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사사시대: 태평성대와 어둠의시기
진실과열정
2014. 2. 14. 09:39
많은 사람들은 사사시대를 '어둠의 시기'라고 평가합니다. 어렵지 않게 수긍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초반부(1장)에 매우 단편적으로 소개되는 사건들--마치 영화의 도입부분에서 관객들에게 배경설명을 위해서 요약식으로 압축사진을 빠르게 전환하는 방식과 같이--때문이랄까, 아니면 2장의 '스포일러'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와 함께, 사사기의 종결이 오늘의 막장드라마를 저리가라하는 수준으로 그려내기 때문에, '어둠의 시기'라는 말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그런가 되짚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사사기에 4번이나 등장하는 '태평성대'라는 구절 때문입니다. 3장 11절에, "그 땅이 40년이나 태평하였다"; 3장 30절에, "그 땅이 80년이나 태평하였다"; 5장 31절에, "그 땅이 40년이나 태평하였다"; 8장 28절에, "그 땅이 40년이나 태평하였다"라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200년 동안 이스라엘은 '태평'했습니다. '태평'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샤카트'인데, 전쟁이 없는 평화를 말하며(수 11:23; 14:15),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평등한 체제를 암시하기도 합니다(삿 18:7). 말 그대로 '최소한' 20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은 전쟁도 모르며, 사회적으로도 계층화되지 않은 평등한 생활을 누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어둠의 시기'라는 말을 붙인다면, 막상 그 당시의 사람들은 '누가 그러노?'라고 되물어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앞서 '태평'이 언급된 4구절의 '40년과 80년'은 일종의 '메타포/은유'적인 기능도 있을법하다고 생각됩니다. (많은 성서학자들이 40년을 '일정 기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히려 다른 사사들에서 나타나는 시간의 언급이 훨씬 현실적인 것이 사실입니다(삿 10:1-2, 3-5; 12:8-10, 11-12, 13-15). 사사들이 '지역의 전쟁영웅'이었다는 성서역사학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자세한 네러티브 안에서 '꾸며진' 사사들의 영웅담보다는, 오히려 각 지역에서 탁월하게 부유했고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영향력을 끼쳤던 (오직 분량적인 면에서만) '소사사들'에 대한 아득한 기억들이 사실에 더 가까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년이나 '태평했던' 사사시대가 모든 사람들의 눈엔 '어둠의 시기'라고 평가되었던 것에는, 뭔가 중요한 시사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것이지요: '이보다 태평했던 시대가 또 없었건만, 왜 그들은 어둠의 시기를 보내야만 했는가?'
가장 간단한 열쇠가 여호수아서와 비교할 때 발견됩니다.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그 땅에 전쟁이 그치게(샤카트)' 되었는데(수 11:23), 그리고 난후에 여호수아는 '이제 누구를 예배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넘어갑니다. 그것이 수 22장의 사건이며, 24장의 고별연설입니다. 여기에서 공통적인 부분은, 요단 동편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상징적 '단'을 '에드'(증거)라고 부르면서(22:28,34) 자신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임을 잊지 않으려고 했고, 요단 서편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소가 있는 '세겜'에서 예배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습니다(24:25,26). 여호수아서는 전쟁이 그친 이후에, 이스라엘이 '구체적으로' 예배했음을 말합니다.
신명기법전(D; 12-26장)이 시작하는, 신명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사방의 대적을 이기고 평안하게 되었다면, 이젠 하나님이 택하실 곳에서 예배를 드려라'라고 말씀하십니다(10-12절). 그리고 신명기법전의 마지막(26장)도 역시 '평화와 예배'의 관계를 가르쳐주십니다. 여호수아가 '약속된(평화) 땅'과 '성막'이라는 임시적인 성취를 말하고 있다면, 바로 다윗에게서 '평화'와 '성전'의 관계가 완성됩니다: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삼하 7:1-2). 전쟁과 성전은 공존할 수 없었습니다(왕상 5:3-4). 이것은, P의 역사관과도 공명하는데, 창세기 1장의 창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혼란이 극복된 후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소로 들어가며 안식합니다. 더 나아가 역대기적 역사가는 신명기적 역사가의 핵심을 간파합니다: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샬롬)과 안정(세케트)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지라!"(대상 22:9-10).
그러므로 사사시대가 200년이나 태평했지만(샤카트), 그들은 그 '태평성대'를 예배로 이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어느 누구도 주신 평화에 감사하여 예배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엄밀하게 말하면, 한 명의 예외가 있는데 바로 기드온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후에,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야훼 샬롬'이라고 하였습니다. 상당히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구원을 이스라엘에 알리며 '평화(샬롬)'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40년의 태평성대 기간동안(삿 8:28) 다윗처럼 성전을 지으려고 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아마 우리는 다윗-솔로몬의 역사가 아닌, 기드온-아비멜렉의 왕조를 공부해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성서는 기드온이 왕으로 충분함을 말합니다[삿 8:18]) 그러나 그는 평화속에서 '우상'을 선택하였고(삿 8:27), 결국 악인의 가문이 문을 닫게 됩니다(삿 9:56-57).
