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마치 르브론 제임스의 형처럼 보이는데(ㅎㅎ), 유대문학에 정통한 유대인 학자입니다. 그동안 (오래 전 경향이죠) 기독교를 유대교와 분리했던 해석이 주류였고, 그랬기에 특별히 유대인의 메시야는 "다윗 계열의 승리자" 이미지로만 가득했고, 기독교는 전혀 다른 "고난 받는 인자" 이미지로 상대화했었는데, 저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어쩌면, 저자는 말하지 않지만, 반셈족주의의 영향도 있을법 합니다.)
저자는 고대서아시아라는 다신론적 맥락에서, 고대 이스라엘은 비록 몇몇 기록에는 유일신 혹은 일신론을 말하지만, "(노인) 엘과 (젊은) 바알"이 일반적인 신에 대한 관념이었다고 말하면서, 사실 이스라엘의 고대 전승 역시 야훼가 바알의 자리를 대체하며 발전해왔다고 말합니다(45f; 저자는 F. M. Cross의 1973년 작품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ㅎㅎ 정말 놀라운 점은, 그러한 "엘과 야훼"라는 두 신성의 존재에 대해서, 고대 이스라엘의 문헌이 그 흔적을 남겨두고 있으며(물론 점차 이스라엘의 신앙전승은 야훼가 엘까지 차지하지요), 이러한 관점에서 제2성전시대의 묵시문학에 등장하는 '인자'를 "두 신성 중에 작은 자"로 등치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인자'는 (보편적인 생각과 달리) '신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ㅎㅎ Cross의 고전을 기억하면서, 왜 그런 생각을 못했었는지, 무릎을 치는 부분이 있더라구요)
그리고 '메시야'는 '인간됨'을 나타내는 왕인데, 2성전시대와 그 이후로, 앞에서 "승리하는 메시야"라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고난받는 공동체 혹은 개인으로 보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점에서, 초기 기독교가 자신들만의 "고난의 메시야 기독론"을 신학적으로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All of the ideas of Christ are old; the new is Jesus"(101). 이러한 혁신적인 주장은 계속됩니다(133f, 144, 150).
저자는, 예수가 지금까지 언급한 '인자'와 '메시야'라는 신학이 복잡하게 결합된 유대교의 세계안에서 활동했으며, 그렇기에 복음서에서 제시되는 예수의 모습은 '반유대주의적' 행동이 아니라, 전적으로 유대교적이며 특별히, 중앙정부(예루살렘)의 장로들의 토라해석(음식법)에 반대했던 "일종의 보수적 반동"(a conservative reaction)에 해당할 뿐이라고 말합니다(104, 참고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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