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역사 세미나(2009.5.19)
담당교수: 우택주 교수
발표자: 양지웅(Ph.D. 구약학 3학기)
T.L. Thompson, 역사적이며 기독교적인 신앙(1974: 326-30)
원제: "Historical and Christian Faith," V. Philips Long ed., Israel's Past in Present Research: Essays on Ancient Israelite Historiography (SBTS 7; Winnona Lake: Eisenbrauns, 1999), 480-4.
Thomas L. Thompson(1939-)은 덴마크의 코펜하겐 대학에서 구약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성서와 고고학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한바 있으며, 그 결과물로는 The Historicity of the Patriarchal Narratives: The Quest for the Historical Abraham(1974, 2002); The Origin Tradition of Ancient Israel(1987); The Early History of the Israelite People from the Written and Archaeological Sources(1993); The Mythic Past: Biblical Archaeology and the Myth of Israel(1999); The Messiah Myth: The Near Eastern Roots of Jesus and David(2005) 등 이 있다. 그는 SJOT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통하여, 성서적 이스라엘의 역사가 ‘과학적 역사’로써 받아들여야할 대상이 아니라, 민간전승(folkloristic in essence, 1993)으로 또는 반복적(reiteration, 1999) 모티프의 신화로 읽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한다. 그는 Philip R. Davies와 Niels Peter Lemche, Keith Whitelam과 함께 극소주의적 입장을 대표하고 있는 학자이기도 하다. 이 글은 톰슨의 1974년 글의 최종 결론 부분에 해당한다.
이 책에서 톰슨은 올브라이트에 의해서 주장되어진 소위 “아모리가설”의 허구성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또한 누지문헌의 발견으로 촉발된 비교문헌학적인 아브라함의 재구성 역시 반박한다.) 이 책을 크게 나누면,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부분은(2-8장) 문헌적인 자료와 고고학적인 자료의 재고를 통해서, “아모리가설”-중기청동기와 후기청동기시대 사이에 남서부메소포타미아의 ‘아모리인’들이 하란을 거쳐, 가나안에 입성하였으며, 이집트에까지 영향을 끼쳤다-의 허구성을 공격한다. 이후 두 번째 부분은(9-11장) 성서 내러티브에 표현되어 있는 아브라함 관련 구절을 분석한다. 여기에서는 특별히 고든(C. Gordon)의 연구를 주로 반박한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1) 중기 청동기와 후기 청동기 사이에 대규모의 파괴가 나타났다는 것을 해명하면서 제시되었던, “아모리가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해석한 것은 정보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서부셈족의 이름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것이기에(특별히 아브라함, 야곱), 그것이 아브라함의 역사성을 입증할 수 없으며, 남부 메소포타미아로부터 대규모의 이동을 말하지만, 실상은 가나안 내부인으로, 더 가깝게 말하자면, 북부 아람 사막에서 기원한 것이 더 가깝다. 이집트어('emw) 역시 아모리(Amurru)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집트 사회계층으로써 ‘부머랭 전사(boomerang thrower)’일 것이며, 아모리인들의 이집트 침략이 아니라, 사실 기근 등으로 인한 국내적 문제일 뿐이다. 고고학적으로 제시되는 문화적 재구성 역시 유목민(아모리) 문화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정착민들의 문화 유물이 많다. 따라서 올브라이트의 “아브라함은 일종의 대상(caravan trade)이다”는 주장은 틀리며, 하비루를 그런 측면으로 이해하는 것 역시 옳지 않다. 국제무역이라는 것은 당시에 희귀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아비루의 맥락은 지역의 산적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이렇게 기원전 2000년 어간의 아브라함의 이주는 문헌학적으로, 고고학적으로 역사성이 부정된다 하겠다. (2) 누지문헌의 발견으로 기원전 15-14세기의 문화에 살았던 아브라함으로 제시되기도 하였으나(C. Gordon), 무엇보다도 누지문헌의 규칙들은 고대근동의 여러 시대를 거쳐서 나타나는 것이며, 누지문헌의 방대한 내용들에 비해서 상당히 적은 부분만이 아브라함의 경우에 해당될 뿐이다. (3) 따라서 톰슨은 하나의 대안으로 아브라함 전승의 배경을 J로 접근한다. 특별히 아브라함과 관련된 본문들은 하나같이 철기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특별히 벧엘, 아이, 브엘세바). |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다’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9)