역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임은 분명합니다(창 12:7-8).
그렇지만 정말 그런가 되짚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사사기에 4번이나 등장하는 '태평성대'라는 구절 때문입니다. 3장 11절에, "그 땅이 40년이나 태평하였다"; 3장 30절에, "그 땅이 80년이나 태평하였다"; 5장 31절에, "그 땅이 40년이나 태평하였다"; 8장 28절에, "그 땅이 40년이나 태평하였다"라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200년 동안 이스라엘은 '태평'했습니다. '태평'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샤카트'인데, 전쟁이 없는 평화를 말하며(수 11:23; 14:15),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평등한 체제를 암시하기도 합니다(삿 18:7). 말 그대로 '최소한' 20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은 전쟁도 모르며, 사회적으로도 계층화되지 않은 평등한 생활을 누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어둠의 시기'라는 말을 붙인다면, 막상 그 당시의 사람들은 '누가 그러노?'라고 되물어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앞서 '태평'이 언급된 4구절의 '40년과 80년'은 일종의 '메타포/은유'적인 기능도 있을법하다고 생각됩니다. (많은 성서학자들이 40년을 '일정 기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히려 다른 사사들에서 나타나는 시간의 언급이 훨씬 현실적인 것이 사실입니다(삿 10:1-2, 3-5; 12:8-10, 11-12, 13-15). 사사들이 '지역의 전쟁영웅'이었다는 성서역사학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자세한 네러티브 안에서 '꾸며진' 사사들의 영웅담보다는, 오히려 각 지역에서 탁월하게 부유했고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영향력을 끼쳤던 (오직 분량적인 면에서만) '소사사들'에 대한 아득한 기억들이 사실에 더 가까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년이나 '태평했던' 사사시대가 모든 사람들의 눈엔 '어둠의 시기'라고 평가되었던 것에는, 뭔가 중요한 시사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것이지요: '이보다 태평했던 시대가 또 없었건만, 왜 그들은 어둠의 시기를 보내야만 했는가?'
가장 간단한 열쇠가 여호수아서와 비교할 때 발견됩니다.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그 땅에 전쟁이 그치게(샤카트)' 되었는데(수 11:23), 그리고 난후에 여호수아는 '이제 누구를 예배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넘어갑니다. 그것이 수 22장의 사건이며, 24장의 고별연설입니다. 여기에서 공통적인 부분은, 요단 동편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상징적 '단'을 '에드'(증거)라고 부르면서(22:28,34) 자신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임을 잊지 않으려고 했고, 요단 서편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소가 있는 '세겜'에서 예배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습니다(24:25,26). 여호수아서는 전쟁이 그친 이후에, 이스라엘이 '구체적으로' 예배했음을 말합니다.
신명기법전(D; 12-26장)이 시작하는, 신명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사방의 대적을 이기고 평안하게 되었다면, 이젠 하나님이 택하실 곳에서 예배를 드려라'라고 말씀하십니다(10-12절). 그리고 신명기법전의 마지막(26장)도 역시 '평화와 예배'의 관계를 가르쳐주십니다. 여호수아가 '약속된(평화) 땅'과 '성막'이라는 임시적인 성취를 말하고 있다면, 바로 다윗에게서 '평화'와 '성전'의 관계가 완성됩니다: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삼하 7:1-2). 전쟁과 성전은 공존할 수 없었습니다(왕상 5:3-4). 이것은, P의 역사관과도 공명하는데, 창세기 1장의 창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혼란이 극복된 후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소로 들어가며 안식합니다. 더 나아가 역대기적 역사가는 신명기적 역사가의 핵심을 간파합니다: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샬롬)과 안정(세케트)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지라!"(대상 22:9-10).
그러므로 사사시대가 200년이나 태평했지만(샤카트), 그들은 그 '태평성대'를 예배로 이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어느 누구도 주신 평화에 감사하여 예배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엄밀하게 말하면, 한 명의 예외가 있는데 바로 기드온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후에,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야훼 샬롬'이라고 하였습니다. 상당히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구원을 이스라엘에 알리며 '평화(샬롬)'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40년의 태평성대 기간동안(삿 8:28) 다윗처럼 성전을 지으려고 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아마 우리는 다윗-솔로몬의 역사가 아닌, 기드온-아비멜렉의 왕조를 공부해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성서는 기드온이 왕으로 충분함을 말합니다[삿 8:18]) 그러나 그는 평화속에서 '우상'을 선택하였고(삿 8:27), 결국 악인의 가문이 문을 닫게 됩니다(삿 9:56-57).
역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임은 분명합니다(창 1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