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루시아는 손에 잡혔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 13:11-12)
바울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졌던 전도와 목회의 주요한 동력은 파루시아였다. 부활의 첫열매로 의미부여된 예수는, 바울에게 파루시아라는 신적 시간표안에 존재하게 했다: "첫열매가 맺었다!" 파루시아는 손에 잡힌다(고전 7:26; 살전 1:10). 부활의 메시야가 곧 심판주로 오시기에, 거룩한 몸의 부활을 기다리며 바울과 그들의 신앙인들은 구원의 완성을 향해서 전인격적으로 나아갔다.
이것은 세상에 대한 인식과 그들에 대한 처신까지도 상정하는 말이다. 바울과 그 공동체는,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온전한 연합(이방인과 유대인; 줄기와 가지)을 요구받고, 일종의 '신적 에큐메니컬 프로젝트'에 순종할 것을 배웠기 때문에, 국가관 역시 신앙으로 해석했다: "저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롬 13:6). 국가를 사회학적으로 '기능주의적'(변형된 신정론)이거나 '갈등주의적'(변형된 공동체론)으로 여기지 않고, 전적으로 곧 다가올 신적 심판의 대상으로 모두를 상정했기 때문에,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국가의 권세를 인정한다. 요더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그들이 자신의 임무에 헌신한다는 사실로 인해서 (그들도) 하나님의 일꾼이 된다"(예수의 정치학, 353)라고 여길뿐, 롬 13장에서 그 이상과 그 이하를 찾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오히려 성서는, 특별히 복음서를 중심으로한 각 교회공동체는 매우 정치적으로 하나님 나라안에서 자신의 상대자들을 위치시키고 있다.
파루시아의 열매가 손에 잡히기 때문에, 신앙공동체가 칼과 총을 더 이상 겁내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