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Did the Biblical Writers Know & When Did They Know It?
What Archaeology Can Tell Us about the Reality of Ancient Israel >>
<번역: 양지웅>
** 각주는 생략하였음을 알립니다**
제 1 장
역사, 문학 그리고 신학으로서 성서
신비로운 성서
성서는, 구약을 포함하여, 혹은 우리가 여기에서 선호하는 방식과 같이, 히브리 성서는, 여전히 서구 문화 전통에 길들어진 우리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특별한 설명이 필요치 않은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변호 역시 가당치 않다. 몇 세기 동안 성서는 확고한 고전이 되었다. 비록 그것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가 (1) 우리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드리고 있으며, (2) 우리가 그것을 숭배하고는 있지만, 구태여 그것을 읽으려 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입술에 발린 말로 성서를 높이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 성도들에게 성서는 아직도 신비로운 것으로 남아있다. 최근에, 내가 참여하기도 했던 텔레비전 프로의 제목이 “성서의 신비”였다. 분명히 그 프로는 (말하자면) 성서의 난해한 수수께끼들에 대한 대중의 지속적인 호기심을 자극했다: 예를 들면, 에덴동산은 어디에 있을까? 실제로 여리고는 무너져 내렸을까? 왜 성서의 기록자들은 이세벨과 같은 사악한 여인들을 생각해 낸 것일까? 그러한 의문들은 여전히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비록 그 텔레비전 시리즈에 대중이 열광한 것을 보고 다소 놀라기도 했고 또한 참으로 만족스럽기도 했지만 (동네 이발소에서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결국엔 회의적인 사람이 되고 말았다. 성서 주제들에 대하여 영리적이며 냉소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대중들을 교육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분명히 단순히 자극하는 것일 뿐이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손쉽게 배우고 있기는 하지만, 성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신비로운 책이다.
히브리 성서의 성격
앞선 진술은 부분적으로 진실을 담고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성서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책들의 모음집이라는 점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단순히 성서를 집어 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죽 읽어내려 가는 것과 같이, 성서가 하나의 잘 구성된 플롯에 믿을만한 등장인물들로 구성된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로 읽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내 친구들 중에 한 명은 “성서문학”에 관한 대학수업에서 “독서보고”를 제출해야 했다(그가 후에 고백하기를, 다시는 성서를 읽으려 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성서의 “이야기”란 실제로 무엇이란 말인가? 누가 그것을 썼으며, 무슨 이유로 썼을까? 그리고 우리 현대인들이 그것들 중에 어느 것이라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의 히브리 성서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책들”은 (영어 판본은 39권이지만, 히브리어 판본은 24권이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거의 전부가 익명의 저자가 기록한 것들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천 년 기간을 거치면서 기록된 것으로, 그 전체는 헬라 시대의 어떤 기간(기원전 약 2세기)에 매우 복잡한 문학적 과정을 거쳐서 하나의 작품으로 묶여지게 되었다. 이러한 방대한 “도서관” - 이 표현이 성서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면 - 은 매우 다양하고도 어쩌면 서로 상반되는 문학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러한 문학들로 신화, 전설 그리고 민간 설화, 무용담, 영웅 서사시, 구전 전승, 연대기, 전기, 설화식의 역사, 짧은 소설, 순수문학(belles lettres), 잠언들과 지혜 경구들, 시문들 (여기에는 성적인 시들도 포함되는데, 아가서를 기존의 영적인 차원을 배제한 채로 읽어보라), 예언, 묵시 그리고 그 이상의 것들을 언급할 수 있다.
이렇게 방대한 문학 작품의 편찬은 거의 전적으로 낯선 미지의 동양 문화권에서 현대 감각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해져 내려왔던 것이다. 더 나아가 성서는 이미 죽은 언어로 기록되었다. (히브리어는 최근에 들어서야 발화 언어로, 이스라엘에서와 같이, 다시 사용되고는 있지만, 그 말은 어떤 경우에서건 성서 히브리어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성서와 관련된 책들을 담당하고 있는 도서관 사서는 일종의 성직자임에 분명한 듯한데, 자기들만의 “정통적인” 해석을, 비록 그들 중 누구라도 서로 동의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머지인 우리들에게 강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대학 교수들인데, 이들은 성서를 보다 신비롭게 만들어서 자신들을 통해서만이 성서에 접근할 수 있도록 열중하고 있는 자들이다. 비록 나는 다수의 교수 출신의 성서학자들이 불가지론자에 가깝다고 의심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공격 받고 있는 성서 전통
이전에는 종교적이건 혹은 그렇지 않건 간에, 성서를 보다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단순한 소망을 가진 지각 있는 평신도들에게, 앞서 언급한 모든 것들이 남겨 놓은 것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성서 문학 - 실제로 전체로서의 성서 전통 - 이 많은 사람들에게 “무관한” 것으로, 심지어 회당, 교회 그리고 신학교에서조차 그러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러한 수고가 무슨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나의 동료들이 내게 말하기를, 많은 성직자들과 목회자들은 더 이상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알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더 이상 성서를 원어로 읽을 수 없다고 했다.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공부하는 일은, 성서 이스라엘과 그 신앙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있어서 오랫동안 근본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많은 개신교 신학원에서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역사와 역사적 주해는 자유로운 신학적 분위기 안에서 보다 현대적인 과목들로 교체되어가고 있다; 성서에 대한 여성주의적 접근; 신문학 비평은 구조주의, 기호학, 수사비평,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보다 자세하게 다룰 사항인 미학적 “학풍”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미국의 종합잡지인) ?월간 아틀란틱?(Atlantic Monthly)에서 1996년 12월자로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글을 실었던 적이 있다: 샬롯 알렌(Charlotte Allen)이 쓴 것으로, “거품을 뺀 예수를 찾아서”. 이 글은 캘리포니아의 클레몽 신학교에서 오랫동안 신약학 교수로 일하고 있는 버튼 L. 맥(Burton L. Mack)을 인용하면서 말하기를, “역사적 예수 탐구” 분야에서 최근 연구로 삼고 있는 것으로 국제 Q 프로젝트에 의해서 곧 출간될 것인 「Q 문서」(Documenta Q)가 “복음서의 신화, 역사, 정신을 끝장낼 것이다”라고 하였다. 자신의 교수 생애 전체를 기독교 목회자를 양성하는데 바쳤던, 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 끝났어. 우리에게 계시는 충분해. 우리에게 순교자는 충분하다고. 기독교는 지난 2천년 동안 유지되어 왔었어. 이제는 끝났어.” 나는 이 대목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역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오랫동안 “공언하고” 있는 한 위선자를 보고 있다. 제6장에서 언급할 것이겠지만, “역사적 예수”라는 학자적 논쟁에서 느껴지는 막연한 불안감은 “역사적 이스라엘” 탐구 분야에서 감지되는 위기감과 거의 정확하게 유사하다. 방법론적으로 같은 문제들이 충돌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인 차원에서, 가장 강력하게 성서와 그 진실성을 공격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 전통적인 적군 - 최근까지 성서를 신봉하고 있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있는 무신론자들, 회의주의자들, 혹은 “무신론자 공산당”을 포함해서 - 들이 아니라, 성서를 선대했던 아군 편이라는 점이다.
