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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규, 「성경,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진실과열정 2018. 12. 29. 22:35

성서 적용하기

- review article by. 양지웅 -


1. 서론

본 글은 송인규가 지은 「성경,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요약하고 평가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이후 「성경 적용」이라고 칭한다). 저자인 송인규 교수는 뉴욕 시라큐스 대학(Syracuse University)에서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자는 학생 운동가였으며, 설교가이고 강연가였으며, 신학자이고 저술가라는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을 한, 신앙과 삶의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성경 적용」은 크게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부분은 성경을 귀납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성경공부의 문을 열어놓았고, 적용이 필요한 이유를 사례를 중심으로 제시하였다. 두번째 부분은 성경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여 올바른 적용에 다다를 수 있도록 돕는, 걸림돌을 제거하는 작업을 다룬다. 세번째는 적용의 실제로, QT와 소그룹 성경공부의 주제들을 다룬다. 

          


2. 본론

「성경 적용」의 1부에서 적용의 개관을 다룬다. 1장에서 저자는 귀납적 성경공부라는 주제로, 성경을 접근하는 방법 가운데 귀납을 제시한다. 귀납은 구체적 사례들을 제시하여 일반화된 원리에 도달하는 논리이다. 그러면서 주경신학은 귀납적 접근 방식이고, 교의신학은 연역적 방식이라고 요약한다(p.20). 그리고 저자는 무엇보다 성경의 문체를 이해하는 것을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설화체와 강화체의 구분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설화체는 이야기 형태의 글로 플롯에 따라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과 문제해결의 방식으로 해설하는 형식인 반면, 강화체는 글을 쓰는 이가 자신만의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써내려가는 방식이다. 


저자는 귀납적 접근을 위한 세가지 단계를 설명한다. 그것은 관찰과 해석 그리고 적용이다. 관찰은 본문에서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며, 해석은 관찰을 바탕으로 성서의 독자가 무엇을 깨닫기 원했는지 그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적용은 밝혀낸 성서의 의미를 오늘의 상황에 반응하는 일을 말한다. 이러한 세가지 과정에서 저자는 시대와 장소를 따라서 변하지 않는 핵심과 새대와 장소를 따라서 변하는 환경을 구분하는 작업이 귀납적 성경공부의 중요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성경 내용 가운데 당시의 문화적 배경에 속한 요소들을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우리가 찾고자 하는 초문화적 교훈을 추출하는 것이 성경 해석의 목적이라고 말한다(p.25). 


2장에서 저자는 적용을 다루면서 성서에서 등장하는 적용의 다양한 차원을 예시한다. 성서는 여러 곳에서 지속적으로 순종이란 개념으로 적용이란 뜻을 구체화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성서에 나오는 다양한 명령들은 유효기간과 형식에 따라, 일시적 훈령, 항구적 훈령, 그리고 일시적 금령과 항구적 금령 이렇게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성서의 약속 역시 위의 경우와 같이 네 종류로 나뉜다. 이어서 3장에서 저자는 적용의 필요성을 설명하는데, 비록 아전인수식의 적용이나 성경의 왜곡 혹은 한구절에 집착하는 성서주의적 현상들이 빈번하여서 합당한 적용 조차 반감을 갖게 되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신앙인에게 적용을 하기를 원하시며(약 1:22-25), 그 적용이 성경의 목적이며 신앙의 본질이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요소라고 주장한다.


제2부에서는 올바른 적용을 위한 성경 이해를 논한다. 무엇보다 성경에 나오는 단어와 문장 등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요구된다(5장). 때로는 성경의 특수한 장르나 특별한 수사적 표현 기법을 통해서 보다 정확한 이해로 나아가게 된다. 저자는 다양한 예를 제시하면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의미의 곡해를 방지한다. 저자는 문체 즉, 설화체와 강화체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5장)저자에 따르면, 설화체 본문이 그 자체로는 우리의 믿음과 행위에 표준이 되지 못하는 반면, 강화체 본문은 직접적인 교훈으로 작용할 수 있다.”(p.92). 물론 저자는 설화체의 교훈적 요소가 있다고 말하기는 하지만(p.107), 그럼에도 설화체가 강화체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그 자체로 규범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p.102, 108). 


한편, 문화적 상황에 대해서 고려할 부분들이 있다(6장). 성경이 사람을 대상으로 한 기록물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사는 문화적 요소들이 반영될 수밖에 없고, 결국 문화적 상황을 무시한채 문자적으로 적용하게 된다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성경을 인간의 특수한 문화와 신적 메시지로 구분하여 제시하여, 오늘날의 문화 안에서 성경의 신적 메시지를 이해하는 일이 합당한 적용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저자는 성경의 신적 메시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구속사적 발전을 논한다(7장)저자는 성경신학운동의 연장선에 서있는 것처럼 보이며, “역사속에서 자신을 점진적으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제시한다. 이렇게 볼 때, 구약과 신약 역시, 앞서 6장에서 문화와 신적메시지처럼, “형식과 내용으로 각각 나눌 수 있다(p.135). 결국, 성서를 연구하는 사람은 구약과 신약의 내용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이자 완성자인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으로만, 구약의 본문을 해석해야한다(p.149). 


마지막인 제3부에서 저자는 적용의 실제를 다룬다. 제일 피부에 와닿는 것은 개인적인 성경 묵상인 QT이다(8장)또한 실존적 가르침과 학습이 가능한” 소그룹 성경공부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9장). QT와 소그룹의 경우에 있어, 적용적인 차원에서는 무엇보다 각자에게 깨달아진 신적 메시지가 자기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공격적이거나 더 우월하게 느껴지는 태도를 가지면 안된다고 조언한다. 이것은 설교자에게도 해당되는 부분인데(10장)적용의 차원을 고려할 때 설교자는 청중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고 그에 맞게 합당한 적용으로 나아가야 한다. 저자는 도표를 통해 효과적으로 요약하였다(p.262).