40년도 더 된 옛날에, 쿠어트 갈링(Kurt Galling)은 위의 신약 구절을 언급하기를, 이 구절이 이스라엘 신앙의 신학적인 의미가 구약 사건의 역사 혹은 역사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전통에 있으며, 이들 전통이 초래하는 바를 이해하는데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서, 많은 구약 학자들은 역사야 말로 이스라엘의 핵심 메시지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초기 전승의 역사성을 받아들이는 것, 특별히 성서에서 말하는 족장에 관한 것들의 역사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며, 심지어는 부활을 믿는 것이 족장들에 대한 약속의 역사적 사실성에 직접적으로 달려 있다는 점을 점차 믿고 있는 추세이다. 롤랑 드 보(Roland de Vaux)는 몇 번이고 단언하기를, 바로 이러한 성서적 전승들의 역사적 기초를 과학적으로 세워가는 과업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다고 하였는데, “왜냐하면 만약 이스라엘의 역사적 신앙이 역사에 기초하고 있는 않는다면, 그러한 신앙은 잘못되었고, 결국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로 틀린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어서 드 보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만약 신앙이 살아남으려면, “종교적인 역사”와 “객관적인 역사” 사이의 긴밀한 관계가 반드시 유지되어야만 한다. 그는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역사”에 대한 역사성을 거부하는 것은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인데, 궁극적인 차원에서, 신앙 자체의 기반을 흔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유사한 방식으로, 조지 에르네스트 라이트(George Ernest Wright)는 믿기를, 기독교적 신앙은 궁극적으로 역사성에 대한 질문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성서적 신앙 안에서, 모든 것은 핵심적인 사건들이 실제적으로 발생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의 사건들 속에서 활동하는 분으로써 나타난다. 실로, 상황은 곧 분명해진다. 즉, 이러한 “성서적 신앙”이 기반하고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성서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에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성서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은 단지 성서가 역사적 사건들을 바꿔 말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해당될 뿐이다. 이러한 신-정통주의(neo-orthodoxy)는 종종 그렇다고 비판받아오긴 했지만, 전혀 “성서주의”도 아니며 “근본주의”도 아니다. 사실, 여기에는 말씀에 대한 그 어떠한 신학도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이신론적이며 동시에 실증론적인 역사주의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신-정통주의는] 성서로써나 역사로써도 전혀 찾을 수 없는, 그러한 “성서적 역사”의 재구성을 통해서 “실재적인 계시”를 찾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들은 단지 성서 이야기의 배후에 존재했던 사건이 발견될 수 있다고만 한다면 “실제적인 계시”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한 사람들보다는 덜 예민한 이들에게, 다시 말해서 참으로 역사를 신중하게 취급하려는 사람들과 같은 이들에게, 신-정통주의는 성서 전승을 신앙의 본질로 조금이라도 수용하려는 견해에 대하여 극히 심각한 장벽을 세워놓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고고학”이 족장 전승에 대한 단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라도 그것의 역사성[즉, 이야기 배후에 존재했던 사건]을 증명해낼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어떠한 전승들도 있을 법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기원전 2천년기의 팔레스타인 역사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기초로 해서, 그리고 창세기라는 문학적 전승의 형성에 관해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들의 기초로 할 때, 그 어떠한 그와 같은 역사성은, 창세기의 족장들에 관하여 학자들이 다루거나 또한 대중적인 저작들을 통해서 일상적으로 전해지는 것처럼, 좀처럼 가능하지 않으며, 전적으로 있을 법하지 않다.
역사에 대한 신중한 평가는 - 과거에 사용되었던 문학적 형식에서와 마찬가지로 - 구약의 신학적 의미를 확실히 명료하게 하는데 본질적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이 방식으로만 그것이 의미했던 바로써의 구약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이해와, 여기에 동반하는 방법인 역사적이며 고고학적인 연구는 기독교식의 신앙 서약[헌신]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되지 못하였다. 신앙 서약[헌신]과 관련하여, 문제는 우리가 역사를 신중하게 취급하고 있는가에 달려있지 않는다. 성서가 신앙의 참된 근원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물음은 성서의 역사적 만족도라는 기준에 따라 좌우되지는 않을 것이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낯선 문학적 형식들과, 그리고 역사적 실증주의에 반대하는 철학적 전제들을, 진리의 매체로써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에 달려있다 하겠다; 오직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성서를 신중하게 다룰 수 있게 된다.
만약 우리가 어떠한 “성서적 신학”을 신중하게 주장한다고 하면, 그러한 신앙이 어떠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시작 지점은 반드시 성서이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성서가 역사적 아브라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인식은 우리를 이끌어서 성서적 신앙의 이해를 향한 진일보한 전진을 가능하게 해준다. 우리가 믿고 있었던 것이 우리가 반드시 믿었어야만 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배운다고 해서 우리의 신앙이 상실되는 것은 아니다.
