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왜곡, 그리고 “불화수소”>
<혐오, 왜곡, 그리고 “불화수소”>
느닷없이 전국에 울려퍼진 “불화수소”라는 생경한 단어는, 전공자가 아닌 이상, 그래서 그 전공자에게 설명을 듣기 전까지, 인터넷이라는 간편한 개인교사의 도움을 받기 싫어하는 극소수의 자신만의 경험 안에서 세계를 구축하는, 바로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에게, 의외의 유비(analogy)로 나가오게 되었다. 바로, “불에 타는 수소(bull on fire)”라는, 레위기 내러티브의 그림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은, 동시에 말도 안 되는, 일본의 아베 정국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 국제정세 안에서만, 그래도 약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이 생각의 출발은, <다스뵈이다, 69회>에서 역사학자 전우용의 해설을 듣고, 일전에 '역사용어 바로쓰기'(2006)라는 책에서 읽었던, 그 분의 생생하고 날카로운 분석을 다시 기억하면서, 떠오르게 되었다. 그는 현재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소위 내재화된 자인식이, 조금만 공부를 하게 되면, “만들어진, 거짓된” 의식이었다고 고발했다. 그러므로, 그는 잘못된 생각들의 출발과 그 과정과 방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그에 대한 우리의 바른 역사적, 철학적 대응을 의지적으로 요구하였다.
일단, 모든 것은 '선거'라는 민주정치적 어휘로 포장된, 세계적 권력욕에서 자리한다. 아베는 선거에 이겨야했고, 그 방법으로 우리나라를 '주적'으로 지시했다. 우리나라의 메모리 생산을 막기 위한 일본의 불화수소 수출 금지에 대해서, 그 이면에 들어있는 일본 아베 정권의 정치적 방법론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전우용님의 논리를 따르면, 그 뿌리가 일본의 '혐한'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역사왜곡'에 있으며, 여기에 그들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한국 내 '엘리트의 부역'이라는 구조였다.
이러한 구조는 성서를 정치적으로 접근할 때, 낯설지 않은 그림이 그려진다. 그런 이유는, 역사는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러한 반복의 저주를 푸는 것이 현재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역사의 반복은 그때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현상이 아니었을지 유비적 사고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물어보면, 이렇다: “아베는 요시야인가?” 연결 가능한 키워드는, '혐한,' '역사왜곡,' 그리고 '불화수소'이다. 성서 시대를 오늘의 정치윤리로, 소위 '정치적 올바름'으로 규제해서 읽을 수는 없다. (한 세대 전만해도, '전철과 버스'는 담배연기로 가득하지 않았는가!) 일단, 과거의 메카니즘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보자.
1. '혐오'는 정치적으로 필요한 수단이다. 민족이란 공동체 의식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에 대해서, 학자들은 최근이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어찌되었건 각자의 계통학이라는 범 지구적 현상 아래에서, 각 집단은 자신들만의 뿌리성을 주장했었고, 자신들의 우월성을 알렸으며, 상대적으로 자신들이 접촉하는 이웃 집단의 뿌리에는 저주를 퍼붓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성서에 따르면, 이집트는 히브리 사람을 상종하지 않았다(창 43:32; 46:34).
이러한 혐오는 민족적인 차원과 매우 정치적인 특정한 차원에서 나타나는데, 민족적인 것은 일차적으로 기원론에서 찾을 수 있다. 매우 익숙한 '모압'이라는 나라는, 사실 그 내러티브적 익숙함과는 다르게, 기원전 8세기에 이르러서야 국가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그들의 번영은 주로 7세기였다(W.G.Dever 2012). 다시 말해서, 창세기 19장의 '모압 민족의 근원'이라는 기원론은, 후대의 만들어진 기원론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모압은, 메+아브 형태로, “아버지로부터(from the father)”라는 뜻이다. 이런 상놈의 자식들! 이란 표현이 '모압'으로 부르면서 만들어진, 다름 아닌 민족적 혐오 표현이다.
