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ukuyama, The End of History, 295.
"In democratic countries, the love of equality was a deeper and more abiding passion than the love of liberty. Freedom could be had without democracy, but equality was the uniquely defining characteristic of democratic ages, and for that freedom -- the arrogant display of a Leona Helmsley or a Donald Trump, the crimes committed by an Ivan Boesky or Michael Milken, the damage done by the Exxon Valdez to Prudhoe Bay -- are much more visible than the evils of extreme equality like creeping mediocrity or the tyranny of the majority. And while political freedom bestows exalted pleasures on a small number of citizens, equality provides the great mass of people with small enjoyments."
F.Fukuyama, The End of History, 295.
민주주의의 두기둥은 "자유와 평등"이다. (기득권을 가진) 보수는 개인(과 특별히 경제적 차원에서) '자유'를 우선하고, 반대로 (박탈감에 빠진) 진보는 '평등'을 내세운다. 문제는 이것을 하나의 밥그릇에 어느 것을 '더 많이' (그러므로 어느 것을 '더 적게') 담을 것인가에 논의가 맞추어져있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은 (상징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두 기둥"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것은 '왼발과 오른발'로 걸어가는 사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좀더 온전한 민주주의의 이상을, (저자가 말하려는 역사의 종점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사회의 최종적 진화단계인 '민주주의'의 이상을), "평등"이 더 고려되는 사회라고 말한다. 개인이나 집단이 자연스럽게 가질 수 밖에 없는 '욕망'(thymos)이, 혹시 브레이크를 상실한 "자유"로 돌진하게 될 때, 마치 저자가 언급했던 '5적'[이것이 megalothymia의 추악한 외형이며, 그안에 도널드 트럼프가 언급되어 있다는 것은, 현재 공화당의 토대를 엿보게 한다]과 같이, 사회는 감당할 수 없는 상실을 겪게 된다. 혹자(물론 이들은 수구이다)는 "평등"을 포퓰리즘이라고 깎아내리겠지만, 저자는 이것을 '동등한 인식의 욕망'(isothymia)이라고 올바른 정의를 내린다.
수십만의 시민이 하나의 광장에 모인 것은, (내 생각에는) 사실 "자유"를 위함이 아니라, 그들 모두가 진정한 나라의 주인이라는 "평등"을 확인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