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하게 읽는 에베소서(5)-찬송가 245장
바울의 기도(1:15-23)
“하나님의 경륜: 교회를 알도록”
성경은 하나님을 보여주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수많은 일들을 통해서, 우리는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하신 근본적인 일은, 창조의 회복입니다. 다시 말해서,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하여 그 결과로 발생한 모든 사건들을 회복시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 겁니다. 성경은 이러한 관계의 회복을 구원이라고 하며, 그 구원의 방법을 대속이라고 하며, 그 결과로 구속(자유함)되었다고 말합니다. 사실 성경은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우리 인간 역사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고 가르칩니다. 그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며, 십자가 죽음과 능력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회복이 하나님이 하시려는 창조의 회복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제의 말씀을 통해서, 바울이 이러한 근본적인 관계회복을 ‘복’이라고 불렀음을 배웠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관계의 회복자로서의 사역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선교를 통해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밖에 있던 죄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켰던 겁니다. 이렇게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이 바울의 부르심이며, 또한 동일하게 우리의 부르심임을 깨닫게됩니다.
이렇게 교회를 세우는 목회자의 입장에서, 바울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바울이 에베소의 성도, 곧 자신이 세운 양떼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기도 속에서 바울의 심정, 목회자의 심정, 더 확장하자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타오르는 가슴을 발견하게 됩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성도들에게 과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확장해서, 하나님이 과연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실천적이며, 실제적인 내용을 오늘은 접하게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부분은 15-16절로, 바울의 마음, 다시 말해서 목회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가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두 번째 부분은 바울의 중보기도입니다. 역시 목회자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17-1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자세한 부분은 차츰 꼼꼼하게 짚어나가도록 합시다. 마지막 부분은 바울의 답입니다. 다시 말해서 앞선 기도에서 바울은 성도들이 무엇인가를 반드시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그 답을 이제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 답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의 결정판인 교회’입니다. 20-23절에,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이제 한 부분씩 꼼꼼히 읽어보도록 합시다.
1. 바울의 마음; 목회자의 마음
선교사이자 목회자인 바울은 성도들의 소식/소문을 종종 듣게 됩니다. 워낙 멀리 떨어진 곳이기에, 그리고 지금은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에, 성도들의 소식을 쉽게 접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목회자 바울의 마음에 꽃이 피었습니다. 16절의 ‘감사’와 ‘기도’에 동그라미를 쳐봅시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어렵게 에베소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물론 앞으로 살펴볼 4-6장을 보면, 그들에게도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지만, 그럼에도 바울은 그들의 소식을 듣게 되자, ‘감사’했다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는 “감사를 멈추지 아니하였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라는 말의 원뜻은, “나의 기도에 언제나 너희를 생각했다”입니다. 즉, 내가 기도할 때마다 잊지않고 너희를 생각하며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멋지지 않습니까! 지금 어려움에 처해있는 바울의 마음에 감사의 꽃이 피고, 기도의 열매가 맺고 있습니다.
과연 목회자 바울은 무엇 때문에 감사했을까요? 15절에 “믿음”과 “사랑”에 동그라미를 쳐봅시다. 그렇습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을 듣고, 보고, 느끼며 감사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서신서에도 나오는 것처럼, 언제나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을 가장 중요한 신앙의 척도로 보았습니다(살전1:2-3에, 너희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있기에, 내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를 드린다). 그래요 이것이 바로 목회자의 마음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방법은, 바로 믿음과 사랑인 것입니다.