그렇다면 매우 정치적인 특정한 차원에서, '의도된' 혐오라는 것이 있었을까? 신명기적역사가(Dtr)가 만들어낸 조어가 바로, “혐오”였다. 그리고 그 대상은 민간신앙이었다. 민간의 신앙은, 소위 '계시적'이라고 고백해야만 하는 남성 엘리트의 전쟁신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일종의 '보호적'으로 각 집단의 생존과 번영을 약속하는 자연발생적인 신앙이었다(W.G.Dever 2005). 그러므로 가정 내의 종교는 어머니의 몫이었고, 여성과 관련된 신앙적 표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는 고대의 기억에 담겨 있는 이스라엘의 전통 안에서, 비록 최종본으로는 혼동된 상태이지만,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신 33:2). 그러므로 히브리인에게 '아세라'는 일찍부터 모든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숭배되었다. 반대로 보면, 8세기에 이르러 중앙집권에 들어서기 이전에, 각 지역은 자신들 고유의 야훼신앙과 또한 아세라숭배가 존재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다양한 전통의 분산은, 중앙의 왕실 입장에서, 반드시 해결해야할 문제였다. 일찌기 아시리아의 왕실을 경험했을 유다 왕실의 서기관들은, 메소포타미아의 어디에나 있었던, 왕실 이데올로기의 방법론을 이용한다. 왕실에 의한 종교의 통합이며, 그러므로 주변의 전통은 '거짓된' 것이라고, 더 나아가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덮어씌워야만 했다.
신명기적역사가는, 비록 히스기야에서 일종의 'proto-Dtr'을 찾을 수 있겠으나, 그보다 훨씬 이전에 아사왕의 역사에 '혐오스러운 것'의 존재를 미리 집어 넣었다. 왕상 15:13절에서, 성서에 단 한번만 등장하는 단어, '미플레쩨트'가 나온다. 이것은 '혐오스러운 (어떤) 것(abominable thing, TNK)'이다. 이것은 만들어진 말이다. '아세라,' '우상'과 같은 익숙한 말보다, 그러한 세계를 짓누르기 위한 더 확실한 말이 필요한 것이다. 이후로, 히스기야와 요시야에 의한 '혐오정치'는 쉽게 진행되었다. 일찍부터 히브리 민간의 풍습은 혐오스러운 것으로 인식시켰기 때문이다.
2. '역사왜곡'은, 역사란 결국 승리자의 것임을 보여주는 개념이 아닐까? 누가 왜곡하는가? 비교적 힘이 있는 것들이 질서를 왜곡하지 않은가? 가장 왜곡된 존재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이 아닌가 한다. 사울에 대한 기원(삼상 1:20,27-28)이, 사무엘이란 예언자의 존재로 왜곡되었다. 사울을 대표로하는 베냐민지파야 말로, 신명기적역사가들에 의해서 철저하게 왜곡된 지파로 남았다. 사사시대의 무질서는 오롯이 베냐민의 잘못으로 돌려졌다(삿 19-21장; D.Fleming 2012). 무엇보다 왜곡의 절정은, 아이러니하게도, 히스기야 왕실에 대한 아시리아 공격일 것이다(왕하 18장). 요시야 시대에 와서, 감람산은 멸망산으로 왜곡되어 불렸다(왕하 23:13-15).
3. “불화수소”와 엘리트의 부역은, 사실 언어적 유희이다. 이러한, 소위 예루살렘 중앙신전 안에서 발생한 '신명기적개혁'에 대해서, 당시 예언자였던 예레미야의 평가만 들어봐도 충분하다: “너희 가운데 지혜 있다고 스스로 나설 자 있느냐? 야훼의 법은 우리가 맡았다고 할 자 있느냐? 보아라, 거짓 선비의 붓끝에서 법이 조작되었다.”(공동번역; van der Toorn 2007) 그러므로, 레위기의 시작을 알리는 “소의 번제”에서('불화수소'), 그 정결과 부정이라는 일종의 구조주의적 세계관 이해에 대해서, 농경사회를 토대로 한 종교적 절기와 함께 자신들의 이상향을 여전히 유목민적 환상에 품고 있는 이중성에 대해서, 예레미야는 애초부터 그 허울뿐인 그들만의 개혁에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아베는 실패했던 군국주의의 환상을 다시 꺼내들고자 했다고 한다. 그들의 입장만으로만 보면, 아베의 전략은 그럴듯하다. 요시야는 실패했던 히스기야의 환상을 다시 꺼대들었고, 그 결과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 전략이 '혐오' '왜곡' 그리고 '불화수소'의 엘리트 부역자들에게 있다는 유사성은, 역사에는 우연이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