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닮기 프로젝트(2): 예수님이 목표다!
예수닮기 프로젝트(2) - 예수님이 목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29, 개역개정)
설득의 홍수
우리는 광고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집에 누워 드라마라도 보려고 하면, 수없이 많은 광고가 끝도 없이 나옵니다. 이 우유를 먹이면 당신의 아이는 아인슈타인처럼 똑똑하게 될 것이다. 이 차를 타면 당신은 대한민국의 1% 안에 드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셈이다. 이 아파트에 살게 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정작 드라마 하나 기다리면서, 수없이 많은 광고들은 우리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바로 ‘나를 선택하라’고 말입니다. 심지어 매일 마다 집 문에 다닥다닥 붙여있는 광고 전단지들까지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정말로 광고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광고를 달리 말해서 설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름 아닌 설득인 셈입니다. ‘이걸 사십시오! 절대 손해보는 거 아닙니다!’ 아마도 여러분 대부분은 약장수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재주부리는 사람들이 신기한 기술들을 부려서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으면, 약장수들이 만병통치약이라고 하면서 ‘물 건너온 신비의 명약이니 딱 한번만 먹어봐!’라고 합니다. 아마도 약장수야말로 설득의 대가가 아닐까요? 이렇게 약장수부터 시작해서 전단지와 텔레비전의 광고까지, 참으로 많은 설득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설득
왜 이런 설득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냐면,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 예수님이 지금 ‘설득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사람들에게 설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게 배우라”고 말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말씀은 상당히 어려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당시의 복잡했던 유대사회를 잘 알아야하고,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깊은 의도를 파악해야 깨달을 수 있는, 아주 심오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차근차근 말씀을 풀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예수님이 ‘내게 배우라’라고 하셨을 때, 이 말은 단순히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겠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은 원어로 ‘나의 제자가 되어라’라는 뜻입니다. μάθετε άπ ́ έμου (마떼테 아페무): 여러 번 따라해 보기.
마태는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하면서 무엇보다도 ‘제자와 가르침’에 대해서 집중합니다. 그러고 보니깐, 마태복음이 어떻게 끝나냐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게 배우라’라고 되어있는 마떼테 아페무, 즉 ‘나의 제자가 되어라’에서 나온 단어가 예수님이 지상명령으로 주신 ‘제자를 삼아’와 같은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내게 배우라’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라’라는 것입니다.
제자의 의미
이제 보다 더 깊이 말씀을 풀어보도록 합시다. 그렇다면, ‘제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그분처럼 생각하고, 그분처럼 행동하며, 그분처럼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머리에 지식을 집어넣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아! 작은 예수가 되어라!’라고 설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잠깐 멈춰봅시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설득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제가 처음에 말씀 드린 것처럼, 광고의 홍수 즉 설득의 홍수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지금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설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사람들은 이미 이런 말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마치 약장수가 왔다 가면, 또 새로운 약장수가 찾아오는 것처럼, 예수님이 살던 시대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또 다른 약장수라고 생각하기 쉬웠습니다.
참 메시야
마태복음 11장 3절을 봅시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이 짧은 말씀이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지 않습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산상수훈을 마치신 예수님은 8장에서 9장까지 10가지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리고 10장에서는 열두 제자들을 선택해서 전도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그냥 단순하게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들었던 것처럼, 이제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으로부터 새계명을 듣는 것입니다(마 5-7장). 그리고 애굽에 대한 10번의 재앙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진정한 권능을 가진 참된 신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처럼, 이제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으로부터 10번의 기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마 8-9장). 그리고 최종적으로 가나안에 입성한 12지파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웠던 것처럼, 이제 예수님이 선택한 12제자들이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마 10장). 정리하면,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이 보내신 바로 그 분, ‘메시야’라는 것을 마태는 아주 치밀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또 하나의 약장수’로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태복음 11장 전체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론적으로 11장 29절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여기에는 더 풀어드려야 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필이면, 왜 나의 멍에를 매라고 했고, 28절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이라고 한 것에 대해서 아주 깊은 뜻이 있지만,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말씀을 풀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풀어드리면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잡으면 바로 이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의 결론은 나와있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30절의 말씀을 마친 후에, 사람들의 반응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태복음은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참된 메시야라는 것이 산상수훈과 10번의 기적행함과 또 열두제자들의 전도여행을 통해서 증명되었는데, 아직도 선택하지 않았는가? 아직도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겠는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단순하게 예수님에게서 지식적인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며 예수님처럼 살아야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바로 오늘의 이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설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하니
말씀을 정리하며,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봅시다.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을 다양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야호! 이제 나는 물위를 걸을 수 있겠다!’라고 할지 모르며, 또 어떤 사람은 ‘병자들을 내게 데리고 와라! 내가 다 치료하겠다!’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것은 과장되었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을 우리들의 교만을 조금 부풀렸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은 ‘능력 행함’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은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고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올 한해 예수님의 마음을 닮는 자가 되도록 합시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닮도록 합시다.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았던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후서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세워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 위에는 덕을 세워야 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의 믿음 위에는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인 ‘덕’을 세워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