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요 7:27)
[예수를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 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했던 초막절이라는 절기가 돌아오자, 전국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습니다(요 7:2). 당시에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갈릴리라는 시골에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병을 치유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진리를 가르쳤던 예수님 역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 이상한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10절을 보니,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예수님은 비밀스럽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고 합니다. 설명을 간단하게 드리자면,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또 다른 지역에서 소문만을 들었던 사람들 역시 실제로는 예수님을 전혀 믿지 않았던 겁니다(5절). 또한 20절을 보니깐, 심지어 예수님에게 “당신은 귀신이 들린 것이오”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죠. 요한복음 7장은 예수님을 불신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인 거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의 지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이렇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자고로 그리스도(메시야)라는 우리의 구주가 탄생한다면, 아무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짠!’하고 나와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저 예수라는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즉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저가 그리스도라고? 하하!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조금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구약(미 5:2)에 나와 있는데도, 이 사람들은 지금 엉뚱한 얘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들은 엉뚱한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당시에 사람들이 즐겨 읽던 글 중에 ‘에스라 2서’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에스라-느헤미야의 그 에스라입니다. 왜 에스라 2서냐면, 여기에서 이 에스라는 무너진 이스라엘을 회복시킨 사람이었기 때문에, 지금 로마에 지배를 받고 있는 자신들도 에스라 때의 회복을 간절히 기다리며, 누군가가 에스라 2서를 썼던 것이었습니다. 에스라라는 사람의 이름을 빌려서 쓴 가짜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이 가짜 성경인 에스라 2서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2 Esd. 12.32): “지극히 높은 자의 메시야는 종말의 때에 비밀히 오시리라.” 이 사람들은 잘못된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판단했던 겁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왈가왈부 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에서, 자신들이 성경을 알고 있는 것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못한 경우가 또 나옵니다. 바로 41,42절입니다: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이 사람들은 미가서 5장 2절의 말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갈릴리의 나사렛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갈릴리는 이방 도시로 여겨질 정도로 천대받는 시골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결론을 이렇게 내리게 됩니다(52절):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성경을 알고 있더라도, 그 알고 있는 것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찾아보면(요 6:42):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이제는 더 나가서 예수님의 부모도 알고 있다고 합니다. 성경의 내용을 떠나서, 이들은 인간적으로 볼 때, 예수님은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한쪽에서는 거짓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의 고향을 안다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한쪽에서는 성경을 알고 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딱 한구절의 말씀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쪽에서는 성경도 필요 없고 인간적으로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 : “그렇구나!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 때문에, 더 이상 예수님을 믿을 수 없구나!”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그동안 내가 경험해서 내 머릿속에 계산이 착착 되는 것 이상으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가 말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못했던 사람들과 차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나 역시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예수님을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은 믿음일 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이만큼 알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은 이만한 분이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크십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엡 4:20-21).
[길 진리 그리고 생명 ] : 요한복음의 핵심 키워드 중에 하나는 바로 ‘아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요한복음은 우리 사람들만의 힘으로는 예수님을 알 수가 없다고 말하고, 반대로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는 분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0절에, “그(예수님)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 48절에, 예수님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나다나엘에 대해서 이러이러한 사람이라고 하자, 나나나엘은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라고 놀랍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요 14:6-7).
나의 길 버리고 예수님의 길 걷기를, 나의 진리 버리고 예수님의 진리 얻기를, 나의 생명 버리고 예수님의 생명 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