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stry/[깊은샘 찬양팀]

찬양에 대한 단상(短想)

진실과열정 2010. 3. 2. 11:56

시편 150편에,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3절).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4절).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5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어와 영어 번역본을 이용해서)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먼저 히브리어로는,

"할렐루후   테카   소파르,    할렐루후    네벨    키노르.

 할렐루후   토프   마홀,    할렐루후    민님    우가브.

 할렐루후   찔쩰레-샤마,     할렐루후    찔쩰레 텔루아" 로 되어있습니다.

 

여기에서 '할렐루후'가 계속 반복되어 있는데, 1절과 6절에 '할렐루야'라는 말에서 아시겠지만,

'할렐루+야'는 야웨(여호와)를 찬양하라(할렐루)는 뜻입니다.

할렐루후는, 목적어가 없이 단지 동사형만 있는 것이라고 알면 됩니다.

일단, 6번이나 '찬양하라'는 명령이 우리에게 선포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문제는, 그 찬양의 성격입니다.

빨간 색으로 표현한 것이, 그 방법입니다.

물론, 이 구절이 찬양의 '유일한 법칙'은 아닙니다. (여기에서는 단지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면서, 찬양의 본질적인 성격을 규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라는 전치사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말해줍니다. 쉽게 말해서, '이렇게 찬양하라'라는 것입니다.

그 도구라는 것이,

테카(소리) 소파르(뿔): 뿔소리가는 악기입니다. 옛날엔, 가공하지 않은 것으로 악기를 삼았지요.

                       동물의 뿔이 좋은 소리를 내는 악기입니다. 그런데, '테카'(소리)라는 단어는,

                       영어로 'blast'의 뜻입니다. 말 그대로 한 방 뻥 터지는 정도의 소리라는 겁니다.

                       뿔소리를 실제로 들어보신 분은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멍멍함을 느낍니다.

                       우리말성서는 '나팔 소리'라고 되어있습니다. 트럼펫이 내는 엄청난 소리입니다.

                        

네벨(하프): 우리말 성서는 '비파'라고 되어있지요. 줄이 달려있는 악기를 말합니다. 

               '웨'나 '우'는 우리말로 '그리고'나 영어로 'and'라고 보시면 됩니다.

키노르(수금): 우리말 성서는 '수금'으로 되어있습니다. 역시 줄이 달려있는 악기를 말합니다.

                '비파와 수금'에 대해서, 왕상 10:12를 참조해보십시오.

                이 '비파와 수금'은 바이올린이나 첼로라기 보다는, 오히려 오늘날 기타에 가깝습니다.

                우선 맨손으로 악기를 쳤기 때문이지요^^

 

토프(템버린): 작은 북을 말합니다. 고고학으로 발굴된 것을 보면, 정말 템버린 처럼 생긴,

                한 손으로 들고 다른 손으로 '둥둥' 치는 악기처럼 보입니다.

                창세기 31장 27절을 보면, '북'이라고 나온 단어가 바로 토프입니다.

                우리말 성서는 '소고'라고 되어있지요. (역시 작은 북이라는 뜻이죠)

 

마홀(둥글게 추는 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여성들이 템버린같은 악기(토프)를 들고,

                둥글게 춤을 추곤 하였습니다. 왜요?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즐거우면, 잔치가 벌어지면, 자연스럽게 악기를 들고 춤을 춥니다.

                자세한 것으로, 예레미야 31장 4절을 찾아보십시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찬양한 것 자체가, 즐겁고 기쁜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말 성서에,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라는 뜻이 바로,

                "정말 즐겁고 기쁘므로!" 그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라는 뜻입니다.

 

민님(줄로된 고급악기): 우리말 성서는 '현악'으로 되어있지요. 줄로된 악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키노르'와 다른 점이라면, 아마도 (제가 볼 때)

                단어가 사용된 것을 볼 때, 보다 고급스럽고 전문적인 악기라고 생각됩니다.

                시편 45편 8절에 '현악'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 악기가 상아궁에서 들린다고 합니다.

                왕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왕궁의 전문악사가 사용하는 고급악기라고 하겠습니다.

 

우가브(갈대로 파이프를 만든 악기): 우리말 성서엔 '퉁소'라고 되어있지요.

                갈대를 이용해서 그 긴 관으로 불어서 내는 일종의 관악기입니다.

                영어에서는 플륫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쩰찔레-샤마(큰 소리나는 심벌): 청동을 녹여서 만든 심벌의 소리는 '쨍쨍!'하지요.

                우리나라에도 '깡깡이'라는 악기가 있듯이, 그 소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쩰쩨림'이라는 악기가 경쾌한 쇳소리를 내면서, 웅장함을 말해줍니다.

                샤마란, 동사로 '듣다' 명사론 '소리'라는 뜻으로, '큰 소리'가 나는 것을 말해줍니다.

                쩰찔레-샤마란, 엄청난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참고로, 사무엘하 6장 5절을 보면, 마지막에 '제금'이 나옵니다.

                여기를 보면,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소리를 낼 것인가요!!

 

쩰찔레 텔루아(전쟁의 소리를 내는 심벌): 역시 쩰쩨림이란 악기를 사용하는데, 수식어로

                '텔루아'가 붙었습니다. 이것은 전쟁에서 외치는 '큰 외침'으로 볼 수 있으며,

                정말 즐거워서 내는 '즐거운 비명(?)'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말그대로 환호성이지요.

                여호수아 6장 5절을 보면, 백성들이 '큰 소리'로 외칩니다. 바로 이 단어입니다.

                사무엘상 4장 5절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보자 백성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합니다.

                역시 이 '텔루아'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기대하며 외치는 큰 소리가 어떨까요!!!

