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정치적 의도를 숨기고 있다
<사실, 20세기신학은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다>
Abraham Joshua Heschel의 'the Prophets'는, 놀랍게도 유대인 특유의 파토스로 범벅이 된 작품이다. 다시 말해서, 냉철한 로고스의 예언서 연구라기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감정 이입하여 비평적인 역사적 배경 연구없이 성서본문을 '잘라내어' 저자의 뜨거운 파토스 위에 기름을 붓는다.
20세기 유대인 학자들은 어느 정도는 시온주의에 가담할 수 밖에 없는 존재론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일전에 교수님이 유대인 학자들의 글을 읽어나갈 때, 그들의 글만큼은 순진하게 읽어내려가지 말라고 주의를 받은 기억이 있다. 헤셸의 이 대목이 참 그렇다:
"The increasing prosperity of Judah << 'was not canalized for the exclusive benefit of the aristocracy and the wealthy merchants, as was apparently true of the Northern Kingdom in the eighth century. ... All private houses so far excavated reflect a surprisingly narrow range of variation in the social scale. ... In other words, there was no period in Judah during which was such concentration of wealth in the hands of individuals as to destroy the social order.' >> The people made good use of the opportunities for commercial and industrial expansion."
A.J. Heschel, Prophets, vol I: 62.
유대인의 성서읽기의 특징은, James Kugel이 잘 보여주는 것과 같이, (텍스트에서 말하고 있는) 현재됨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과거의 기억들에 대해서 그 빈틈을 꼼꼼하게 메꾸는 차원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미드라쉬)이었다. 그러므로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멸망했던 이유에 대해서, 역사가들은 설명이 필요했고, 역시 586년에 남유다가 포로기를 경험하게 된 이유도 그들은 설명했다. 이 말은, 8세기에 북이스라엘은 멸망했지만, 남유다는 아시리아의 위협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설명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신명기적 역사는 엄청난 선언을 한다.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의해서 온갖 잡족에 의해서 민족적 순수성이 사라져버렸지만, 남유다는 비록 예루살렘은 잠시 파괴되었을 뿐 왕실이 보존되었고 그들은 '다시' 회복되었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20세기에 건립된 국가 이스라엘의 정신세계를 구성해야만 했던 신학의 과제이기도 했다. 이것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까?
거기에는 미국의 고고학이 앞장을 섰다. 위에서 헤셸이 인용한 글은 그 유명한 W.F. Albright의 글이었다(1949). 올브라이트의 요점은, 남유다는 하나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을 받아 마땅한 북이스라엘과는 '다르다!'라는 것이었다. Keith W. Whitelam은 the Invention of Ancient Israel을 통해서, 올브라이트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국가형성을 위해 어용지식인이 되었던 미국 고고학계의 정당하지 못한 학문성을 고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