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를 하다보면 꼭 그자리에 물을 튕기곤 한다.
'주변학문'과 '중심학문'이라는 구별 자체가 승리주의적인 옛가치에 빠져있는 고리타분함일지 모르겠으나, '일차자료'만큼이나 '이차자료'를 읽어내는 과정에서는 뭔지 모를 '무한한 가능성들'의 유혹으로 인해, 과연 무엇을 탐구하는 것이 다시 되물어야하는 시기들이 종종 찾아온다. 그럴때는 설거지가 자리찾기에, 개인적으론, 제격이다.
설거지를 하다보면, 꼭 흘리던 자리에 물을 튕기곤 한다. 언제나 설거지의 끝은 "반경 1미터 접근금지"라고 할까? 평소에는 설거지하는 중에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어리숙한 설거지의 흔적들을 지워나가면서 몇가지들을 정리해본다. 무엇보다, 내가 설거지를 허투로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공부하다 안되면 잠깐하는 그런거...
아마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닦으시려고 물을 떠오고 수건을 챙겼을때, 그의 뒷모습은 '종'의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제자들을 소스라치게 놀라게했을수도... '인자, 하나님의 아들'의 포스가 지금 이 순간 사라지고 오롯이 '최하급계층'의 흉물스러움이 고스란히 담아있었기에 말이다. 아마 부활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아침을 준비하셨을 때, 그의 손놀림은 대접받는 자들의 어리숙함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신속하고 정교하며 부지런했을 것이다. 부활의 영광, 그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던 것은 '진정한 종됨의 생활'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과연 무리일까?
잠깐 시간을 내서 섬기는 사람과 자신의 진정한 중심이 섬기는 사람의 차이가 혹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릇들을 정리하며, 과연 다음번엔 '그 자리에 물을 튕기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을까?' 고민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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