바울 목사님은 여기에 무엇인가를 더 가르칩니다. “주 예수 안에” 있는 믿음입니다. 사실 우리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말이지만, ‘주 예수’라는 말은 당시에 매우 심각한 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주’라는 말은 ‘퀴리오스’라는 단어로, ‘주인/주권자’ 곧 로마황제에게만 쓰이는 특별한 단어였기 때문입니다(21절; 주관하는자). (옛날 ‘각하’라는 말과 같다고나 할까요? 그 옛날 아무에게나 ‘각하’라는 말을 썼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바로 이 퀴리오스/주라는 단어가 앞에 나오면서, 이 말의 뜻이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의 믿음, 곧 예수님이 주님/주권자=King!이라는 것을 삶으로 표출해내고 있기에, 그 믿음을 들으니 내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면서, 세상이 움직이는 법칙이 있습니다. 약육강식; 사람보다 돈/물질이 우선되는 것; 황금만능주의. 이러한 법칙이 우리를 움직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방식에 길들여져서 살아가고 있습니다(2:2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삶”). 그런데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분의 방식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손해를 볼지라도, 예수님이 나의 퀴리오스/주인님이기 때문에 그분이 기뻐하시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인 것입니다(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또한 바울은 ‘사랑’을 이렇게 구체화합니다.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 여기에서 사랑이 수평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음에 주목해야 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사랑을 하되, 수직적인 사랑에 만족합니다.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들으며 기도를 올리며 찬송을 부르며,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상황 안에서 사랑을 표출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완성은 수평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도를 사랑해야 합니다. 바울은 특별히 단어 하나를 더 추가합니다. “모든” 이것은 우리에게 두손두발 다 들라는 절망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성도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치 못할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2:14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라고 하셨습니다. 16절에, “또 십자가로 이 둘을(서로 다른) 한 몸으로 (만들었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계속해서, 4:2-3에,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든 성도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를 주인/주권자로 삼으며 살아가는 믿음과 또한 모든 성도를 사랑한 것이 바울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목회자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참으로 귀하신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을 확증시키십시오. 다시 말해서 어떠한 어려움을 당한다 하더라도 선한 믿음을 굳게 지키십시오. 믿음을 지키다가,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다가 넘어졌을 때, 목사님께 찾아오십시오. 목사님이 기뻐하며 감사할 것입니다. 이 귀한 믿음을 지켰더니 결국 승리하게 되었을 때, 목사님께 찾아 오십시오. 성도님의 귀한 간증으로 목사님이 기뻐하며 감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해주실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뉴스가 뭔지 아십니까? “누가 누구 때문에 시험들어서 교회 못나왔답니다.” 주여... 이제 우리 깊은샘 수원교회는 절대로 이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합시다. 오히려 “누가 누구 때문에 교회나온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이 모든 성도를 아낌없이 사랑하게 될 때, 그 소식이 목회자를 기쁘게하며 또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겁니다.
2. 바울의 기도: 목회자의 기도
이제 바울의 중보기도를 살펴봅시다. 이렇게 성도들이 믿음으로 승리하며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될 때, 목회자는 감사함으로 쉬지 않고 기도를 합니다. 자기 기도도 하지 않고, 성도들을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16절이 ‘말하노라’보다 원어는 ‘기억한다’입니다; 내 기도하는데 성도들이 기억나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과연 기도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사실 조금 복잡한 내용이지만, 잘 따라오시면서 풀어가도록 합시다. 기도의 내용을 단 하나로 압축하면, 바로 “아는 것”입니다. 두 번 나옵니다: 17절의 “알게 하시고” 그리고 19절의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에 동그라미 칩시다. (사실 이 말은 원어로 18절에 나옵니다.) 17절이 일반적인 내용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면, 18-19절이 보다 자세한 것으로 그 하나님이 계획하신 바 무슨 일을 행하셨는가에 대하여 일종의 통찰력을 가지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앞서 우리가 복에 대해서 읽어봤던 ‘하나님의 경륜’의 구체적인 목적과 의도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묻게 됩니다. 바울의 기도가 단지 ‘알도록’ 기도했다? 뭐 이런 기도를 해? 그러나 이것이 바로 수준높은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먼저 이런 기도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면서, 그 중요한 기도제목이 바로 “아는 것”입니다(요 17장). “아버지여, 이 제자들이 영생을 알게 하옵소서, 나의 이 제자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게 하옵소서.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옵소서!” 그렇습니다. 이 바울의 기도가 엄청나게 깊이 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알도록 기도했을까요? 그 내용이 무엇일까요?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크게 두 개를 말하지만(17; 18-19절), 이것은 하나입니다. 곧 하나님입니다. 바로 그분의 계획 말입니다. 그래서 17절에 “하나님”에 밑줄을 칩시다. 제가 처음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성경은 하나님을 보여주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창조의 회복을 위해서 이스라엘을 부르시며, 그들에게 제사장 나라의 기업을 주시며, 강대국의 세력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모든 나라가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도록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18-19절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행하셨던 일들을 아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됩니다.