 

지금까지 저는 시편 150편의 말씀을 자세하게 풀어드렸습니다.

중요한 점은, 제 생각에, 우리들은 이렇게 찬양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를 드리시면서 즐거워서 정말로 춤(마홀)을 추십니까?

여러분, 예배를 드리시면서 하나님의 임재에 소름이 끼쳐서 '환호성'(텔루아)를 지르십니까?

쉽게말해서, 그 단순한 박수라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까?

 

 


많은 분들이, 예배를 '동양적인 유교문화'로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배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제사가 아닙니다.

더 나아가 예배는 감상하는 음악회도 아닙니다!!!

 

예배는, 마치 김일성을 보면 북한 주민들이 눈물을 흘리로 날뛰는 것처럼, 반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김일성보다 못한 분이십니까?

'할렐루야'의 동사 '할랄'이라는 뜻은, 어린아이가 부모를 향해서 기뻐 뛰면서 반응하는 뜻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을 볼 때, '아빠! 엄마!' 하면서 기뻐서 뛰어오는 것이, 예배의 출발입니다. 시편 150편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쳐줍니다.

예배는, 한 마디로 시끄러운 것입니다.

시편 150편을 보십시오. 그 어느 악기가 '조용'합니까? 우리를 침묵으로 가두어 두는 악기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움직이게 하며, 우리를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며, 우리를 기뻐서 뛰게하며, 우리를 소리지르게 하며, 우리로 춤추게 하는 악기들 뿐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합니다. 누가 말하듯, 정말 단순하게 일단 말씀 처럼 찬양하자구요!!!

음악이 타락하기 쉽다고 누군가는 말할 것입니다.

제가 읽은 책가운데, 헤르만 헤세가 쓴, '유리알 유희'라는 책에서, 그 음악(특별히 북이 내는 심장을 울리는 소리)의 위험한 매력을 경고하고 있던 것이 기억납니다.

물론, 성서에서도 음악이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것일 때 경고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6장 5절을 보면, 부자들이(!)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는" 모습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소리가 시끄러운가 조용한 가에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자신을 기쁘게 하는가에 있습니다.

소리가 시끄러워도(시편 150편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건 찬양입니다.

소리가 조용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건 찬양입니다.

 

그러나, 소리가 시끄럽거나 조용하거나, 우리 사람을 즐겁게 하려는 것이라면!!!!

그것이 찬양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열왕기하 4장 15절에 '거문고를 타는 사람'의 소리를 듣고 엘리사가 영감을 받는 장면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어원어는 '거문고'라는 악기 이름은 들어있지도 않습니다. 단지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나올 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말씀은 단 한 구절뿐입니다. 수 백배나 많은 말씀은 오히려, 명확하게 표현하면서까지!, 우리를 '즐겁고 유쾌하며, 감격하고 신나게'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음악을 관장한 천사가 루시퍼라구요?

성서에 '루시퍼'란 단어가 어디 있나요? 가브리엘(단 8:16; 눅 1:19), 미가엘(유 1:9)이란 천사는 있어도 루시퍼란 천사는 성서에 없습니다. 루시퍼란, '금성'을 뜻하는 것으로, 이사야 14장 12절에 나오는 '계명성'이란 단어가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루시퍼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14장은 타락한 천사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당시에 패왕이있던 '바벨론 왕'의 교만을 신적인 분노로 경고한 말씀입니다.

 

 


정리하면, 시편 150편의 찬양은, 교회에 나오지 않은 사람이 들었을 경우엔 '난리가 날 정도로', 시끄러운 종류의 찬양의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여러분 호흡이 어떻게 뜁니까? '자근자근' 뜁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보혈로, '쿵쾅쿵쾅' 뜁니까? 호흡이 있는 자마다 찬양하는, 그 방법이 바로 시편 150편에 들어있습니다. 물론 중요한 것은, 방법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진정 하나님을 즐거워 하는가? 내가 진정 하나님을 높이려고 하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저는 다윗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는 왕이었습니다. 대통령보다 더 높습니다^^

그런 그가 여호와의 법궤가 다윗 성에 들어오는 것을 보자,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다'고 말합니다. (삼하 6:14)

고상한 춤이었을까요? 아니오! 삼하 6:16을 보면, 아내 미갈이 업신여길 정도로, 경박스럽게 보였을 춤을 추었습니다. 우리는 또 여기에서 있지도 않는 사실을 붙이는데, 예를 들면, 춤을 추다가 옷이 바지가 내려갔다 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사실 그런 말씀은 들어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윗의 입은 옷이 모시로 만든 얇은 옷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왕이 그러한 옷을 입었기에, 조금 체통을 지켜야 한다고 미갈이 생각했던 것이지요. 옷이 내려간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고급양복을 입고 움직이기도 불편한데, 그 상황에서 춤을 출수 있냐구요? 그런데, 다윗은 자신의 체통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서 '신나게' 춤을 추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미갈을 기뻐하지 않으셨고, 다윗을 기뻐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윗이 자신이 기뻐서가 춤춘 것이 아닙니다.

14절에,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춤을 추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중요한 원칙을 다윗은 충실히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자신은 철저하게 낮아진 것입니다. 다윗이 고백합니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사울왕)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삼하 5:21)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섬기면서, 단 한가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좋은 소리를 만들어낼까가 아닙니다.

 

과연 우리 찬양팀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가 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악보를 노래하고 있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말 기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소리가 시끄럽거나 잔잔하거나가 기도제목이 아니라,

어떤 소리이건 하나님을 높이고 있는 소리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러한 예배가 된다면,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를 경험하며, 우리의 예배가 180도 바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