만약 이러한 전문적인 관리인들이 더 이상 성서를 신중하게 취급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서 최소한 서구 문화 전통의 토대뿐 아니라 개인적이며 공동체적인 도덕성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성서를 폄하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만약 우리가 성서를 포스트모던이라는 놀라운 신세계에 과잉 폐기물로 간단히 치부해버리고 만다면, 과연 우리는 포스트모던에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성서는 전적으로 “역사적”인가?
현재의 토의를 위한 목적으로, 나는 히브리 성서를 둘러싼 해석과 갈등의 오랜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도전은 바로 비교적 작지만 분명한 주장을 개진하고 있는 학자들에게서 발생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이들은 대부분이 유럽인들로,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하여 종종 “수정주의자”와 같이 비춰지고 있다. 물론, 유대교와 기독교 역사의 매 순간마다 자신들만의, “새로운”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성서 전승에 대한 정신 자체가 역동적이기 때문에, 언제나 변화무쌍한 것이 자연스럽게 보였다. 성서 시대 자체만 살펴보더라도, 마이클 피쉬베인(Michael Fishbane), 제프리 티게이(Jeffrey Tigay), 그리고 비교적 보수적인 다른 학자들이 이미 보여주었던 바와 같이, 성서의 기록자들은 언제나 그들 스스로가 일종의 “내부의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록자들은 대담하게 문학 전통을 개정하였는데, 비록 그것이 초기부터 경전, 즉 “거룩한 기록물”로 인식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즉 그러한 “재생된 성서”라는 것이 몇 세기 동안 있은 이후에는, 그 노력은 정말 필요한 것이었으며 더 나아가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이유는 그 어떤 학자들도, 심지어 근본주의자들까지도 무시할 수 없는 현대적인 학풍이 계몽주의 이후에 점차적으로 그 기본적 방법론들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대강 언급하자면 문학 비평, 역사적 주해, 비교 종교, 그리고 특별히, 앞으로 우리가 살펴볼 것으로, 고고학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볼 때, 수정주의자들과 그들의 계획은 무엇을 위협하고 있는 것일까? 간단히 말해서 바로 이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들의 논점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수정주의자들은 고대 혹은 성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단순히 다시 쓰려고 의도하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오히려 역사 자체를 전적으로 폐지하려는 것이다. 상당한 소란을 불러일으켰던 비교적 짧은 책인 「“고대 이스라엘”을 찾아서」(In Search of “Ancient Israel”, 1992)에서, 필립 R. 데이비스(Philip R. Davies)가 언급한 바와 같이, “고대” 혹은 “성서” 이스라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후대의 “지식인들의 고안물”로, 몇 세기에 걸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 신자들에 의해서 상상된 과거가 투영된 것일 뿐이다. “고대 이스라엘”이라는 관념은 궁극적으로 성서 자체에서 따온 것일 뿐, 성서는 “경건한 허구”이지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다. 또한 성서는 매우 후대에 문학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페르시아-헬라 시대의 실상에서 그 시대를 반영하면서 기록되었던 것이지(약 5-1세기), 그 내용적으로 시대배경을 잡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철기 시대(약 12-6세기)에 기록된 것이 아니다.
제2장에서 나는 수정주의자들의 도전이 야기하는 위험들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폭로하고자 한다. 여기에서는 단지 그들의 주요한 논점들 속에 숨어 있는 의도를 알려주고 싶다. 히브리 성서에는, 현대인의 기준으로 볼 때, 진짜 “역사”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만약 그러한 것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는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 혹은 그들의 종교(들)를 더 이상 써내려갈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러한 질문은 심각하게 취급되어야만 하는데, 비록 그러한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들이 수정주의자들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흔히 그렇듯이, 자칭 수정주의자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까지 급진적이지는 않다.)
여기에서 급박한 사항들을 간략하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걸친 비평적 성서학계에서 가장 극단적인 “근대주의자” 조차도 히브리 성서의 그 어떠한 역사성을 부인하고 있다. 그리고 (2) 국내와 국외 심포지엄이나, 전문 학술지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수정주의자들은 점차 인터넷의 활성화로 인해서 평신도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 사실 이러한 현상은 학자들이 볼 때 들떠 있는 것처럼 여겨질 뿐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내가 허무주의라 부르고 싶은 불온한 추세를 나타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허무주의(nihilism)”라는 용어를 차용하면서(라틴어로 니힐[nihil]은 “없다”를 의미한다), 나는 통상적으로 철학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는 뜻으로, 이 용어의 의미를 “지식이나 진실에 대한 그 어떠한 기초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자세”로 이해하고 있다. 수정주의자들은 이 용어를 거부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 자신이 공언하고 있는 방법론과 그 결과물들이, 우리가 이 책에서 살펴볼 것이지만, 그들의 속내를 드러내 놓고 있다. “역사가 없다”라는 것은 무역사를 의미한다. 이 시점에서 나는 단지 예비적인 차원에서 경고를 하고 싶을 뿐이며, 동시에 수정주의자들의 도전은 심각하게 받아들고자 한다.
어떤 종류의 “역사”인가?
히브리 성서에 “역사”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는지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 우리는 먼저 다음과 같은 물음에 대답해야만 할 것이다: “어떤 종류의 역사 말인가?” 역사 탐구에 있어서 모든 것들은 그 시점에 충족되어야만 하는 조건들에 달려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겠다. 핵심은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역사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서로 다르지만 그럼에도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적합한 방법론과 목표 그리고 자료라는 것이 존재한다. 영어에서는 단 하나의 단어, 즉 “역사(history)”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어로는, 예를 들어보자면, (1) 역사(Geschichte), 즉 역사기록에 있어서 학문적인 분과; (2) 역사(Historie), 즉 덜 양식화된 내러티브적인 역사; 그리고 (3) 이야기(Storie), 이것은 다수의 신화적이며 민속적인 요소들을 담고 있지만, 과거와 연결된 정보들을 담아내려는 목적이 있다. 이제 조금 다른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보자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1) 정치적 역사, 위대한 개인이나 단체의 역사; (2) 지성의 역사, 관념의 형성을 반영하고 있는 역사; (3) 사회-경제적 역사, 사회적이며 경제적인 구조에 관한 역사; (4) 기술적 역사, 사물과 그 용도에 대한 역사; (5) 미적 역사, 미학에 관한 역사; (6) 이념의 역사, 어떠한 생각, 특별히 인종적이며 종교적인 생각들이 어떻게 문화를 형성해 나가는지에 관한 역사; (7) 자연적 역사, 주변 환경과 자연적인 세계에 관한 역사(이것은 플리니우스의 「박물지」(Historia naturalis와 같다); 그리고 (8) 일종의 문화적 역사, 혹은 전체적 역사.
여전히 성서학 교수들 대부분은 (그리고 두렵건대 거의 모든 고고학자들은) 역사편찬 - 역사기술을 목적과 방법론으로 삼고 있는 - 이라는 것은 심각하며 비판적인 생각들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그들은 스스로를 역사가로 자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은 나의 동료들을 가혹하게 판단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학문적인 세계에서 발표된 글들을 고려해보자. 느즈막이 1988년에, 지오반니 가르비니(Giovanni Garbini)는 자신의 책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와 이데올로기」(History and Ideology in Ancient Israel)에서 불평하기를, “고대 히브리 성서의 이야기를 연구하고 글을 발표하는 사람들 모두가 전문적인 역사가가 아니다. 비록 내가 간단히 그들을 ‘역사가’라고 불러왔지만 말이다; 거의 예외 없이 그들은 전적으로 신학 교수일 뿐이다.”
