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모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아무 말에도 주의치 말자' 하나이다."(렘 18:18)
'나라의 붕괴'-(엄밀히 말해서 국민이 아닌 권력의 붕괴)-와 관련하여, 남유다의 과정을 살펴보면, 끊임없이 등장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트'입니다. 그것이 '법조세력'이고 '지성세력'이며, 마지막으로 '종교세력'입니다. 세개의 계층이 고대 이스라엘의 권위를 이루었던 피라미드였지요. Rodney R. Hutton은 Charisma and Authority in Israelite Society(1994: 176)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이 세개의 권력이 서로 떨어진 일종의 '삼권분립'이 아니었고, 서로 중복되거나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저자는 의도하지 않은, 순수 독자의 입장에서) '네 년/놈들이 당을 짜고 말아먹었다'는 것이지요.
남유다의 붕괴가, 역사의 큰 줄기로 볼 때, 세력을 확장하던 바벨론에 의해서 '기정사실화'되었던 것이 무리가 없겠으나, '역사란 어떤 의미에서 해석'이기에, 남유다의 신앙공동체의 역사해석에 따르면, 그 붕괴의 책임은 '남유다의 권력'이었고, 그것은 '삼위일체적' 권력이었음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은 '야훼신앙'을 표면적으로 비추었던 '신실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이지요. 안식일을 지키며 부지런히 '여호와의 전'을 찾았던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예레미야가 사람들을 만나려고,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예언했겠습니까(렘 7:2이하)! 그러나 실상, 그들은 여호와의 집 문을 나서자마자 자신의 '더 좋은 집'(암 3:12,15; 4:12; 미 2:1-2)에서 '자기 신앙'을 지켰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서 '하늘 황후를 위한 과자를 만들고 있다'라고 꾸짖습니다(렘 7:18). William G. Dever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건너온 여신 이쉬타르를 위한 과자라고 말하면서(W.G. Dever, Did God Have a Wife?2005: 234), 물론 토착적인 가나안 종교가 '출산과 양육'을 소망하는 고대이스라엘 아낙네의 소박한 민간신앙의 한 모습이었다고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메소포타미아'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할 때, '지나간 패왕' 아시리아의 영향력이 상당했음을 주목하게 합니다(왕하 16:10-16; 겔 8장-Patrick D. Miller는 겔8:14의 '담무스 제의'가 메소포타미아의 풍요신을 수용한 것이라고 말합니다(The Religion of Ancient Israel, 2000: 39). 왕하 23장에는 요시야의 종교개혁 가운데,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이 등장하는데(11절), 도상학의 대가인 Othmar Keel은 Gods, Goddesses, and Images of God(1998: 160, 343f)에서 아시리아의 천체숭배가 유다에 도입되었음을 '물질적으로' 확인시켜줍니다.
아시리아의 영향 가운데 특별히 여성의 종교에서 큰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 바로 전통적인 가나안과 새로운 아시리아가 혼합하면서(Meindert Dijkstra, Only one God?: Monotheism in Ancient Israel and the Veneration of the Goddess Asherah, 2001: 174-6), 실질적으로 예레미야가 주목했던 '왕후'를 중심으로 한 거짓 종교를 발견하게 됩니다. '왕후'는 단순하게 생물학적인 왕의 어머니가 아니라, 고대의 정치종교역학 안에서, 특별히 왕의 독립적인 힘이 올바르게 기능하지 못할 때 '발휘되는' 기형적 권력입니다.
요시야가 죽고, 남유다왕국의 계보는 망조를 보이게 되는데, 그 흐름이 렘 22-23장에서 잘 보입니다: 요시야 이후로 요시야의 아들 살룸(여호아아스, 왕하 23:31)은 이집트로 잡혀갑니다(렘 22:10-12). 이집트는 역시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엘리아김, 왕하 23:34)를 꼭두각시로 세우고, 여호야김은 10년동안 악행을 저지릅니다(렘 22:13-19. 여호야김이 이집트와 바벨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결국 열받은 바벨론이 군대를 이끌고 오는 중, 여호야김은 죽고 말았고,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는데, 바벨론이 순하게 조문만 할 수없었고, 괴씸죄로 여호야긴을 포로로 잡아가고(렘 22:24-30), 역시 그 대신으로 꼭두각시 왕인 '시드기야'를 세웁니다(왕하 24:17).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하는데, 바로 시드기야는 여호야긴의 아들이 아니고, 요시야의 아들이었던 겁니다. 여호야긴의 삼촌인 셈이지요. 왕의 계보가 그 정통성을 잃게 되는 순간인 겁니다. 당연히 여호야긴의 세력은, 특별히 '왕후' 혹은 외척세력은 지켜볼 수만은 없었을 겁니다. 그동안 자신들이 암암리에 흘려놓아서 성공시킨 '여신숭배' 이데올로기를 발휘시키면서, 그 뿌리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했던) 왕후의 존재를, 그 중요성을 꺼내는 것이지요(렘 44:15-19!). 사실 시드기야 역시 왕이 되었지만, 그가 제일 무서워했던 것은 야훼도 바벨론도 아니었고, 바로 '왕후'--그녀는 바벨론에 1차포로로 잡혔지만, 대다수의 남아있는 엘리트들은 왕의 정통성을 시드기야에 두지 않았고 왕후에게 충성했지요--은 였습니다(렘 13:18; 38:5,19).
