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민수기 사색

진실과열정 2016. 3. 5. 23:04

대부분의 성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하면 익명의 기록자는 자신들이 보유한 물질적, 비물질적 자료들을 가지고 자신들의 신앙안에서 편찬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신앙의 전승이 축적되고 발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편집비평이란 이름으로, 최종 편집자의 신앙을 발견하는 일은 의미있는 신학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민수기를 보면, 1:1에 출애굽후 221일이지만, 9:1은 출애굽후 1월입니다. 민수기가 연대기적 방식으로 기록된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지요(여호수아도 그렇고[1-2-3], 다니엘[2:1], 예레미야, 에스겔 등). 여담이지만, 3:43은 쉽게 지날 수 없는 구절입니다. 민수기는, 대부분이 (비평학자들이 말하는) P자료이지만, 그 뿌리는 고대로 올라간다고 봅니다: 비교문헌(5:23, Schniedewind 2004: 27f)이나 고고학(6:22-6, Dever 2005: 130; 발람네러티브, Mazar 1992: 330)적으로 말이지요.

어찌되었건, 9:15-23은 편집자의 주된 관점이 잘 반영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절대적으로 '야훼의 명을 좇아' 살아가야만 한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민수기에 의하면, 은혜의 도구라기보다는 충성됨의 기준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민수기는 13절에,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민족'이 아닌, '군대'라고 말합니다. 명령에 복종하는 집단.

그런데, 문제는 이 민수기에서, 이스라엘이라는 군대가 처절하게 와해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거죠. 우리는 '불복종'이란 키워드로 제시되는 수많은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의 불복종, 지도자들의 불복종, 모세의 오른팔/왼팔의 불복종, 모세자신의 불복종.

그래서 나귀의 항변은(22:30), "나는 네가 오늘까지 네 일생에 타는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든지 네게 이같이 하는 행습이 있더냐?", 동물에게서 배우는 참된 충성의 본질이며, 더 나아가 이스라엘과 신앙인에 대한 도전적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야훼 하나님 역시, 참된 지도자로서 충성됨을 보여줍니다(23:18-24): 인생이 아니신 하나님, 후회가 없으신 하나님,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않으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 What hath God wrought!

이스라엘은 한때 와해했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그 인구는 유지되었고(26:51), 승리했으며(31:8), 공정한 사회가 되었습니다(35:8). 하나님은 의지를 보여주셨고, 이스라엘은 결국 해냈습니다.

그 최종점은, 앞서 언급했던 편집자의 입장을 보면, '슬로브핫 딸들'의 권리 회복에 있지 않을까요?(36:5-12) 화석화된 법률조항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이들에겐 내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새로 태어난 이스라엘은 옛시대의 계명을 새롭게 확장하면서, '슬로브핫의 딸들'을 사회의 여전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를 기뻐합니다.

은혜로 회복된 세계는, 그 은혜의 갚을 수 없는 무게를 알기에, 무엇이 더 소중한 가치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이 세계의 어머니들이 삶의 무게로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경험하고, 예수님을 배웁니다(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