 좋은 예가 렘 25:26에 나와있다. 성서에는 '세삭'왕이라고 나와있는데, 그 정체를 아무도 모른다.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암호이기 때문이다. 세삭(ssk)은 테무라로 풀어보면, 바벨(bbl)이다. 조금 어렵게 시도하면, 렘 51:1에 '나를 대적하는 자'라고 나오는데(레브 카마르; lb-qmr), 이것 역시 테무라로 풀수있다: 이것은 '카시딤[ksdym]')으로, 다름 아닌 바벨론의 별칭이다(결국 51:1은 히브리어 시의 평행법인 셈이다).
세번째는 노타리콘(Notarikon)이라고 하는데, 이건 좀 지나치게 신비주의적(카발라)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으로, 나열된 단어의 첫단어를 모으거나 혹은 마지막 단어를 모아서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 30:12에, '누가 우리를 위하여 올라갈꼬'(미 야알레흐 라누 핫샤마예마흐, my y'lh lnw hsmylh)가 있는데, 첫번째 알파벳을 모으면, 밀라흐(mylh)가 되고, 마지막 알파벳을 모으면, 야훼(yhwh)가 된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포인트가 된다. (바울이 이것을 알았을까? 롬 10:6-13)
갑자기 긴 얘기를 해버리고 말았다. 그만큼 조직신학 수업의 타격이 컸던 셈이다. (조직신학 왠지 안맞아. 아직도 신학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길은 멀기만 하기에...)
성서를 너무 그 시대와 동떨어지게 접근하는 현대인의 오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고대어인 히브리어는, 다른 고대어에도 있겠지만, 독특한 특징들이 있다. 기호가 조합되어 어떠한 의미를 포함하며, 화자와 청/독자가 상호 교류할 수 있는 장치가 언어인데, 이 언...어가 다른 공동체(독자)에게는 닫혀있게 하는 기술이 또한 언어의 매력인 것이다. 일종의 암호라는 것이 히브리어에도 있다는 것이다.
크게 3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게마트리아(Gematria)라는 것인데, 이것은 히브리어 알파벳에 일련의 숫자가 붙여진 것이다(이것은 암호라고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메시야(msyḥ)'가 숫자로 358인데, 이것을 두고 창 49:10의 '실로가 오기까지'(야보 실로)가 숫자로 358이 되고, 또한 민 21:9의 '뱀'(나하스)가 358이다(좀 무리이긴 하다). 한편 창 14장에서 아브람이 조카를 구하기 위해서 318명을 이끌고 가는데, 15장에 아브람이 의지했던 사람이 바로 '엘리에셀'이며, 그 이름의 숫자가 또한 318이기도 하다. 게마트리아는 계시록 13장 18절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네론 카이사르(nrwn qsr)'라는 이름이 666이기 때문이다. 사실 본문 자체가 '아무라도 그 숫자를 세보세요~'라고 말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616으로 발견된 사본(p115)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네론'에서 히브리어 눈(])을 빼면 '616'(nrw qsr)이 나온다. 로마는 일찌기 일곱 언덕의 나라로 알려졌다. 계 17:9에서 지칭하는 것이 로마였다. (일차적으로 역사적으로 이해 가능한 점을 무시한, 조직신학적 '공시성'엔 동의할 수 없다.)
(마지막 글자, '눈'을 빼면, 616이 나온다)
두번째는 테무라(Temura)라고 하는데, 이것은 히브리어 22개 알파벳이 그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즉, 1번 타자인 '알렙'이 22번 '타우'가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a라고 쓰고 z로 읽는 것이다. 그 좋은 예가 렘 25:26에 나와있다. 성서에는 '세삭'왕이라고 나와있는데, 그 정체를 아무도 모른다.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암호이기 때문이다. 세삭(ssk)은 테무라로 풀어보면, 바벨(bbl)이다. 조금 어렵게 시도하면, 렘 51:1에 '나를 대적하는 자'라고 나오는데(레브 카마르; lb-qmr), 이것 역시 테무라로 풀수있다: 이것은 '카시딤[ksdym]')으로, 다름 아닌 바벨론의 별칭이다(결국 51:1은 히브리어 시의 평행법인 셈이다).
세번째는 노타리콘(Notarikon)이라고 하는데, 이건 좀 지나치게 신비주의적(카발라)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으로, 나열된 단어의 첫단어를 모으거나 혹은 마지막 단어를 모아서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 30:12에, '누가 우리를 위하여 올라갈꼬'(미 야알레흐 라누 핫샤마예마흐, my y'lh lnw hsmylh)가 있는데, 첫번째 알파벳을 모으면, 밀라흐(mylh)가 되고, 마지막 알파벳을 모으면, 야훼(yhwh)가 된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포인트가 된다. (바울이 이것을 알았을까? 롬 10:6-13)
갑자기 긴 얘기를 해버리고 말았다. 그만큼 조직신학 수업의 타격이 컸던 셈이다. (조직신학 왠지 안맞아. 아직도 신학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길은 멀기만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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