영어권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편찬이라는 주제를 비평적으로 다룬 최초의 연구서로, 존 반 시터스(John Van Seters)가 1983년에 출간한 「역사를 찾아서: 고대 세계에서 역사와 역사편찬 그리고 성서 역사의 기원」(In Search of History: History and Historiography in the Ancient World and the Origins of Biblical History)이 있으며, 이후 1988년에 바룩 할펀(Baruch Halpern)의 자극적인 책 「최초의 역사가들: 히브리 성서와 역사」(The First Historians: The Hebrew Bible and History)가 있다. 첫 번째 책은, 성서 혹은 (내가 아래에서 이 용어를 설명할 것인데) 시리아-팔레스타인 고고학자가 쓴 것으로, 역사편찬과 고대 이스라엘에 관해서 방대한 작업을 담고 있는데, 나는 1987년부터 그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었다. 이러한 초기 출판물들 이후로 다른 연구서들이 급격히 뒤를 이어야만 했었다. 그러나 실상 그렇지 못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 역사가들이 외관상 다루기 힘든 과거라는 것을 다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우리의 능력 때문에 기가 꺾였던 것은 아닐까? 역사기록에 관한 현금의 회의주의는 분명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본문과 고고학의 자료가 지난 몇 세기 동안 우후죽순 같이 확산하고 있으며, 고고학의 새로운 발굴 결과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인데, 그 결과 정보들이 부적합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순수 문헌학”의 붕궤
이러한 불안감을 좀 더 조사해 본다면, “역사편찬의 위기”라는 문제가 특별히 히브리 성서의 본문을 다르고 있는 학자들 가운에서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이들 학자들 - 어떤 이들은 본래 문헌학자로 훈련을 받았으며, 다른 이들은 부가적으로 신학훈련을 받았고, 이제 많은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를 “신문학 비평가”라고 다시 부르고 있다 - 이 일종의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 혼동을 남은 우리들에게 투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 고고학자들은 이스라엘이나 고대 근동 역사를 기록하는 것에 관하여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그런 주저함이 조금도 없다. 우리는 백년이 넘게 이 일을 진행해오고 있었으며, 믿음직한 결과물들을 수도 없이 많이 내 놓고 있다.
이 시점에서 최근에 출간된 두 권의 책을 비교하는 일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최첨단을 걷고 있는 셰필드 대학 출판사의 도서 목록표는 이 책들이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소개한다. 그 한권은 1994년에 더블린에서 있었던 이스라엘 역사의 방법론에 관한 유럽 학자들 세미나로, 그 결과물은 「“이스라엘 역사”는 기록될 수 있는가」(Can a “History of Israel” Be Written?)이란 책이다. 다른 책은 같은 해 미국의 고고학자들이 연 국제 세미나의 결과물로, 그것은 다소 경쾌한 제목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 고고학: 과거를 조립하기/현재를 해석하기」(The Archaeology of Israel: Constructing the Past/Interpreting the Present). 두 번째 책에서 내가 기고한 글의 제목은 “문헌학, 신학, 그리고 고고학: 우리는 어떠한 종류의 역사를 원하고 있는가 그리고 가능한 것은 무엇인가”이었다. 나의 이스라엘 고고학자 동료들은, 이제는 현장 발굴을 주관하고 있으며 토론회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발휘하고 있는데, 나의 견해에 회의적인 자세를 보였다. 내가 짚으로 만든 사람을 때렸다는 것이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물론이지. 우리는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쓸 수 있다고, 자! 우리 한 번 해볼까?”
그들처럼 자신만만해 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사실, 유럽의 주류 성서 학자들은, 지난 2세기 동안 새로운 방향에서 국제적인 흐름을 이끌어 왔던 자들로, 고대 이스라엘에 대하여 만족할만한 역사를 쓰는 것에 대하여 사실상 포기한 사람들이다. 미국의 상황에서, 수정주의자들의 논의는 아직 상당한 소동을 일으키지는 않았고, 확신컨대 대중들 사이에서도 그렇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적인 교수 회의에서, 유럽 학자들은 주목하고 있으며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들의 견해는 기껏해야 십년 전만 해도 형편없는 엉터리로 받아들여졌을 정도로 교조주의적인 선언들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수백의 청중들의 칭송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1996년에 개최된 성서 문학 학회의 국제 모임에서, 코펜하겐의 토마스 L. 톰슨(Thomas L. Thompson)은 입추의 여지없는 사람들을 향하여 승리에 도취되어 선언하기를, “고대 이스라엘”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원후 2세기까지 유대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의 연설은 우레 같은 박수를 받았다.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은 오직 나 혼자뿐이었다. 그러나 쫓겨나고 말았고, 의장은 회의를 끝마쳤다. 나중에, 나는 당혹스러워 하고 있는 동료들을 발견하게 되었지만, 단지 우리들 중 몇 명만이 벽에 쓰여진 글씨를 볼 수 있었다(이것은 벨사살의 연회에서 있었던 성서에 빗댄 것으로, 그러한 모습을 우리는 대응해야만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과연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경보기를 울려야 되지 않는가?
우리의 처지가 매우 비관적이라는 것은 최근에 이루어지고 있는 몇 가지 사항들에서 아마도 제일 잘 드러날 것 같다. 하나는 1995년에 유럽 학자들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에서 개최된 국제 학회로, 이 모임의 결과물은 1996년에 「고대 이스라엘 국가의 기원」(The Origins of the Ancient Israelite State)이다. 개회 연설에서 톰슨은 나에 대한 인격 모독적인 공격을 가차 없이 퍼부었는데, 몇 가지만 언급하면, 그는 내가 게젤의 “솔로몬 시대” 성문 돌을 의도적으로 부수었고, 기원전 10세기라는 나의 선입견에 맞지 않는 모든 토기들을 내동댕이쳤다고 하였다. 비록 내가 예루살렘에서 곧 바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없었지만, “우리” 측은 바룩 할펀(Baruch Halpern)이라는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젊은 성서학자들 가운데 한 명에 의해서 변호될 수 있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의견 “교환”은 1996년 더블린에 있었던 방법론 세미나에서 있었는데, 찬성하지 않는 우리들을 초청하지 않았다. 발표된 논문들은 이제 출간되었는데, 톰슨이 기고한 “남부 레반트의 역사와 인종을 정의하기”라는 글에서 나와 북미 그리고 이스라엘 동료들의 견해를 비열하게 풍자해 놓고 말았다. 톰슨이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는 “팔레스타인 고고학을 해석함에 있어서 성서 이스라엘에 시대착오적으로 투영된 상태로 작업하고” 있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특별히, 나는 “고고학적으로 파생된 사회-문화적 시나리오와 성서읽기 사이에 조화를 찾아내려는 방침”에 오랫동안 몸담아 왔었다. 톰슨 자신의 결론을 언급하자면, “나는 그 어떠한 성서 본문이 ‘역사적으로 온전히 신뢰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도저히 상상해낼 수 없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역사적으로 읽기 위해서” 많은 본문과 고고학 자료들을 연구하였다.
