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고대이스라엘의,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진실과열정 2020. 6. 11. 00:18

고대이스라엘의,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B]oth kings - Jotham and his son Ahaz - were responsible for two new construction efforts connected with the Jerusalem Temple: a new gate and a new alter. ... Without these two preliminary architectural steps, the centralization of the cult, which had probably been enforced by King Hezekiah and reenacted again by King Josiah, could not have been contemplated."

Andre Lemaire (2011): 199f

 

해설이 필요한 요약 진술입니다. Andre Lemaire은 8세기의 예루살렘 성전의 변화를 주목합니다.

 

첫번째는 성서역사에서 주목하지 않은 '성전의 윗문 건축'입니다. 요담과 관련된 통치 내용은 너무 짧습니다(왕하 15:32-38). 이 짧은 내용에서 35절에 보면, 요담이 성전의 '윗문'을 건축했다고 나옵니다. 이것은 북쪽에 새롭게 문을 열어놓은 것인데, 아마 도시의 문을 건축했던 것처럼 6개의 방을 놓고 안전을 보장했을 것입니다. 사실 이전에는 두개의 문이 있었을 것입니다(왕하 11:6).

 

요담의 '윗문' 건축 이후에, 우리는 북쪽의 베냐민 지역과 연결되는 '북쪽문'이라는 표현을 발견하게 됩니다(렘 20:2; 겔 9:2). 요담이 무엇때문에 '윗문'을 건축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바로 '성전'이 조금 더 개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번째 변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전의 두번째 변화는, 다음 왕인 아하스에 의해서 생겨난 '큰' 번제단을 만든는 일이었습니다. 아하스는 아시리아의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기 위해서 다메섹에 가서, '큰' 번제단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큰' 번제단을 예루살렘 성전 안에 두게 됩니다(왕하 16:15). (사실 극단적 종교주의자의 입장에서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겠지만, 놀랍게도 왕하 16:10-16의 이야기 단락에서는 아하스의 이러한 일에 대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시리아의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람(다메섹)의 번제단의 모형을 카피한 것에 가깝습니다(그만큼 고대팔레스타인의 종교형식이 유사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 왕의 모든 명대로 행합니다"(16:16).

 

아하스가 이렇게 '큰' 번제단을 만들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15절은, "모든 국민이 이 큰 번제단 위에서 번제와 소제와 전제를 드리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솔로몬 시대에 만들었던 '작은' 번제단은 "나의 물을 일" 즉 왕실의 제사를 위해서 사용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차별이 아닙니다. 사실, 예루살렘 성전은 모두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은 지극히 왕실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제사는 왕실의 제사에 국한된 일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큰' 번제단을 새롭게 세우면서, '모든 국민'이 이곳에서 제사를 하게 했다는 말은, 성전의 개방이 '사방에서!' 가능하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것의 의도가 아하스의 '민주화'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결과는 좀 더 분명하게 됩니다. 사실 그 전에는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의 전통적 유산이 깊었던 각 지역 성소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성서가 표방하고 있는, "하나님이 선택한 한 곳에서만!"의 제사는 역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한 '개념 자체가!' 생겨나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예루살렘도 모든 이들의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성전이 문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결국, 점차 '중앙' 성소라는 개념이 이스라엘에 생겨나게 됩니다. 이것은 아마 멸망한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복된 소식이기도 할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예루살렘의 다윗 왕조는, 의도치 않은 성소의 변화를 통해서, 통치의 관점이 좀 더 확장되게 됩니다. 좋은 쪽으로 말하면, 예배의 민주화이고, 좀 더 정치적으로 말하면, 중앙 집권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하스 이후 히스기야가 (요시야 이전에) 획기적인 '종교, 정치 개혁'을 이룰 수 있었던 토양을 점진적으로 공급받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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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성서는 요담의 성문 건축에 관심을 많이 두지 않았고, 아하스의 '큰' 번제단에 대해서 건조하게 사건을 보고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사회 변화에 중요한 징검다리로 역할을 했음에 분명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서의 역사가 우리의 일상에 세세하게 연결되지는 않겠지만, 역사적 상상력을 가지고 일종의 건전한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