18절에,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밑줄을 칩니다)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하나님의 백성)의 부르심의 소망이,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는 것”입니다(창 12:3; 하나님의 백성으로 말미암아 열방이 주께 돌아오는 것이, 부르심의 소망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겁니다.). 또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를(밑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갈 때, 그 영광스러운 일들로 주변의 나라들이 굴복하게 됩니다: “이는 너희로 들어가서 기업으로 얻을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가 지켜 행하면, 열국 사람들이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하리라”(신 4:5-6; 이렇게 하나님의 기업의 땅에서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열국 사람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겁니다). 마지막으로 19절에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인지를(밑줄) 알아야 합니다. 역시 이스라엘이 그러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오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다”(신 10:17;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만이 세상의 참된 신이라는 것이 다른 나라와의 관계속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이렇게 열국이 여호와 하나님 만이 능력있는 지극히 크신 참된 신임을 깨닫게 되는 것,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겁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바로 나옵니다. 바로 하나님이며,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 역사속에서 행하셨던 ‘회복운동’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회복운동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의 역사가 하나님의 역사라고 깨닫게 되어지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17절의 “지혜와 계시의 정신”(파도표시) 때문에 가능하며, 18절에 “너희 마음눈을 밝혔기”(파도표시)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깨닫게 해주시면, 비로소 하나님의 회복운동으로서, 역사의 중심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기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회복운동으로서 우리들의 역사를 깨닫기를, 하나님의 회복운동으로서 그 중심에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있음을 깨닫기를, 그리고 하나님의 회복운동으로써, 이제 교회가 예수님을 머리로 모신 회복운동의 최종 결정체임을 깨닫기를 기도했던 것입니다.
3:9-11: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5:32)
이것이 바로 목회자의 기도입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볼 때, 이 교회라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오묘한 것인지요! 또한 이 교회라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우리를 겸손케 하는지요!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운명입니다. 교회는 우리의 운명입니다. 교회는 나의 운명입니다. 교회를 중히 여기십시다.
3. 계획의 최종목적지: 교회
이제 하나님을 아는 것의 최종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바로 교회입니다(22, 23절의 “교회”에 동그라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입니다. (더 자세한 부분은 다음 시간에 살펴보도록 합시다.) 여기에서는 바울이 자신이 기뻐하는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특별히 중보기도를 한 뒤, 그 기도의 답, 즉 ‘무엇을 알라는 것인가’에 대한 답을 말합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지요. 그러면서 이 교회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말하면서 1장을 마무리 합니다.
교회가 왜 위대할 수 있을까요? 바로 교회는 그리스도(동그라미)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바울은 20절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았다”(밑줄)고 말합니다. 사망 권세를 이긴 겁니다. 또한 “하늘의 오른편 자리에 앉았다”(밑줄)고 말합니다. 최고의 자리인 것입니다. 21절에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다”(밑줄)고 말합니다. 그 어떤 것도 감히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22절에 “만물이 복종한다”(밑줄)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에게 온 우주가 순종합니다/복종합니다.
교회가 왜 위대할 수 있는 것일까요?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위대합니다. 교회가 온 우주를 충만케합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할렐루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무엇입니까? 교회입니다! 무거운 죄짐으로 사단에게 눌려있는 사람들을 해방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 무엇입니까? 교회입니다!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빛과 소망을 전해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무엇입니까? 교회입니다! 질병과 고통을 당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치유를 줄 수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교회입니다! 가정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곳이 어디입니까? 교회입니다! 만물을 충만케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 깊은샘수원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만물을 충만케 합니다! 우리 깊은샘수원교회가 위대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루도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통치와 능력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로 여러분을 통해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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