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에봇의 다윗

진실과열정 2019. 7. 22. 23:48

정치인들이 가끔씩 보여주는 인위적인 행동은, 그 진실함을 의도치않게 고발한다. 그런 차원에서 다윗의 에봇은 그가 걸었던 숙명의 최종 지점에서 보여주었던 진실함의 절정이었다. 잠깐이나마, 성서의 역사적 내러티브를 정치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무엘상 16장부터 시작하여 사무엘하 5장에 이르기까지 길고 긴 이야기의 주된 목적은 ‘다윗 왕조의 정당성’에 대한 신적변호이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삼상 16:14-삼하 5:10의 ‘변증’ 장르에서(Coote & Ord 1989:28), 다윗은 시종일관 야훼에 의해 등떠밀려 왕이 된 충직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야훼의 신이 사울에서 떠났지만”(삼상 16:14), “그 야훼는 다윗과 늘 함께 하셨다”(삼하 5:10)라는 요약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도 긴 변명이 필요했던 것일까?


먼저 다윗의 긴 변명을 생각한다면, 왕위 등극 이야기 안에서 몇가지 힌트를 찾아볼 수 있다. 사울의 여러 모습은 추락하는 자의 날개 없음을 보여준다(삼상 19:24; 22:17; 28:20). 심지어 사울과 다윗의 대화에서 사울은 몇번이나 다윗의 왕위를 인정한다(삼상 24:20f; 26:25). 무엇보다 사울의 죽음과 이후 사울 가문의 멸망과 관련하여 다윗이 일체 얽매이지 않았음을 강조한다(삼상 26:9; 29:9; 삼하 1:25; 3:27). 이 모든 것이 단지 사실이었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다윗에게는 매우 조심스럽게 그러한 것들이 사실이라고 알려야할 필요가 있었다.


사울의 가문은 ‘맨파워’를 보유한 집단이었다. “옛날에 누가 있었는데,”로 시작하는 삼상 9:1의 문학적 장치는, 성서역사가들이 고대의 영웅들을 기억할 때 사용하는 기법이었다. 이스라엘이 하나의 국가적 정체를 획득하기 이전에, 각 지파들은 저마다 영웅들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으며,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에서 저마다의 활용도를 확인하게 된다. 특별히 신명기적 역사가는 사사기와 사무엘서를 이어가면서, 그 배후로 ‘베냐민 지파 죽이기’를 시도하였음을 알게된다(삿 20-21장; D.Fleming 2012: 146ff, 156). 이렇게 볼 때, 남쪽에 거주했던 비친화적 집단이었던 사울 가문의 맨파워를 누그러뜨리고, 다윗은 주변의 세력들에게서 전적인 신뢰를 얻어야만 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유서깊은 ‘헤브론’을 포기하고, 새로운 수도로 예루살렘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대서아시아의 제국들이 팔레스타인의 도시국가들을 침략했을 때, 여러 부분에서 예루살렘은 빠져있는데, 그 이유는 그만큼 중요하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비교적 안전은 보장되지만(수 15:63), 이 말은 반대로 교통의 이방지대라는 뜻이 된다. 청동기 시대부터 철기에 이르기까지 예루살렘에서 지속적으로 사람이 거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폐쇄성때문이었고, 새롭게 왕조를 세우는 다윗에게 이만한 ‘안전장치’는 또 없었다. 이제 문제는 성전이다.


현대인들의 과학적 접근과 달리, 고대인들이 창세기 1장을 읽었을 때는, “아! 이것은 신이 거하는 집으로써, 우리들이 살아가는 곳을 말하는구나!”라고 이해한다. 세계의 시작은 신이 집을 짓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만큼, 신은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존재이다. 특별히 왕조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헤브론에서 왕조를 세우고(삼하 5:3), 예루살렘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세웠지만(삼하 5:7), 진정한 왕조의 시작은 ‘신의 임재가 만천하에 보여지고 확인되는 점’을 새롭게 요구한다. 그러므로 다윗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면, 야훼의 집을 ‘새 장막집,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작업이었다(삼하 6:17).


웃사의 죽음과 오벧에돔의 축복은 궤가 정말 ‘야훼의 임재’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신’이 새로운 기점에 자신의 집을 세우게 되었을 때, 새롭게 세워진 왕조의 찬란한 흥왕은 보장된다. 다윗은 여기에서 ‘진심으로’ 기뻐했고, 에봇을 보여줌으로써 고대사회에서 왕의 역할이 제사장도 포함하고 있음을 설득시켰다. 성서 내러티브에서 신이 세상에 집을 세웠던 창세기 1장이 인간의 시작이었다면, 그 신이 예루살렘에 장막 안에 거하게 된 것이 다윗 왕조의 시작이었다. 그러므로 삼하 7장의 다윗계약은, 인류의 그것과, 매우 중요한 평행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