 

3. 결론

적용에 대한 부분은 사실 학문적인 차원에서 많이 다루어지지 않은 영역이다. 그러므로 적용을 다룬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저자는 무엇보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돕는 차원에서 적용의 문제를 접근한다. 사전적으로 혹은 문법적으로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며, 더 나아가 문화적인 배경 안에서 성경의 내용 그 자체가 절대화되지 않고 오히려 문화를 상대화함으로써 성경의 신적 메시지를 캐내는 방식으로 적용의 합리적 과정을 제시한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몇가지 부분에 의문을 품고 비평을 하고자 한다. 첫번째로, 엄밀하게 말해서 저자는 자신의 논리 진행에 있어서, 연역이 아닌 귀납을 중시했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추구하였지만, 실제로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제시하는 방식 자체가 연역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귀납적 접근 방식을 제시하면서, 그러한 귀납적 방식의 의미를 귀납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저자의 말대로 베테랑 지도자의 설명을 듣자고 말하기 때문이다(p.24). 저자가 베테랑이라는 대전제 안에서 제시되는 논리이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이야 말로 연역의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일종의 수사법일 수 있다(저자는 38페이지에서, ‘일시적 훈령의 예를 언급하면서 신 6:16,17을 제시했지만, 사실은 16장이 맞다). 그러나, 저자가 귀납의 원칙을 제시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구약의 여러 주제들을 성경신학적으로 정리해 두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연역의 신학 안에 있음을 드러내는데 잘 발견된다(p. 62 n.35). 


두번째로, 저자가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외형과 내면의 구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없다. 저자는 외형은 문화적인 것이므로 내면인 신적 메시지와 무관하다고 말한다(그렇기 때문에, 아래에서 말하겠으나, 설화체와 강화체의 본질적 차별이 가능하다 하겠다)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외형이 간단히 이라고만 한다면, 그래서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엔 그 옷을 바꿔서 생각해야 한다면, 성경과 같은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 볼 때, 저자가 말하는 문화와 메시지를 구분하는 논리는, 서구중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의 한 사례라고 하겠다. 물론, 한국의 상황에서 맞는 적용방법론이라고 하겠지만, 연구자는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성서의 핵심의도만을 파악하고 고대문화라는 옷 자체를 쉽게 버리는 방법을 지양하고, 오히려 성서 안에서 시대와 환경이 달라짐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그 말씀을 적용하려고 했던 이스라엘의 성서해석과 적용의 사례들에 눈을 돌리는 시도가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서, 노예를 해방하는 법의 경우 3가지로 지속적으로 제시되는데(출 21:2-6; 신 15:12-18; 레 25:39-43), 이것은 문화와 신적 메시지를 함께 좋은 예라고 본다. 또한 무엇보다 저자의 주장처럼 문화를 간단히 볼 것이 아닌데, 저자가 예를 든 신약시대의 제자도와 관련하여 그들의 문화와 우리의 것과 다름을 말하였지만, 실상 1세기 팔레스타인에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는 묵시론적 세계관이라는 문화적 이해’ 없이 단지 그 당시의 관습이었다라고 모호하게 제시하는 문제점을 제기할 수 있다(p.124-26). 이렇게 연구자는 문화와 메시지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고 본다. 오히려 최근의 성서 연구는 사회과학의 접근을 통해서, 문화라는 옷이 핵심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밝혀내고 있다.1 


세번째로, 저자가 설화체와 강화체를 나누면서 강화체에 우선권을 주고 있는데, 연구자는 그러한 주장과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 이것은 자칫 정경 안에 정경을 만드는 오류가 될 수 있으며, 설화체에 들어있는 놀라운 숨겨진 지혜(신적 메시지)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저자는 설화체와 강화체를 구별하면서, 각각의 목적이 다르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설화체는 사실들을 보고하는데 목적이 있고, 강화체는 진리를 전달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단언한다(p.87). 과연 그러한가? 저자의 주장은 특별히 92페이지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과연 강화체(서신)가 문화적 이해없이 직접적으로 가능한가? 그러한 문제는 파루시아의 문화적 배경을 모르고 강화체라는 것만으로 절대 진리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제시되어오지 않았는가? 다시 말해서, ‘파루시아라는 개념 자체가 문화적인 신적 메시지라는 점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살전 4:15-17).2 


이렇게 연구자는 강화체만이 적용을 위한 최우선순위로 맹목적으로 인식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자 한다. 오히려 구약의 다양한 설화들은, 토라를 시대별로 재해석하는 가운데 성경의 진리를 그들의 다양한 삶 가운데 어떻게 적용시키려고 노력했는지 엿볼 수 있는 산 증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참고. 고전 10:6).

  1. David G. Horrell ed., Social-Scientific Approaches to New Testament Interpretation (Edinburgh: T&T Clark, 1999); Philip F. Esler ed., Ancient Israel: The Old Testament in Its Social Context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6) [본문으로]
  2. N.T. Wright,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 박문재 역 (서울: 도서출판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5), 887; John Dominic Crossan and Jonathan L. Reed, In Search of Paul: How Jesus’ Apostle Opposed Rome’s Empire with God’s Kingdom (New York: HarperCollins, 2004), 169, 17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