또 하나의 통탄할 만한 사건 전개는, 톰슨이 찬양했던 것으로, 1996년에 키스 W. 휘틀렘이(Keith W. Whitelam) 출간한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팔레스타인 역사의 침묵」(The Invention of Ancient Israel: The Silencing of Palestinian History)이란 책이었다. 휘틀렘은 성서 학자들, 그리고 특별히 이스라엘인들과 나와 같은 고고학자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역사를 “강탈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바로 청동기 이후부터 그 땅의 실제적 점유자였다는 것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인식된 “성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그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그들의 문화적 유산으로부터 쫓아내고 또한 그들의 정당한 토지점유권을 박탈하는데 공모했다는 것이다. 휘틀렘이 역사를 읽는 방식에 의하면,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이라는 비난 위엄하게도 반(反)셈족주의와 유사한데, 그 책에 대한 몇 비평가들도 동일하게 지적하고 있다.
계속 진행하기 전에, 점차 열을 띄고 있는 논쟁의 당사자들을 분류하는데 사용되고 있는 일종의 “줄임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런 것들 상당수는 인터넷 “유언비어”이다. 같은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어떻게 말하든, “최대주의자”(maximalists)와 “최소주의자”(minimalists)라는 용어는 십년 전에 내가 쓴 글에서 나왔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는 다음의 용어들을 마주하게 된다: “실증주의자”(positivists) 대 “허무주의자”(nihilists), “속내를 숨기고 있는 근본주의자”(crypto-Fundamentalists) 대 “과학적 역사가들”(scientific historians), “승리주의자”(triumphalists) 대 “거대인수자”(supercessionists). 예상컨대, 다음에 등장할 것으로 우리는 “시오니스트”(Zionists) 대 “반-셈족주의자”(Anti-Semites)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름을 부르는 것은 열띤 전쟁 상황에서 불가피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평신도들에게 어이없이 보일 뿐이다. 그리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러한 상황은 잠시 동안 성서 학계를 주무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개의 성서해석 “학파들”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이며 심각한 차이들을 알려지지 않게 가려놓고 있을 뿐이다. 어떤 경우에서건, 토론에서 갈수록 더해가는 증오는 배타적으로 본문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는 역사가들 사이에 절망감이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할펀은, 야곱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들 역사가들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 자체로 “문헌학의 영적 파산”이라고 하였다. 수정주의자들이 한 가지 점에서는 옳다: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온전히 성서 본문만으로는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처한 막다른 골목이다.
이 책의 남은 부분에서, 나는 이러한 주제들을 보다 분명히 밝혀내고 싶으며 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점을 집중하고자 한다: 어떻게 우리는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성서 본문과 고고학적 증거들이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 있어서 합법적인 자료로 작용할 수 있을까? 이 일을 진행해나가지 전에, 우리는 수정주의자들이 “역사로서의 성서”라는 개념에 반대하면서 내세우고 있는 전략 과정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문학으로서의 성서”이다.
역사, 문학, 그리고 믿음
히브리 성서가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문학, 그것도 소멸되지 않는 그런 문학이라는 점은 언제나 당연한 것이 되어왔었다. 그러므로 현대의 비평적인 성서 연구는 19세기 중반부터 “문학 비평”(가끔씩 “고등비평”으로 불리기도 하였다)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 접근은, 오늘날 많은 비난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출발점이라고 하겠다. 시작점에서부터 문학 비평 - 본문의 역사적인 자리에 대한 자세한 분석; 자료들과 저작권 그리고 연대를 설정하는 일; 그리고 본문이 전수되는 복잡한 역사에 대한 연구 - 은 자신만의 궁극적인 목표가 있었다. (1) 실제 사건의 역사를 말하고 있는 본문을 복원하는 일; 그리고 (2) 이들 사건에서 끄집어 낼 수 있거나 사건과 연관된, 고대와 현대 모두에게 해당되는 신학적 해석을 재평가하는 차원의 본문 주해. 줄여서 말하자면, 히브리 성서에 대한 고전적인 문학적 접근은 성서를 근본적으로 “역사적인” 성격의 글로 암묵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확실히 말하자면, 시간이 지나면서 문학-비평적 연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성서가 확실한 역사라는 생각을, 아마도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확실함으로, 만들어냈다. 다시 말하자면, 수정주의자들은 여기에 집중하였다: 히브리 성서를 “역사”로 곧이곧대로 간단히 읽는 일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성서는 이후의 이스라엘이 자신의 과거의 경험에 대한 일련의 신학적인 반영인 것이지, “이스라엘 역사”는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실은 그 어떠한 역사도 이 문학(성서-역주)에서 찾아낼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내가 이 책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수정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한 가지 선택 밖에 없다: 우리는 성서를 “역사”로 그렇지 않으며 “문학”으로 받아들이도록 양자택일을 강요받게 된다. 역사편찬에 관한 그들의 허무주의적인 태도를 고려할 때, 선택은 이미 기정사실로 굳어진다: 히브리 성서는 오직 문학일 뿐이다. 닐스 피터 렘케(Niles Peter Lemche)와 톰슨이 최근에 언급했던 바와 같이: “성서는 역사가 아니다. 오직 최근에 와서야 사람들이 성서를 역사라고 원했을 뿐이다.” 이들의 주장을 빤한 거짓으로 그냥 넘겨 버리는 것이 더 낫다(지난 이천년 기간 동안 수백 명의 성서 독자들은 언제나 성서를 “역사”로 생각해왔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히브리 성서를 단지 문학으로만 보려는 수정주의자들의 선택 이면에 들어있는 이데올로기적인 동기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문학”이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문학으로서의 성서” 운동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수정주의자들은 전혀 혁신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히브리 성서에 대한 소위 “신문학 비평” 접근은 거의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 문학 접근이 전통적인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데이비스와 다른 이들이 속해있는 “셰필드 학파”의) J. 쳘 액슘(J. Cheryl Exum)과 D.J.A. 클라인즈(Clines)가 편집한 「신문학 비평과 히브리 성서」(The New Literary Criticism and the Hebrew Bible)에 따르면, “신” 문학 접근은 “역사적인 학문이 아니라, 엄격하게 문학적인 것으로, 성서 문학의 텍스쳐(texuality, 강조는 나의 것)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들 방법론을 주도했던 제안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이러한 주장을 가장 처음으로 발표했던 자들인데, 신문학 비평은 다소 절충하는 식으로 새로운 (즉, 역사적이지 않는) 문학-비평적 접근들의 요소들을 포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요소들로는 후기구조주의적 방법, 여성 비평, 정치적이며 물질주의적 (그렇지만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와는 다른) 비평, 정신분석학적 비평, 그리고 무엇보다도 해체주의이다.
