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시대, 초전공시대
IT분야만큼, 말그대로(Information Technology) 통합적인 방법론은 없겠지요. 세상을 감싸는 많은 정보들을 취합하고 가공하여 쓸만한 '것'으로 만들기까지는, 이념과 종교를 뛰어넘는 포용적 세계관이 기능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공'이 20세기의 산물이었다고 한다면, '초전공'이야말로 IT로 상징화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지성인의 새로운 수레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혹자는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ies)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사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도태될 운명을 모르고, 다른 영역을 말도 안되는 이유로 매도하거나 무시하는 집단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부분 정치적 집단에서 발견됩니다.) 예전에 컴퓨터를 공부하면서, 선배들이 간간히 해준 이야기가, 자신이 공룡이 되는 순간 멸망은 시작된 것이라고 하더군요. 더 이상 바깥 세계와 대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때, 말 그대로 '그 것'은 있지만 존재하지 않은 것입니다. 바로 IBM이 그랬고, 제록스의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빛을 발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런 차원에서 어떠한 경우에서건 일종의 '편견'을 벗어버리고, '초전공'의 세계로 움직인 사람들의 행동은, 확실히 예언자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제롬(Jerome)이란 사람도 이 분야에 속하지 않을까 합니다. 당시에 만연했던 '반셈족주의' 기독교 분위기에 동조하지 않고, 그는 당시에 히브리어 문법책과 사전이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9세기에 들어야 나오기 시작했죠), Baraninas라는 유대인을 히브리어 스승으로 삼고 공부를 하였습니다. 나중에 제롬의 친구였던 Rufinus는 이를 비난하여, Baraninas가 아닌 (예수님 대신 풀려난) Barabbas에게 제롬이 히브리어를 배우고 있다고 조롱하였습니다. 보다 정확한 라틴어 성서를 번역하기 위한, 물론 로마 교황의 지시가 있었지만, 당시의 더 많은 라틴어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소개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학제간 연구'의 원형이라고 보기에 충분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H.G. Reventlow(2009: 37)는 제롬의 라틴어 성서야 말로 'a truly pioneering achevement'라고 칭송하네요. 일전에 T.M Law(2013)가 제롬의 라틴어번역 작업에 대해서, 지나치게 히브리어 우선권을 앞세운 나머지(hebraica veritas; '히브리어가 진리여~') 70인경의 '보편적' 혹은 (이후에 사해사본의 발굴로 부분적으로나마 증명된) '고대적' 의미를 상실하게 한 주범이었다고 평가했는데, 한편으로 역사의 변증법적 궤적으로 볼 때, 제롬은 당시에 존재했던 공룡의 영향을 초월했던 선구자였음에는 틀림이 없고, 결국 (그가 원했든지 알 수 없지만)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가 중세 1000년을 이끌었던 또 하나의 공룡으로 존재했다는 점에서, 어쩌면 '지적 정체'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삶을 화석화시키지 못하게 하는, 끊임없는 자기반성적 해석을 하고 싶은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