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aching/[설교: 얻어 먹은 주의 말씀]

[제2이사야서 강해-2] 변화를 기대하라(사 40:3-5)

진실과열정 2010. 7. 15. 16:36

제2이사야서 강해(2)

 

본문) 이사야 40: 3-5

제목) 변화를 기대하라!

 

 

1. 말씀 앞에서

 

    우리는 1-2절에서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이사야 40장이 39장과 시간적으로 200년이나 멀리 떨어진 시대로, 찬란했던 다윗의 왕국이 망해버리고, 바벨론이란 강대국에 포로가 되어서 머나먼 이국땅에서 70년간 사로잡혀 살았지요. 이스라엘의 삶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집과 이스라엘의 삶의 터전이 사라집니다. 이스라엘의 말과 이스라엘의 생각이 사라집니다. 이스라엘의 정신세계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리고 모세를 통해서 그리고 다윗과 엘리야 수많은 신앙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의 정체성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올스톱되어 버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위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희미해질 때 말입니다. 선명했던 하나님의 꿈이 언젠가부터 흐릿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서는 대부분의 경우 그 원인을 우리 인간의 범죄함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지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 전 생애가 삐걱거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성경은 하나님의 놀라운 개입을 말씀합니다. 인류 절체절명의 위기가 몇 번 있었습니다. 아마 대홍수 사건을 들 수 있죠. 사람이 범죄하자 하나님은 노하셨고, 하늘과 땅 아래의 물이 모두 터져 나와, 모든 생명체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살아남은 사람이 있지요. 그가 노아입니다. 그 이름의 뜻이 위로자입니다.

    이스라엘이 히스기야와 요시야 라는 훌륭한 왕이 섬기고 있을 때, 아수르라는 당시의 패권국이 무자비하게 공격해 들어왔습니다. 이 앗수르는 궤휼과 강포가 가득하고 늑탈이 떠나지 않는 다고 성경은 말씀하였습니다(나 3:1). 그러한 강대국으로 이스라엘은 또 한번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주변의 모든 나라는, 북이스라엘은 물론, 모두 멸망해버리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풍전등화의 상황 속에서 개입하시고 구원을 주십니다. 그러한 예언의 약속을 주신 말씀이 바로 나훔입니다. (위로자)입니다.

    느헤미야 역시 그 이름의 뜻이, ‘야웨(여호와)가 나의 위로이다’입니다. 하나님께서 무너진 이스라엘의 성벽을 다시 세우시면서, 느헤미야를 지도자로 내세우신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통찰력을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의 삶이 삐걱거릴 때, 그리고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해야만 될 때, 그 시작점으로 언제나 하나님을 제시합니다. 하나님 만이 우리의 삶을 온전하게 되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말씀 안에서

 

  약속된 영광: 보리라!

 

3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4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수백킬로 떨어진 머나먼 이국땅 바벨론에서 포로/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는 컴백홈!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바벨론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그 길은 만만치 않은 험한 길입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도전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대로가 열렸으니, 그길을 평탄케하라!” “나의 택한 이스라엘이 이제 위로를 받고, 나의 산, 시온에 다시 오르게 될 것이니, 아무도 막을 수가 없도다!” “이제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라!”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라! 이 영광은, 일차적으로, 수백킬로 떨어진 바벨론이라는 나라에서 이스라엘 고향으로 가는 ‘시온의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광은 다시 세워질 이스라엘의 성전인 것이지요. 멀리 포로된 죄의 백성들, 세상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로의 ‘대로’(초고속도로: Super-Highway)가 열리는 영광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단의 자녀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의 ‘대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열려졌다는 놀라운 선포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사방이 막혀 있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시작하시면, 곧 대로가 열리게 됩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온전히 사로잡히게 될 때, 우리 교회로 들어오는 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살아있는 교회를 향해서, 시온의 길이, 탄탄대로가 뚤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을 막았던 골짜기와 산이 사라지게 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예배당에 수천명의 잃어버린 영혼들이 회복의 자리에 초청을 받아, 복음을 소유하고, 하나님 나라의 참된 백성으로 살아가는 영광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동그라미를 쳐보십시오. 바로 변화입니다: 3절에, 평탄입니다. 곧게하다입니다. 사막엔 길이 없지요. 그러나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대로(고속도로)가 곧게 세워질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평탄’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 교회, 우리 인생의 길에 이러한 곧게 세워진 탄탄대로가 세워질 것을 믿읍시다. 4절에, ‘돋우어지며’입니다. 이는 깊이 파인 골짜기가 메워진다는 의미입니다. 깊이 파인 곳은 높이 올라간다는 말이지요. 우리 교회, 우리 인생의 깊은 골짜기가 메워질 것을 믿읍시다! 계속해서 4절에 ‘낮아지며’입니다. 산이 있으면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어떠한 산이건 길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높이 솟은 산도 반대로 낮아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대로를 막는 그 무엇이건 상관없이 평탄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막는 세상의 권세가 우리를 더 이상 두렵게 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권세도 주앞에서 낮아집니다! 4절에 ‘평탄케되며’입니다. 산에 농사를 짓는다고 층층이 높이가 다른 땅을 만들게 됩니다. 그러한 땅을 고르지 않는 땅이라고 말합니다. 사소하게 보일지라도 그러한 세밀한 차이조차 하나님은 완벽하게 평탄케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문턱에 걸려 넘어질까봐 부모가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문턱을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사소한 문제까지도 하나님이 해결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4절 ‘평지가 된다’입니다.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거친 곳이 반반한 평지가 됩니다. 돌하나도 우리를 넘어뜨리지 않는, 말그대로 전에는 돌맹이가 수두룩한 곳에서 축구했다고 한다면, 이제는 월드컵 경기장에 버금가는 최고의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3. 말씀 속에서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변화의 약속입니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변화될 것을 믿음으로 찬양합시다! 전에는 내 앞에 길이 없는 사막과 같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대로가 열리게 됨을 믿읍시다!

    우리 앞에 산적한 문제들이 하나님의 손길로 해결될 것을 날마다 기대하며 살아갑시다. 우리의 고민과 눈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되는 역사를 봅시다. 주님이 약속하신 것처럼, 야웨의 영광이 온 땅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야웨께서 입을 열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우리말 성경은 5절에 ‘대저’라는 약간 모호한 말로 번역을 해놓았는데, 이 말은 본래 히브리어 원어로, ‘왜냐하면’입니다. 4-5절의 변화가 가능한 유일한 이유는, 그것이 바로 야웨께서 입을 열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0-55장의 이 위대한 영광의 말씀은, 그 시작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영광의 약속인 것처럼, 그 마지막도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신실함을 보증하고 있습니다. 55장 11절에,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이사야 40-55장은 하나님의 입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확실함을 선언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기대하며 삽시다! 그 말씀이 우리를 살리며, 우리를 일으키며, 우리의 생각과 태도를 역동적으로 바꾸어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붙잡을 때, 변화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여러분이 서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