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 23(2007)
감독: 조엘 슈마허
주연: 짐 캐리, 버지니아 매드슨
주가지수와 기름값,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것은 정말 숫자이다. 대통령을 뽑는 것도 숫자이고, 대학을 가는 것도 숫자이다. 숫자 자체에 힘이 있어서일까? 숫자는, 단지 숫자로 형상화되어서 인간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라는 변칙적인 괴물일 뿐일까? 전자의 측면에서 본다면, 고대인들에게 숫자의 마법은 대단해서, 히브리인들에게만 봐도 '수비학(numerology)'라는 것이 있을 정도였다(마 1:17). 그 숫자의 마력을 소수의 사람들만이 좌우할 수 있다는 만용이 소위 '프리메이슨' 집단을 불러 일으켰다면, 바로 그러한 엘리트화된 섬김없는 자본주의적 숫자가 바로 후자의 괴물일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의 건강한 네티즌에게 숫자는 단지 변별이며(IP & ID), 상징일 뿐, 그 이상의 의미가 없는 것으로 해석한다. 다시 말해서 아이큐 430은 상징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왜곡된 삶이 반영되어서 생겨난 숫자의 마력에 의해 움직이며, 결국 그것을 극복하는, 일종의 인간의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는 전자, 즉 마법과도 같은 숫자의 매력에서 시작한다. 모든 것이 23이며, (영화를 보는 내내, 나에게도 그런 것이 있는가 싶었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영화주인공이 될 순 없었다!), 예상하는 바와 같이, 긴가민가하는 와중에 관객들은 어느새 주인공의 혼동을 같이한다. 영화가 계속 진행되면서, 매력적인 숫자는 사람을 사로잡는 마력으로 그 얼굴을 바꾸고 만다. 숫자 자체의 마력이 아니라, 사람이 마력인 것이었다는 점에서, 영화는 몇가지 던지는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서, 숫자에 사로잡힌 아버지의 상처받은 미성숙함에, 주인공 역시 그 어린 시절 그대로 노출되었고, 그러한 노출은 무의식적으로 숫자라는 마력의 종으로 빠지게 된 것이었다.
결자해지의 법칙이 두가지 방식으로 여기에서 적용된다. 가족에 의해서 상처받은 내면의 파괴는, 역시 가족으로 인해서 치유를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의 가정은 완벽한 삼총사였고, 시종일관 너무 보기 좋았다. 예를 들면, 밤늦게 집안에 여친을 데리고 '작업'을 걸려던 아들의 일탈을 지혜롭게 덮어줄 수 있는 친구 아버지의 모습에서, 이미 그 가정은 어떤 상처도 치유할 수 있는 내공을 갖춘 셈이다. 두번째로 영화는 헐리우드 식의 허무맹랑한 무지개빛 그림보다는, 석양을 솔직하게 대면할 수 있는 정직을 선택했다. 13년전의 잊혀진 살인자로서의 자기를 찾게되고, 또한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서 바르게 잡겠다는 감독의 설정은, 결자해지의 윈-윈 방식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에 던져진 민수기(Numbers) 32장 23절의 말씀은(사실, 성서에 장/절이 본래 없었음에도) 영화의 마무리가 단지 휴머니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 깊이 숫자로 형상화된 일종의 도덕법칙으로 지그시 남아 있게 된다.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함께 보면서, 마지막까지 보길 잘했다고, 짐 캐리가 이런 영화에서는 나름 멋진 '케릭'이라고 평가하면서, 잠에 들었다.
진실과 열정
2008.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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