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Reopening the Case of the Suspiciously Suspended Nun in Judges 18:30 [Steve Weitzman]

진실과열정 2006. 5. 12. 20:00
 

Steve Weitzman, “Reopening the Case of the Suspiciously Suspended Nun in Judges 18:30,” CBQ 61 (1999): 448-60.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신 신상을 세웠고, 모세[/므낫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서기관의 의도적인 수정으로 여겨지는 본문은 원래 ‘모세’로 읽어야 옳다. 그렇다면, ‘눈’이 첨가되어 ‘므낫세’가 되었는데, 이 ‘므낫세’는 누구인가?


      히스기야의 아들로 예루살렘 성전에 우상을 들여온 사람인가?(왕하 21:1-18) 성서내적 목록에 의하면, 요셉의 아들, 히스기야의 아들, 이방 아내를 둔 사람들(스 10:30-33). 성서외적 자료에 의하면, 유딧의 남편(토빗 14.10). 하지만, 본문 자체는 요나단이 ‘자신이 만든 신상’을 성소에 두었다고 말하고 있다.

      성서외적으로, 요세푸스에 따르면 그리심 산의 사마리아 성전의 초대 대제사장의 이름이 바로 므낫세이다(산발랏의 딸과의 결혼을 포기하지 못하고 사마리아로 가서 거기서 대제사장을 맡았다). 요세푸스의 역사성에 대한 논란을 뒤로하고, 유대인의 경향에 의하면 기원전 2세기에 있었던 반-사마리아 움직임을 보였던 유대인들이 므낫세에 대한 악감정을 볼 수 있다. 즉, 므낫세의 배교가 삿 17-18장의 요나단의 이야기와 매우 닮았다는 점이다.

      에브라임 산지는 사마리아 성전이 있는 곳이며, 특별히 세겜이 성지이다(수 21:21; 대상 6:67). 그렇다면, נ(nun)이 붙은 이유는 모세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유대인 배역자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의도로 보여진다(Moore).

      물론, 여기에는 연대기적인 문제가 있다. 그러나 당시의 유대인들은 성서를 ‘모형론적’으로 읽어왔기 때문에(쿰란문헌[4QpNah 3-4]은 므낫세 족속을 동시대의 악당들과 연관시키고 있다, 제2성전 시대의 수정으로 보기에 큰 문제는 없다.


      사마리아와 유다 성전의 이데올로기적인 자료임을 드러낸다(히브리 성서의 반-사마리아적 이데올로기). 초기의 서기관들은 자신의 성전이 우수함을 알리기 위해서 실제로 성서 구절을 수정했다: 사 19:18는 ‘태양의 성읍סרחה ריע’(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로, 여기에 유대인 성전이 있었다)을 ‘멸망의 성읍סרהה ריע’로 고쳤다. 사마리아의 서기관들은 모세가 그리심 산에서 예배드릴 것을 명령했다고 고쳤다(출 20:17[SamPen]은 신 11:29-30; 27:2b-3a, 4-7을 섞었다). 한편, “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들은 아말렉에 뿌리박힌 자들이요”(삿 5:14)에서도 LXX은 아말렉(קלמע)을 ‘계곡קמע’으로 기록하고 있다.2) 어떤 LXX은 사마리아의 성소였던 세겜을 비하하기 위해서 ‘실로’로 바꾸고 있다(수 24:1, 25). 결국, 서기관에게 있어서 권위있는 종교문서의 주요한 관심은 자신의 성소의 우위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시락 50:25-26은 신 32:21을 인용하면서 ‘세겜’을 명시한다. 성서는 서기관들의 무기였다.


      이는 반대로 사마리아 측에서 그리심의 제의 합법화를 위한 사사기의 수정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형태의 자료들은 유대인에 의한 기록들이다. 사마리아인들이 사사기서를 인식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후대의 사마리아 문학에서 매우 이전 시기의 사마리아인들이 사사시대를 어떻게 보았었는지에 대한 몇 개의 작은 전승들이 보존하고 있었다고 추측해볼 수는 있다.

      「사마리아 역대기」에 따르면(이 책은 요세푸스를 반대-모델로 잡았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에서 엘리가 떨어져 나오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유대교 제의가 배역의 시작임을 알리고 있다(그런데 여기서 엘리 역시 당대의 므낫세의 모형으로 비춰지고 있다). 사사 시대는 서로 경쟁하는 제의 시스템 간의 논쟁을 목적으로 재형성되었다. 헬라-로마 시대에 사마리아 측에서 엘리의 이야기를 유대 종교의 불법성을 논증하기 위한 목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유대인들이 므낫세를 공격하는 것에 대한 반응으로 볼 수 있다.


      삿 17-18, 므낫세를 다룬 요세푸스의 이야기, 엘리를 다룬 사마리아의 보고들은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간의 제의적 논쟁의 세계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