만약 이 도발적인 책의 소논문들을 추종하고, 신문학 비평에 관한 최근의 다른 연구들도 접하게 된다면, 다음의 복잡한 그림이 그려지게 된다. 이어지는 결과는 지난 십년 전에 일어났던 운동, 즉 일반 문학 학계에서 “해체주의”로 알려진 것과 상당히 흡사할 정도로 닮은 그림을 마주하게 된다. 내가 볼 때 “해체주의”는 특별히 급진적인 성서 비평학계의 조상이다. 여기에서 내가 분류하는 것은 너무 간략화 했기 때문에 다소 신비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근에 나온 문학연구서를 조금만이라도 살펴보게 된다면, 내 말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텍스트”란 무엇인가?
1. 텍스트는 “그 자체로” 개별적인 “예술 작품”이며, 어떠한 결과를 위한 수단으로 의도된 그 무엇이 아니다.
2. 텍스트에는 단 하나의, 권위적인 “의미”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3. 텍스트를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가”는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와 같이 중요하다.
4. “구조”가 내용보다 더 중요하다.
5. 본문에 대한 접근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거의 무제한으로, 이러한 방법들은 합법적이며 생산적일 수 있다.
6. 모든 본문들은, 언어의 “무한한” 성질 때문에, 그 자체로 완성된 것이며 어떤 경우에서는 상호 간 위배적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대부분의 경우 저자의 “조심스러운 의도”라는 것은 들어있지 안다.
7. 텍스트는 내재적인 “의미”라는 것이 없다; 그 어떠한 의미라는 것도 반드시 추가되어야만 하며, 이것은 거의 독자의 반응에 따라 결정되며, 또한 저자와 우리들의 “지식 사회적 맥락”도 중요한 요소이다.
8. “의미”는 텍스트를 상상력을 발휘하여 상징적으로 읽어냄으로써 가장 잘 “만들어지는데”, 이는 다른 본문들과 관련할 뿐만 아니라(“인터텍스쳐”[intertextuality]), 그 본문 자체의 모든 단계에서 즉시적으로 만들어진다.
9. 텍스트의 본래 경계를 뛰어 넘어서 읽는 것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
10. (만약 있기라도 한다면) “확실하게” 읽는 것에 대한 유일한 “기준”은 특정 독자 공동체들의 수용 여부에 달려 있다.
위와 같은 신문학 비평의 표명은 이 방법론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동의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설명은 일반적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론은 실제에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는데, 특별히 어떻게 텍스트가 취급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쉽게 알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의 입장은 주류 성서 학계의 표준적인 최신 문학 이론을 따르고 있다.
본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해체주의의 실제
첫 번째로, 우리는 기초가 되는 엑슘과 클라인즈의 안내서에 들어있는 소논문들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의 것들을 배울 수 있다:
1. 본문을 “그것의 요구에 맞게, 그것이 강제하고 있는 것에 반하여” 읽어라; “아킬레스 건을 찾아라.”
2. 완전한 점보다는 “인지 부조화”를 찾아라.
3. 본문을 “그 저자에게서 독립된, 통일성 있는 지적인 전체물”로 취급해라.
4. “성서” 본문을 스페인어로 읽어보라. 혹은 여러분 고유어로 읽어서 우리들의 상황에 적합하게 읽도록 해라.
5. 본문을, “권력을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써, “정치적으로” 읽어라. 즉, “그것이 무엇에 실패하고 있는지를 캐내보라.”
6. “문학은 실제를 반영하고 있다”라는 오래된 생각을 완전하게 던져 버려라.
아마도 신문학 비평이 본문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클라인즈 자신의 글이라고 하겠는데, 이 글은 명백하게 해체주의적인 입장에서 시편 24편을 재해석하고 있다. 이 글에서 우리는 본문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편향된 독자반응 비평” 이라는 특유한 읽기 전략을 배우게 된다. 이 방법론의 의도는 “목표-지향적 해석학으로, 나는 ‘끼워 맞추기 식의’ 혹은 ‘맞춤화된’ 해석이라고 부른다.” 이후 클라인즈는 그의 방법론이 “시장지배적 해석 철학, 곧 최종 사용자 해석 이론”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본문은 클라인즈가 “판매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도 될 수 있다. 그는 다행스럽게도 여섯 명의 “구매자들”을 찾을 수 있었다고 가끔씩 말하기도 한다. 더 이상 놀라울 것이 있을까?
내가 클라인즈의 입장을 풍자화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클라인즈 자신의 요약을 소개하겠다:
만약 “올바른” 해석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다양한 이익 집단의 동의를 능가하는 타당성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성서 해석자들은 해석에 있어서 결정적이며 보편적으로 수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세를 이제는 포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팔아 치울 수 있는 해석 - 그들이 섬기기로 결정한 공동체가 요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상관없이 - 을 생산해내는데 힘을 모아야만 한다.
클라인즈는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자신의 연구를 정리한다: “나는 본문을 해체한 이후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하여 종종 궁금하게 여겨왔다. 진정한 해체주의자라면 이렇게 말하겠지, 해체를 해체하도록 하라.” 어쨌든, 클라인즈는 그 일을 하기 꺼려하고 있다. 그는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우리는 의미라는 뗏목 위에서 표류하고 있다. 그 의미 아래에서 돌고래와 같이 우스꽝스럽게 미끄러지며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기초가 탄탄한 기반 위에 세워진 것처럼 살고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자포자기처럼 여겨질 것이다. 클라인즈는 스탠리 피쉬(Stanley Fish)의 개념을 빌려왔는데, 그는 듀크 대학의 영문학 교수로 (클라인즈가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해체주의 운동의 주창자들 가운데 하나로, 이제는 그의 인기가 시들어졌다. 바로 피쉬가, 자신의 책 「이 모임에는 본문이 있는가? 해석 공동체의 권위」(Is There a Text in This Class? The Authority of Interpretive Communities)에서 주장하기를, “문학을 ‘만드는’ 사람은 독자이다”라고 하였다.
피쉬의 배후로, 해체주의에 대한 다소 진부한 대표자로, 후기구조주의자인 미셀 푸코(Michel Foucault)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와 같은 중추적인 인물이 있다. 예를 들어 본다면, 데리다는 본문을 “읽는 것”은 “단어를 잡아내는 일” 즉 “절대로 풀어낼 수 없는 모순” 앞에서 갑자기 멈추는 일이 전부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만약 하나의 은유가 그 (단어의) 암시하는 바를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우리는 그 은유를 붙잡아야만 한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그 은폐의 구조 아래로 내려가서, 본문 스스로 위배하고 있는 것, 그것의 결정 불가능성을 폭로하는 모험을 해야만 한다.
본문에 대한 해체주의의 기본적인 접근은 - 나는 예전에는 이것을 필요상 “호의적인 것”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적대적인 것”으로 여긴다 - 최근에 발표된 신문학 비평 연구에서 잘 드러난다. 예를 들어, 1994년에 남아프리카의 프리토리아에서 있었던 회의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인 신학자들”이 기고한 연구 논문집을 들 수 있는데, 그 책의 제목은 「수사학, 성경, 그리고 신학」(Rhetoric, Scripture, and Theology)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의 필수적인 사항들을 배우게 된다:
1. “정치학과 의심의 해석학”으로 본문에 접근해야 한다.
2. 우리 자신을 본문으로부터, 그리고 본문을 우리에게서 “보호해야” 한다.
3. 둘(본문과 독자-역주) 사이의 거리를 “잊어버려야” 한다.