한 나라의 정신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남유다의 붕괴과정을 지켜볼 때,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일단 권력집단은 자신들이 다룰 수 있는 것이라면, 고대이스라엘의 경우에서는 제사장,지혜자,선지자였는데, 이들이 왕실을 중심으로 특별히 '치맛바람'을 중심으로 뭉쳤고, 국가의 존립이 야훼신앙이 아니라 교묘한 이방신앙('바알리즘'이라 말해도...)이었습니다. '너희를 세운 것은 사실 우리였어, 고로 우리가 잘못되면 그 결과는 알지? 사실 너희도 우리와 같단다' (그 좋은 예가 렘 44:15-19입니다.) 권력가들에 의해 뿌리 깊이 심겨진 이데올로기의 힘은, 정말 위기시에 빛을 발하는 것인가요! 남유다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벨론에 잡혀간 여호야긴을 기다렸고, 시드기야("야훼는 나의 의로움")는 외톨이였네요.
여기에서 예레미야는 외칩니다. 그것은 (후대의 기독론적 해석에 의해 빛을 잃었지만) 명백하게 정치적인 발언이었습니다: "여호야긴! 너와 네 에미는 바벨론에서 죽을거야! 너는 대를 잇지 못할 거야!"(렘 22:24!, 26, 30) 대신에 야훼는 줄기가 아닌, '새로운 가지'를 만들것인데, 바로 그 사람은 '의로운 가지'가 될 것이고, 그가 공평과 정의를 행할 때, 유다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합니다(렘 23:5-6). 렘 22장부터 요시야 이후의 왕들의 목록을 볼 때(그 이름들이 살룸, 고니야라는 식으로 예레미야의 방식으로 썼다고 할 때, 더더욱!) 이어지는 렘 23장의 인물은 1차적으로 '시드기야'(야훼는 '의로움')임을 알게 됩니다(John J. Collins는 '의로운 가지'의 언어유희라고 말합니다(2004:340); M.Fishbane 1985: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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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며칠전에 읽었던 서울시장 후보 아내되는 사람의 놀라운 발언 말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엘리트들이 보여주었던 행태와 크게 다름이 없다고 (일단, 개인적으로) 판단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의 극점을 찍는 '여인들'의 세계관이 남성들의 그것과 비교할 때, 오히려 무서우면 무섭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공통점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드기야'에게 더 주목하게 되지요. 그에게 기대했던 예레미야의 마음을 읽는 것입니다. 야훼는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렘 23:5). 구체적인 '시도'는 노예를 해방시킨 것입니다(렘 34:8-22). 말씀을 꼼꼼히 읽어보면, "너희 선조가 듣지도 않고 귀 기울이지도 않았던" 일이었다고 합니다(14절). 노예해방은 말뿐이었지(출 21:신 15), 사실 어떤 왕도 노예해방을 실시했다고 나와있지 않습니다(그 반대는 많았지만, 암 2:6; 미 2:8-9). 그러나 결과적으로, 시드기야는 '왕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노예해방은 번복되었고, 궁극적으로 시드기야는 야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왕이 되고 맙니다. (이것을 예언의 실패로 보거나, '그러니까 렘 23장은 시드기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예언의 '현상'을 모르는 발언입니다.)