구원의 역사(구속사)는 역사가들의 연구주제로써 열려있는, 구원의 사건들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이 아니다. 구원의 역사는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것은 그것 자체의 역사적 정황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문학적 형식일 뿐이다. 사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신앙이 역사적 사건에 기초한 신앙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에는 전혀 역사적인 신앙이 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이스라엘의 신앙]은 역사란 범위 안에서의 신앙인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역사의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신앙이며, 그런 만큼 그것은 역사적 경험에 대한 회상이라는 특성을 보유한 미래에 자유와 개방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나름 정당한 신앙이라고 하겠는데, 이는 지난 과거의 사건들이라는 증거에 의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전승은 단지 신앙이 표현된 경우에 한해서만 충족될 수 있기 때문에, 미래의 약속이라는 주장에 의해서라고 하겠다. 약속은 그 자체로 현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서 나온다. 여기에서 현재란 과거에 기인한 것이며, 그것을 의미 있는 대상으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의 표현은 과거를 약속으로 이해하는 역사적인 형식 안에서 그 응집됨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그 자체로 역사를 쓰는 것이 아니며, 더군다나 그것이 실제로 과거에 대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소망에 관한 것이다. 현재의 경험에서부터, 과거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 출현한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들은 전형적으로 약속과 성취라는 용어를 통해서 표출된다. 성취로써의 현재를 심사숙고함으로써, 약속으로서의 과거를 재창조한다. 그럼으로써 이 심사숙고는 그 자체로 미래의 소망으로써의 약속이 되는 셈 이다. 역사적이며 그러므로 역사적-비평적 학문에 상당히 열려있는 것들은 사건들과 역사적인 상황들로,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의 과거 전승은 약속으로써의 의미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이해가 있기 전에, 전승은 신앙을 이해하는 데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 하겠다.
계시를 역사적 사건 자체로 이해하려는, 그러한 신학자들의 저작물에서 암시되고 있는 것은, 계시란 말이나 언어에 있지 않고, 또한 역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경험에도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오히려 그들에게는 말씀의 신학이라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해야 할 정도이다; 그들은 계시를 이해하기를, 신에 의해서 역사 속에서 간섭된 일련의 것들로, 여기에서 행위들은 여러 세대를 거쳐서 기록되고 전수되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하나님의 활동은 부활의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자면, 구약은 그 보도의 정확성에 따라서 가치가 생기며, 그 신학적인 의의는 주로 예비적인 것으로써 여겨질 뿐이다. 오랜 법률(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활동은 새로운 [법률](신약)에서 성취된다는 약속을 통해서 확신을 가져다준다. 역사성의 문제가 어떻게 그러한 신앙의 인증 안에서 반드시 결정적인 의미가 되어야만 하는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말하자면 이렇다: 만약 보도되었던 이들 활동들이 발생하지 않았더라고 한다면, 실재로 역사적 약속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약속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성취라는 것도 나올 수 없게 된다. 신학적인 방침은 과거를 향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현재적인 믿음의 인증으로 이해되는 것은 바로 과거의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독교적인 견해가, 그 자체로 성서의 역사적 견해를 모방하는 동안, 성서 그 자체를 신앙의 본질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은 좀처럼 우연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한 신학적 구조는 기독교 신앙에게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말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기독교를 아무렇게나 믿어도 되는 것으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신앙을 역사로 나타내 보임으로써, 그들은 역사적 비평이라는 규범에 따라 그것에 합법성을 부여하고 말았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이스라엘에게 내려진 계시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하면서, 그들은 역사적 학문 분야에 최종 결정권을 주어서 성서 전승들 가운데 무엇이 계시된 것이고 무엇이 계시된 것이 아닌지를 구별하도록 만들기까지 하였다. 구약의 대부분에서 역사성의 존재를 거부하는 일은, 비록 그들에게는 역사적인 것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일종의 신앙에 대한 도전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계시를 사건과 동일시하려는 그들의 입장에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세기의 족장들에게 주어진 약속에 관한 이야기들은 역사적인 것이 아니며, 또한 그것들이 역사적인 것으로 의도되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오히려 이스라엘에 관하여 그리고 그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관계에 관하여 이미 역사적인 것이라고 확정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해야겠다. 이것은 그들의 시대에 합법적인 형태로 주어진 것이며, 그것의 진실됨은 그 사실됨에 있지 않으며, 그 역사성에도 있지 않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경험했던 실제를 표현하는 그들의 능력에서 보여지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서로 공유될 수 있는 정도까지, 그것은 이스라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신앙의 계시인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말씀 안에서 이러한 의사소통을 통하여 나타난다. 즉, 이스라엘의 경험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으며, 이스라엘의 신앙이 우리의 신앙이 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계시를 통해서 우리는 인간 경험의 실체와 진리를 관통해서 바라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경험이란 것은 이미 그것을 표현하고 있는 역사적 형식을 초월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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