4. “다양성과 복수성을 즐거워해야 한다.”
5. 본문은 “수사학적으로 발명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6. 고대의 모든 본문들은 “주인중심적(kyriocentric)” (즉, 남성 쇼비니즘)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7. “읽기”란 “자서전적인 것”이며 “순환적인 것”임을 파악해야 한다.
최근에 출간된 주류 성서학계의 방법론 연구서 - 「각자에 맞는 의미: 성서 해석과 그 적용에 대한 개론」(To Each Its Own Meaning: An Introduction to Biblical Criticisms and Their Application) - 에서조차 신문학 비평, 해체주의 그리고 그와 연관된 문학 방법론이 점차 잠식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다양한 저자들은 본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1. 본문은 “그 저자와는 무관하게 해석할 수 있는 독립체”이다.
2. “저자의 의도”는 “독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일종의 환영”이다. 중요한 것은 단지 저자의 “의미론적 영역”일 뿐이다.
3. 언어란 “한량없이 불안정하며, 의미는 항상 미정이다.”
4. 모든 본문은 “격퇴당해야” 한다.
5. 저자의 “확신”을 “신학적, 윤리적, 곧 서사 표현”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6. 다른 사람들의 “적법한 읽기”는 우리들의 것만큼 도움이 된다.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본문 읽기의 개념은, 특별히 성서 본문과 관련하여, 별다른 첨언이 필요치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통상적인 상식을 가진 독자라면 그러한 개념들이 너무나 불합리하게 보여서 신중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개념들은 오늘날에 와서는 역사로서의 성서를 포기하고 새로운 “문학으로서의 성서”를 받아들이는 많은 성서 학자들 가운데 지배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보다 공식적인 차원에서 반박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성서 본문은 최근까지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는데 기본이 되는 - 참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 자료로 여겨져 왔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수정주의자들에 의해서 의문시되고 있는데, 이제는 종종 문학에서 제기되고 있는 온전하지 않는 수사 의문문에서 발견된다: “성서 없이도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 가능할까?” 우리는 이 시점에서 대답해야만 한다. 경우가 어떻건 상관없이, 만약 성서 본문이 그 어떤 의미에서건 역사가들의 입장에서 “폐물을 이용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들 본문의 성격에 관하여 몇 가지 질문을 해야만 할 것이며, 그것을 읽어내는 최고의 방법을 알아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결국 그 일을 해낼 것이며, 수정주의자들은 분명히 실패한 그 일을, 비록 결국엔 본문에 대해 어떤 결말을 내리게 될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신문학 비평에 대한 간략한 비평
신문학 비평 접근에 관해서 내가 품고 있는 불안감은 주로 아래의 것들과 관련하고 있다:
1. 그것 자체로 이미 결정적인 “반-역사적” 자세로, 나는 거기에서 그 어떠한 정당화를 발견할 수 없다.
2. 보다 우월한 결과를 보일 것이라는 약속; 그러나 이 접근이 정말로 우리들의 품성을 높여주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혹시 단지 우리를 즐겁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3. 그것이 표방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정교함이 부족하다. 특별히 아직 조직화되지 않는 “문학 생성” 이론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이론들은 통상 다른 연구 분야에서 빌려온 것들인데, 이미 퇴물이 된 이후 한참 지난 후에 가져온 것이다.
4. 상당히 반발적인 성격을 들 수 있는데, 사회의 “주변인”이라는 자의식적인 상황에서 이데올로기와 권력 그리고 정치적인 문제에 사로잡혀 있다. 사실 이런 것들은 전적으로 본문과 상관이 없다.
5.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회적 맥락”에 강조를 두고 있는데, 사실 본문 그 자체의 고유한 맥락은 무시하고 있다.
6. 언어학적이며, 역사적이며 그리고 비교 분석적인 언어 능력의 중요성을 최소화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입장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그 어떠한 본래적 맥락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다.
7. 개별적인 본문의 “고립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과는 모순되게, 이와 동시에 “상호텍스트성”이 본문 읽기의 본질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8. 본문은 반드시 “시험을 거쳐야” 한다고 가정하지만, 과연 어떠한 시험을 충족시켜야 하는가에 대해서 기준을 전혀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다.
9. “저자의 의도”를 부인하고 있지만, 실상 이것은 상식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10. 궁극적으로 문화적 상대성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본문이 독자가 원하는 그 무엇도 의미할 수 있음을 뜻한다. 이것은 본문의 왜곡 혹은 착취와 다르지 않다. 과거의 근본주의자들과 자유주의적인 종교 설립자들을 비난했던 것이 바로 이점 때문이지 않았는가.
11. 본문에 대하여 “문제 제기하기”를 좋아하지만, 실상 답은 주지 못하고 있다.
12. 독자의 주관적인 관심사를 지나치게 격상시켜서 최종적인 “의미”로 만들어 놓고 있는데, 나는 여기에서 오만과 제 멋대로 하는 자세를 발견할 뿐이다.
13. 그 운동 전반에서 드러나는 이데올로기적이며 논쟁을 좋아하는 성격으로, 입증된 합리적인 논증을 바꿔치우자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14. 이 접근의 우월성을 종종 무리하게 주장하고 있는데, 거의 교리적인 차원이다. 그러나 사실 본문 읽기의 실제는 공상에 가깝다고나 할까.
15. 전형적인 포스트모던적인 자세는 필수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은 좀처럼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한 때 존재했었다고 조만간 보여질 것이기 때문에) 최신 유행이라는 것이 정말 최고란 말인가?
고대의 본문을 변호하며
고고학자로서, 나는 전반적인 사고방식이 “전근대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기질적인 면과 그동안 받은 교육으로 볼 때, 새로운 이론으로 다시 맞춰지지 않는 일종의 전통주의자인 셈이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대 본문을 접근함에 있어서 다음의 전통적인 가설들을 고려해보라. 즉, 이러한 것들에게서 나는 무한히 바람직하며 더 보람이 있는 성질을 발견하게 된다.
1. 본문은 특정한 시간, 공간, 문화, 언어의 생산물이며,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맥락으로 되돌려 놓아야만 한다.
2. 본문은 특정한 의도를 가진 저자에 의해서 기록되는데, 일반적으로 특별한 청중이 있다.
3. 본래적인 “의미”는 언어상 본질적인 차원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이 언어는 신중하게 결정된 것임과 동시에 잠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4. 본문에 접근함에 있어 독자의 첫 번째 임무는 그 자신과 그의 상황을 본문이 상정하고 있는 배경에 놓는 것인데, 이를 통해서 본문의 본래적인(즉, “참된”) 의미를 가능한 그 자체만으로 드러낼 수 있는 “객관성”을 시도하게 된다.
5. 방법론적으로, 본문의 고유한 언어, 지리적 정보 그리고 문화적 상황을 숙달하는 것, 그리고 동시대의 다른 본문들을 비춰줄 수 있는 빛 말고는 대안이 없다.
6. 고대 본문을 해석하는 작업에서는,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요인들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점들을 반드시 인지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점들은 당시에는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요인들에는 직관을 포함할 수 있으며, 근거가 있는 상상력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감정 이입, 즉 “자기 자신을 이해의 영역 내에 위치시키는 것”이 포함된다.
