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묘미>
다음의 이사야서 말씀(사 48:12-16)은 첫번에는 찬송이 되지만, 두번째는 아리송이 된다.
개역개정을 보면,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분"이란 소제목이 나오고, 아래와 같이 진행된다:
12)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13)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을 폈나니 내가 그들을 부르면 그것들이 일제히 서느니라 14) 너희는 다 모여 들으라 나 여호와가 사랑하는 자는 나의 기뻐하는 뜻을 바벨론에 행하리니 그의 팔이 갈대아인에게 임할 것이라 그들 중에 누가 이 일들을 알게 하였느냐 15) 나 곧 내가 말하였고 또 내가 그를 부르며 그를 인도하였나니 그 길이 형통하리라 16)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것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것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에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의 영을 보내셨느니라
사실, 개역개정은, 읽기를 위한 텍스트라기보다는 하나의 '경전'으로서 기능하는 것 같이, 현대인들이 읽어내려가는데 필수적인 문장부호와 같은 실제적인 안내가 전혀 없다. 그래서 어디에서 끊어 읽어야 할지 확실치 않으며, 그렇기에 마치 박근혜의 어법과 같이 '나'가 '그'이며, 이제는 '주 여호와'가 '나'와 '그의 영'을 보내셨다.
이번엔, 새번역을 보면, 여기에서는 12-13절은 앞의 단락에 속하고, 14절부터 "주님께서 고레스를 선택하다"라는 단락의 제목을 설명한다:
12) "야곱아, 내가 불러낸 이스라엘아,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내가 바로 그다. 내가 곧 시작이요 마감이다. 13) 내 손으로 땅의 기초를 놓았고, 내 오른손으로 하늘을 폈다. 내가 하늘과 땅을 부르기만 하면, 하늘과 땅이 하나같이 내 앞에 나와 선다."
<주님께서 고레스를 선택하시다>
14) 너희는 모두 함께 모여서 들어 보아라. 우상들 가운데서 누가 이런 일들을 알려 준 일이 있었느냐? 주님께서 그를 사랑하시니, 그가 바빌론을 공격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그의 능력을 바빌로니아 사람 앞에서 드러낼 것이다. 15) "내가 말하였고, 내가 그를 불러냈다. 내가 그를 오게 하였으니, 내가 그 길을 형통하게 하겠다. 16) 너희는 나에게 가까이 와서, 이 말을 들어라. 처음부터 나는 은밀하게 말하지 않았다. 이 일이 생길 때부터 내가 거기에 있었다." 이제 주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고 그분의 영도 함께 보내셨다.
새번역은 높은 가독성을 목적으로 번역된 성서이다. 그래서 문장부호는 친절하다. 3절부터 시작된 야훼의 말씀이 13절에서 마감되며, 14절에서는 어떤 화자(제2이사야)가 하나님이 고레스를 선택해서 바벨론을 공격하게 할 것이며, 그것(15-16a)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체화됨을 설명한다. 그리고 16b는 제2이사야의 말이 된다.
영어번역의 경우도 심상치 않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NRSV는 인용부호가 없어서 누구의 말인지 분명치 않으며, NAS는 인용부호를 붙였지만, 개역개정과 같이, '내'가 '하나님'이며, 동시에 '보냄을 받은 자'가 되기도 한다. TNK는, 그 독특한 경건성에 비롯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인용부호가 없고, 오히려 상대되는 사람의 것(14b, 16b)에 인용부호가 붙는다. ESV는 새번역과 같이, 16a까지 인용부호를 붙이고, 16b를 따로 구분지어 놓았다.
Joseph Blenkinsopp은 주석에서 16b를 후대의 추가로 여겼고, John Goldingday는 16b를 17a와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