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욥기

진실과열정 2013. 5. 9. 00:35

히브리성서의 구속사적 성서이해는 일종의 '폭력'으로 다가왔습니다. 피해자는 '지혜문학'이라고 할 수 있죠. 폰 라트의 구약신학에서는 오경과 예언서만 등장할뿐, '거룩한문서'는 어쩔수없이 별책부록식으로 취급될 뿐이었습니다. 탈식민주의 시대의 학자들은 구속사적 접근에 한계를 느끼고 히브리성서의 다양성('될 수 있는 한 모든 목소리를 듣는')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가장 좋은 예로 Walter Brueggemann, 1997; Erhard S. Gerstenberger, 2002).

혹은 기존의 구속사적 접근을 버릴 수 없는 '신학적 해석' 집단의 변형은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까요? 여러가지 모티프의 유사성으로 인해서, 욥기를 묵시문학의 돌연변이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어떨까요? (묵시문학의 핵심이 이 세계에서 풀...수없는 현실적 문제가 저 세계로 투영되어 하늘이 해결해줄 것을 '(하나님을) 믿음으로[God is right]' 기다리는 것이라고 한다면, 욥기는 물론 여러가지 유사한 모티프가 등장하지만, 본질적인 차원에서 '(자신을) 믿음으로[God is wrong, but I am right]'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 욥기는 묵시문학의 돌연변이로 일컫고 싶습니다.)

아마도 가장 큰 차이는 42:6에 있을 것입니다. 여러학자들이 히브리어 '엠아스'를, 전통적인 해석을 따르지 않고(NRSV, ESV, NIV의 "I despise myself"), 전능자와 피조물 사이의 존재론적 차별로 인한, 인간 최후의 항변이 들어있는 '자동사'(protest [L.Perdue 2008:138f], abhor[R.E. Murphy 1990:43], recant[NJB], 혹은 reject[John Goldingay 2012:205,207])로 이해하고 있습니다(이 단어를 둘러싼 자세한 언어연구는 D.Clines의 WBC 주석이 도움이 됩니다). 결국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으로 인한 '신정론의 의심'을 회개하였다는 기존 이해에서 벗어나, 욥기서라는 지혜문학이 존재론적 기성 신학을 초월하는 '영원히 이해불가능한 지혜의 영역'을 서술하고 있다고 접근하는 것입니다(W. Brueggemann 2012:334). 쉽게 말해, "Might is right with you!"이고(D.Clines 2011:1223), 또는 '그래요 당신 팔뚝 굵군요. 내가 썩어질 인생이라는게 유감이구요'라는 표현이며, 인생의 유한성이 '무한한 신'과 영원히 연결되어 있다는 일종의 "아이러니한 진실"("an ironic fact", J.Goldingay 2012:208) 앞에 욥기 시문의 위대한 고뇌는 ing/open end로 독자에게 인생의 짐을 더 더해줍니다.

욥기의 목회상담학적 '오용'이 도를 지나쳤다는 골딩게이의 지적에 적극 동의하며, 데이비드 클라인즈가 모두발언격으로 인용했던 Adam Clarke(1813)의 옛통찰이 정직한 대답인것 같습니다: "[I]t is so different from every other book of the Bible, that it seems to possess nothing in common with them ... But on all hands it is accounted a work that contains 'the purest morality, the sublimest philosophy, the simplest ritual, and the most majestic cr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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