7. 무엇보다도, 인식된 본문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전유한 것에 대하여 의문을 품는 것은, “무관심성”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차원에서, 해석을 처음 시도하는 동안에는 엄격히 멀리 떨어뜨려 놓아야만 한다. 심지어는 그 이후에라도, 주어진 의미라는 것도 임시적이며, 본문이 본래 맥락에서 가졌을 법한 “권위”와 같은 위치를 가져서도 안 된다. 짧게 말해서, 신학적인 관심은 역사적인 주해와는 엄격하게 구분시켜 놓아야 한다. 신약 학자로 하버드 신학교의 전임 학장이었던 크리스터 스텐달이 한 때 주목하였던 바와 같이, 모든 역사적인 질문은, 특별히 성서학 분야에 있어서, 다음의 두 가지 분리된 질문으로 제기될 수 있다: (1) 그 본문이 의미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2) 그 본문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모든 것들 때문에 내가 실증주의자가 된다고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최소한 나는 나 자신의 필수적인 자료가 있음을 부인하면서까지 역사가의 일을 진행해나갈 수 없다. 내가 생각할 때 이런 것은 수정주의자들이나 하는 일이다. 어찌 되었건, 나는 단연코 그렇게 구식의 사람은 아니라고 본다. 소수의 교활한 유행 선도자들이 이미 여러 대학의 영문학과와 비교 문학과에서 매혹적인 해체주의가 그 절정에 올라가 있다고 주목한 바 있다. 바로 그곳에서 유행이 시작하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새로운 접근을 예견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해체주의의 처참한 전망에 대한 확실한 대처로 보인다: 곧 “신-실용주의”(Neo-pragmatism)이다. 해체주의와 함께, 내게는 그렇게 보이는데, 문학 비평안에서 허우적거렸던 한 세대가 지나면, 우리는 돌고 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중에 몇은 그러한 여정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은 언제나 “실용주의자”로 - “이상주의자”는 아니며, 하물며 “실증주의자”도 아니다 - 고대 본문(과 우리가 곧 보게 될 것이지만, 또한 인공유물들)을 읽어내려고 애를 써왔던 사람들이다. 때때로, 프로이드가 언급했던 것과 같이, “본문은 단지 본문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나 혼자만 전투태세를 갖춘 전통주의자는 아니다. 우리들은 아마도 오늘날의 유행하는 대학 문화에서 볼 때, 소수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쟁에서는 패배하지 않았다. 일시적인 유행은, 그 정의상 극단적인 것인데,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의 몰락을 야기하는 반응을 일으키며 새로운 중심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만들어내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수정주의자들”과 대화하면서 근본적인 주제로 본문의 성격을 조사해왔는데, 이제 우리는 다음의 보다 높은 분석의 차원으로 간단히 옮겨가야만 한다. 이름하여 문학에 대한 질문으로, 곧 단순히 본문으로 토대를 세운 보다 큰 건축물로서의 문학을 말한다. “문학”이라는 말의 본질적인 개념은 자명한 듯이 보이는데, 특별히 문학비평에 여념이 없는 이들 학자의 작품에서 그렇다. 그러나 모두가 수긍하는 정의는 아직까지는 나오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면, 수정주의자들은 성서가 “문학”이라고 간단히 가정한다. 왜 그렇다고 가정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단언을 통해서 그들이 뜻하는 바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 어떠한 “문학 생성” 이론도 합리적인 설명을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주석으로 유명한 로버트 케롤(Robert Carroll)이 “예레미야서가 제일 먼저 발생하게 된 과정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하나도 없다”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서 진실이 아니다. 우리는 7세기 후반과 6세기 초반에 신-바벨론이 유다를 향해서 진격하면서 발생하였던 정치적인 위기에 관해서, 성서와 비성서 자료를 통해서, 엄청나게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확실히 그것은 예레미야가 (혹은 그의 “제자들”이) 살았고 사역했던 구체적인 상황이다. 그와 같은 (케롤의) 진술은, 어리석게도 잘못된 학자들이 자발적으로 역사적인 맥락에 눈을 감고 있을 때 과연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순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 실패의 원인을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이, 엑슘과 클라인즈가 솔직하게 인정했던 바와 같이, 문학 이론과 비교 문학 분야에서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신문학 비평의 일관된 문학 이론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에서 찾고자 한다. 그러한 교육을 받은 학자들은, 예를 들면 탁월한 헤브라이어 학자이자 히브리 성서를 보다 새로운 문학적 비평 방법으로 접근을 시도했던 개척자이기도 한 로버트 알터(Robert Alter)와 같은 학자들은, 신문학 비평의 여러 가지 극단적인 차원으로까지는 나아가지 않고 있다. 「성서 내러티브의 미학」(The Art of Biblical Narrative)과 같은 책에서 알터가 제시한 문학적 분석은 보다 설득력이 있는데, 이는 확실히 다른 읽기들, 그러니까 심지어는 역사적인 것까지도 필요하게 여겨서 배제시키지 않고 있다는 점이며, 더 나아가 여기에서는 보다 전통적인 본문 주해까지도 회피하지 않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알터는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을 훨씬 능가하는 헤브라이어 학자이기도 하다. 이 책을 자주 인용되고 있는 독일의 “서사학 학자”인 미케 발(Mieke Bal)의 작품과 비교해보라. 그는 히브리어를 읽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이러한 모든 연구들은 확고한 신뢰감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다.
문학은 간단히 말해서 (신문학 비평에서 선호되는 표현으로) “담화형태”로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문학은, 비록 많은 고대의 본문이 오랜 구전 전승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말로 된 것이 아니라 기록된 것이다. 나는 문학의 특성이라고 여겨지는 다음의 특별한 점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1. 문학은, 특별히 거의가 읽고 쓸 수 없는 고대 사회에서, 창조적이며 지적인 상상력을 가진 극히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만든 작품이다.
2. 문학은 일반적으로 허구인데, 비록 때때로 성서 내러티브의 많은 부분에서처럼 “역사화”되었다고 하지만 말이다. 그것은, 최소한 대다수의 사람들의 차원에서 조차도, “과거는 실제로 어떠했는가”(이 말은 19세기 실증주의 역사가인 레오폴트 폰 랑케의 유명한 경구인, Wie es eigentlich gewesen war)를 드러내주지 않으며 또한 그럴 수도 없다.
3. 문학이 실제를 직접적으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매우 기술적으로 “의도성”을 품고 있다. 그것은 (a)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특별한 대상을 놓고 기록되었으며, (b) 실제에 대한 어떤 관념을 전달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데, 주로 저자의 경험에 대한 “내적 실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가피하게 최소한 외부적인 (혹은 “진짜”) 세계의 어떤 부분을 반영하고는 있다. 그것은 실제에 대한 관념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굴절하기도 하는데, 아마도 역사를 초월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의 말살하지는 않는다.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적절한 은유로는, 그것을 “상징으로 코드화된 생각과 행동”의 한 형식으로 여기는 것이 될 수 있으며, 특별하게 선택된 상징과 코드화된 언어로 된 말로써 보는 것이다. 우리가 - 고대 본문이라는 특별히 어려운 -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만큼, 우리는 그 상징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며 그로 인해서 저자가 표현하고자 했던 실제 배후의 세계를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한 점은, (말로 된 것들을 포함해서) 상징은 단지 그 자체 이면을 지시하고 있는 “표시”라는 것이며, 그러므로 언제나 다소 불가해한 것으로 남아있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징을 “읽는다는 것”은 가능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만약 이 경우엔 본문에 대하여 언어, 어휘, 문법 즉 상징의 구문론을 모르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리한 억측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비록 암호화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벙어리”는 아니다; 오히려 역사가들이 종종 귀머거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인공유물이 본문과 같은 “상징”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유사한 해석의 원리로 읽힐 수 있을지(곧 해석학의 차원)를 간단하게 살펴볼 것이다.