요즘들어, 특별히 이 시대의 '시드기야'가 다시 등장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왕후'를 무서워했던 시드기야가 아니라(렘 38:19), "야훼의 목소리를 청종하는"(렘 38:20) 시드기야 말입니다. 물질적 혹은 정치적 성공이 '의로움'으로 곡해되는 이 시대 속에서 진정한 의로움은,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으며(마 5:10) 종교의 모양보다 그 핵심에 가치를 두는(마 23:23) 사람들의 것임을 '기회가 주어졌을 때'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라의 붕괴'-(엄밀히 말해서 국민이 아닌 권력의 붕괴)-와 관련하여, 남유다의 과정을 살펴보면, 끊임없이 등장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트'입니다. 그것이 '법조세력'이고 '지성세력'이며, 마지막으로 '종교세력'입니다. 세개의 계층이 고대 이스라엘의 권위를 이루었던 피라미드였지요. Rodney R. Hutton은 Charisma and Authority in Israelite Society(1994: 176)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이 세개의 권력이 서로 떨어진 일종의 '삼권분립'이 아니었고, 서로 중복되거나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저자는 의도하지 않은, 순수 독자의 입장에서) '네 년/놈들이 당을 짜고 말아먹었다'는 것이지요.
남유다의 붕괴가, 역사의 큰 줄기로 볼 때, 세력을 확장하던 바벨론에 의해서 '기정사실화'되었던 것이 무리가 없겠으나, '역사란 어떤 의미에서 해석'이기에, 남유다의 신앙공동체의 역사해석에 따르면, 그 붕괴의 책임은 '남유다의 권력'이었고, 그것은 '삼위일체적' 권력이었음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은 '야훼신앙'을 표면적으로 비추었던 '신실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이지요. 안식일을 지키며 부지런히 '여호와의 전'을 찾았던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예레미야가 사람들을 만나려고,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예언했겠습니까(렘 7:2이하)! 그러나 실상, 그들은 여호와의 집 문을 나서자마자 자신의 '더 좋은 집'(암 3:12,15; 4:12; 미 2:1-2)에서 '자기 신앙'을 지켰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서 '하늘 황후를 위한 과자를 만들고 있다'라고 꾸짖습니다(렘 7:18). William G. Dever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건너온 여신 이쉬타르를 위한 과자라고 말하면서(W.G. Dever, Did God Have a Wife?2005: 234), 물론 토착적인 가나안 종교가 '출산과 양육'을 소망하는 고대이스라엘 아낙네의 소박한 민간신앙의 한 모습이었다고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메소포타미아'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할 때, '지나간 패왕' 아시리아의 영향력이 상당했음을 주목하게 합니다(왕하 16:10-16; 겔 8장-Patrick D. Miller는 겔8:14의 '담무스 제의'가 메소포타미아의 풍요신을 수용한 것이라고 말합니다(The Religion of Ancient Israel, 2000: 39). 왕하 23장에는 요시야의 종교개혁 가운데,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이 등장하는데(11절), 도상학의 대가인 Othmar Keel은 Gods, Goddesses, and Images of God(1998: 160, 343f)에서 아시리아의 천체숭배가 유다에 도입되었음을 '물질적으로' 확인시켜줍니다.
아시리아의 영향 가운데 특별히 여성의 종교에서 큰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 바로 전통적인 가나안과 새로운 아시리아가 혼합하면서(Meindert Dijkstra, Only one God?: Monotheism in Ancient Israel and the Veneration of the Goddess Asherah, 2001: 174-6), 실질적으로 예레미야가 주목했던 '왕후'를 중심으로 한 거짓 종교를 발견하게 됩니다. '왕후'는 단순하게 생물학적인 왕의 어머니가 아니라, 고대의 정치종교역학 안에서, 특별히 왕의 독립적인 힘이 올바르게 기능하지 못할 때 '발휘되는' 기형적 권력입니다.
요시야가 죽고, 남유다왕국의 계보는 망조를 보이게 되는데, 그 흐름이 렘 22-23장에서 잘 보입니다: 요시야 이후로 요시야의 아들 살룸(여호아아스, 왕하 23:31)은 이집트로 잡혀갑니다(렘 22:10-12). 이집트는 역시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엘리아김, 왕하 23:34)를 꼭두각시로 세우고, 여호야김은 10년동안 악행을 저지릅니다(렘 22:13-19. 여호야김이 이집트와 바벨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결국 열받은 바벨론이 군대를 이끌고 오는 중, 여호야김은 죽고 말았고,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는데, 바벨론이 순하게 조문만 할 수없었고, 괴씸죄로 여호야긴을 포로로 잡아가고(렘 22:24-30), 역시 그 대신으로 꼭두각시 왕인 '시드기야'를 세웁니다(왕하 24:17).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하는데, 바로 시드기야는 여호야긴의 아들이 아니고, 요시야의 아들이었던 겁니다. 여호야긴의 삼촌인 셈이지요. 왕의 계보가 그 정통성을 잃게 되는 순간인 겁니다. 당연히 여호야긴의 세력은, 특별히 '왕후' 혹은 외척세력은 지켜볼 수만은 없었을 겁니다. 그동안 자신들이 암암리에 흘려놓아서 성공시킨 '여신숭배' 이데올로기를 발휘시키면서, 그 뿌리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했던) 왕후의 존재를, 그 중요성을 꺼내는 것이지요(렘 44:15-19!). 사실 시드기야 역시 왕이 되었지만, 그가 제일 무서워했던 것은 야훼도 바벨론도 아니었고, 바로 '왕후'--그녀는 바벨론에 1차포로로 잡혔지만, 대다수의 남아있는 엘리트들은 왕의 정통성을 시드기야에 두지 않았고 왕후에게 충성했지요--은 였습니다(렘 13:18; 38:5,19).
한 나라의 정신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남유다의 붕괴과정을 지켜볼 때,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일단 권력집단은 자신들이 다룰 수 있는 것이라면, 고대이스라엘의 경우에서는 제사장,지혜자,선지자였는데, 이들이 왕실을 중심으로 특별히 '치맛바람'을 중심으로 뭉쳤고, 국가의 존립이 야훼신앙이 아니라 교묘한 이방신앙('바알리즘'이라 말해도...)이었습니다. '너희를 세운 것은 사실 우리였어, 고로 우리가 잘못되면 그 결과는 알지? 사실 너희도 우리와 같단다' (그 좋은 예가 렘 44:15-19입니다.) 권력가들에 의해 뿌리 깊이 심겨진 이데올로기의 힘은, 정말 위기시에 빛을 발하는 것인가요! 남유다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벨론에 잡혀간 여호야긴을 기다렸고, 시드기야("야훼는 나의 의로움")는 외톨이였네요.
여기에서 예레미야는 외칩니다. 그것은 (후대의 기독론적 해석에 의해 빛을 잃었지만) 명백하게 정치적인 발언이었습니다: "여호야긴! 너와 네 에미는 바벨론에서 죽을거야! 너는 대를 잇지 못할 거야!"(렘 22:24!, 26, 30) 대신에 야훼는 줄기가 아닌, '새로운 가지'를 만들것인데, 바로 그 사람은 '의로운 가지'가 될 것이고, 그가 공평과 정의를 행할 때, 유다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합니다(렘 23:5-6). 렘 22장부터 요시야 이후의 왕들의 목록을 볼 때(그 이름들이 살룸, 고니야라는 식으로 예레미야의 방식으로 썼다고 할 때, 더더욱!) 이어지는 렘 23장의 인물은 1차적으로 '시드기야'(야훼는 '의로움')임을 알게 됩니다(John J. Collins는 '의로운 가지'의 언어유희라고 말합니다(2004:340); M.Fishbane 1985: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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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며칠전에 읽었던 서울시장 후보 아내되는 사람의 놀라운 발언 말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엘리트들이 보여주었던 행태와 크게 다름이 없다고 (일단, 개인적으로) 판단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의 극점을 찍는 '여인들'의 세계관이 남성들의 그것과 비교할 때, 오히려 무서우면 무섭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공통점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드기야'에게 더 주목하게 되지요. 그에게 기대했던 예레미야의 마음을 읽는 것입니다. 야훼는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렘 23:5). 구체적인 '시도'는 노예를 해방시킨 것입니다(렘 34:8-22). 말씀을 꼼꼼히 읽어보면, "너희 선조가 듣지도 않고 귀 기울이지도 않았던" 일이었다고 합니다(14절). 노예해방은 말뿐이었지(출 21:신 15), 사실 어떤 왕도 노예해방을 실시했다고 나와있지 않습니다(그 반대는 많았지만, 암 2:6; 미 2:8-9). 그러나 결과적으로, 시드기야는 '왕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노예해방은 번복되었고, 궁극적으로 시드기야는 야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왕이 되고 맙니다. (이것을 예언의 실패로 보거나, '그러니까 렘 23장은 시드기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예언의 '현상'을 모르는 발언입니다.)
요즘들어, 특별히 이 시대의 '시드기야'가 다시 등장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왕후'를 무서워했던 시드기야가 아니라(렘 38:19), "야훼의 목소리를 청종하는"(렘 38:20) 시드기야 말입니다. 물질적 혹은 정치적 성공이 '의로움'으로 곡해되는 이 시대 속에서 진정한 의로움은,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으며(마 5:10) 종교의 모양보다 그 핵심에 가치를 두는(마 23:23) 사람들의 것임을 '기회가 주어졌을 때'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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