신학으로서 성서
지금까지 우리는 예비적인 차원에서, 성서가 최소한 어느 정도는 역사를 담고 있다는 뜻에서 성서는 역사라고 주장해왔다. 그리고 또한 성서는 의심할 바 없이 문학이기도 하다. 이 말은 “하찮은 문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성서의 근본적인 성격으로, 바로 여기에서 조사해볼 것과 같이, 신학을 포함하고 있는가? 이것은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질 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성서는 신학이지. 무엇보다도 신학. 다른 게 있을라고.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신학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되집어 보아야만 한다. 그것은 체계적인 것으로, 신의 속성(스스로의 계시, 그리고 인간 사화에 대한 그의 요구사항)에 관한 진술들을 통일성 있게 조직화하는 것이다. 신학을 이렇게 정의해 본다면, “성서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앞에서 언급했던 성서 문학에는 자료들의 다양성이 있어서 통일성이라는 개념에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학이 요구하고 있는 것과 같은 보다 합리적이며 조직화된 개념의 표현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신학”은, 학문적인 혹은 고백적인 분야의 차원에서, 비교적 현대적인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최소한 고전시대 이후(post-Classical)에 나온 것이다. 또한 성서에는 “신학”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없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도 필요하다 - 그뿐 아니라, “종교”에 대한 단어도 없다(종교라는 현상은 정의가 필요치 않을 정도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히브리 성서에는 많은 신학적 개념들이 들어있다. 전반적으로 깊이 있는 종교적 문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하나의 전체로서 성서의 문학을 특징지을 수 있는 유일한 “성서 신학”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필수 조건이 세워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우리 현대인들이 종교에 관한 객관적인 개념들을 적용시키면서, 히브리 성서를 간단히 세속화하거나 “부적당한 것을 제거할 수”는 없다고 서둘러 말해야만 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급진적인 수술이 로버트 오덴(Robert Oden)의 「신학 없는 성서」(The Bible Without Theology)나 데이비스(Philip R. Davies)의 어쨌든 「그것은 누구의 성서인가?」(Whose Bible Is It Anyway?)와 같은 책에서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간단히 축소할 수 없는 히브리 성서의 핵심 - 그것의 깊이 있는 종교적 감각 - 이라는 그 요소를 제거한다는 것은 성서의 문학적 완전성에 위배되는 일이다. 최소한 심지어 수정주의자들조차도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은 취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렘케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사로부터 신학을 자유롭게”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가, 아래에서 보다 더 자세하게 “성서 신학”을 조사할 것인데, 실제로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역사로서의 히브리 성서를 과격하게 평가 절하하고 그 결과로 그것을 문학으로 재평가하려는 시도가, 위에서 약술한 바와 같이, 경전으로서의 성서의 권위를 손상시켜 놓았다는 점이다. 확실히 지난 수세기 동안 회당과 교회에서는 성서를 해석하고 활용함에 있어서, 성서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역사를 포함하여, 모든 방식에 “진실”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계몽운동과 현대의 성서 비평의 발흥으로 인해서 그러한 확신은 점차 손상을 입기 시작하였다. 이제 그러한 확신은 성서를 비역사화하는 수정주의자의 논리적 결론에 다다르게 된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성서 비평 분야에서 파괴적인 충격을 가했던 것에 저항하기 위해서 지난 세기에 있어왔던 많은 시도들 중에, 20세기라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미국의 종교적 분위기를 근본적으로 심각하게 흔들었던 것으로, 악명 높은 근본주의자-현대주의자 논쟁이 있었다. 개신교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교파가 서로 투쟁하는 진영들로 나뉘게 되었고, 심지어 오늘까지도 불화한 상태로 남아있다. 그들의 주요한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성서는 역사적으로 진실한가?”
우리가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고고학은 특별히 “성서 고고학”으로 알려진 미국 특유의 현상적 모습으로, 이 논쟁의 거의 처음 단계에서부터 말려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고고학이 성서의 진실됨을 증명해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버드에서 내 스승이었던 조지 에른스트 라이트(George Ernest Wright)는 1940년부터 1970년대까지 저명한 성서 고고학자였으며, 동시에 구약 신학을 선도하고 있었다. 1950년대에 유럽의 붕궤와 당시에 팽배했던 절망감에서 생성된 전후 “신-정통주의”라는 신학적 운동에 크게 영향을 받았던 라이트는 1952년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던 「행동하시는 하나님: 이야기로서 성서 신학」(God Who Acts: Biblical Theology as Recital)이라는 소책자를 출간하게 된다. (오늘날에서는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조합이겠지만) 고고학자이자 동시에 신학자였던 라이트는 역사란 신앙의 “일차적 자료”라고 선언하면서 그 문제를 요약하였다. 라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서적 신앙에서, 모든 것은 중심적인 사건들이 실제로 발생하였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있다.” 이스라엘의 신앙에 대한 중심적인 사건으로, 라이트는 아브라함의 소명, 출애굽, 가나안 땅을 선물로 약속함, 그리고 정복과 같은 사건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들 가운데, 하나님이 독특하게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의지를 계시하가 위해서 인간의 경험 세계 안으로 개입하였다. 그러므로 라이트의 제목이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호소력 있는 신학이었다. 그리고 다수의 믿음이 깊은 신자들의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심지어 그렇게 신실하지는 않았던 보수적인 계열의 많은 성서 학자들까지도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중심 사건들”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 번 가정해보라! 더 나쁘게 말해서, 만약 실제적인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단순히 자유주의적인 성서 비평이 아니라, 바로 고고학이라고 한다면? 의미심장하게도, 그가 예견하였던 역사편찬분야의 위기를 해결하려 했던 선두주자들은 다름 아닌 라이트 자신의 고고학 학생들이었다. 라이트와 그의 스승, 곧 전설적인 윌리엄 폭스웰 올브라이트(William Foxwell Albright)에 의해서 자신 만만하게 예견되었던 성서학 분야의 “고고학적 혁명”은 1980년대에 나타났지만, 전적으로 그들이 기대했던 긍정적인 방향은 아니었다. 히브리 성서에서 서술되고 있는 “중심 사건” 대부분은 역사적으로 전혀 입증할 수 없는(즉, “진실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 어떠한 역사적인 것이 남아있기나 한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역사가 현대인의 종교생활을 위한 기초적인 면을 어떻게 제시할 수 있는 것일까? 더 나아가 세속적인 가치관을 위해서는 또 어떻게? 이러한 질문은 우리가 다음에 이어지는 장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제6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