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구약 성서

므낫세와 에브라임, 그리고 창세기의 계획

진실과열정 2014. 1. 15. 12:24

이스라엘(야곱)은 죽기 전에 큰 깨달음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개명된 이후엔, 변함없이 '아브라함'으로 불리웠던 것과 달리, '야곱'과 '이스라엘'은 함께(?) 사용되고 있습니다(창 48:2).

이스라엘이 장남 르우벤(아마도 37:21에도 불구하고, 35:22의 사건때문이겠지요)을 혹은 (이후로 다윗 왕조가 나올) 유다를 뒤로하고(아마도 37:26에도 불구하고, 38장 때문이겠지요), 요셉의 아들들에게 장자의 축복을 내리고 있습니다(창세기 48장). 여기에서 이스라엘은 요셉과 모든 사람의 생각과 달리, 둘째 아들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내려줍니다: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20절)

여러가지 이유를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나쁘게 생각해보면, '속임수의 달인' 야곱의 입장에서 요셉 역시 자신을 속였다고 봤을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이스라엘 역사를 돌아볼 때,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대표적으로 상징화하는 인생말년의 통찰일 수도 있겠습니다(19절). 이러한 스펙트럼안에서 풍성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한가지 더 생각하고 싶은 점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이름과 관련하여 '창세기'라는 말씀의 메시지를 연관시키는 것입니다. 첫째 아들 므낫세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나(요셉)의 모든 고난을 "잊게하셨다"(창 41:51)입니다. 앞선 모든 일들이 무효화되고, 없던 것이 되고,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 에브라임의 뜻은, 하나님이 나를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창 41:52)입니다. 이 말은 성공했다도 되지만, 문자적으로는 결실을 맺다/생육하다(!)라는 뜻입니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가 인간의 거역에도 불구하고 어떻게/얼마나 신실하게 지속되고 있는지를, 그 기원적인 소재들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창세기는 세상을/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즉 창세기 1장 28절의 복,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서서히 비춰주는 대하드라마와 같은 거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복이 성취되는 과정은 만만치 않습니다. 온 인류가 멸절될 수도 있었고, 하나님의 선택된 자가 죽음의 위기를 닥칠수도 있었으며, 하나님의 길이 아닌 사람의 생각으로 섵부른 선택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계셨고, 결국 아브라함-이삭-야곱(이스라엘)-요셉이란 과정을 통해서, 창 1-11장의 네가지 문제를 순서적으로 해결하십니다: 즉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에 대비되는 아브라함의 순종; 첫살인의 폭력에 대비되는 이삭의 평화; 노아의 은혜에 비교되는 야곱의 은혜; 바벨의 분열에 대비되는 요셉을 통한 화해의 신앙.

하나님은 창세기를 통해서, 비록 완전하지 못하지만, 인류의 원역사가 저질렀던 죄의 영향을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치유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최종적인 결과이자 목적은, 하나님의 처음 복인 창세기 1장 28절이 어떻게 성취되며 지속될 것인가에 대하여 집중됩니다. 과연 하나님은 그 복을 취하할 것인가? 아니면 신실하게 이어가실 것인가?

그 선택이 바로 (저는) 요셉의 두 아들의 이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아들은 '므낫세' 곧 '망각'입니다. '다 잊자!' 혹은 '그냥 없던 걸로 하자'는 어떨까요? 둘째 아들은 '에브라임'입니다. 바로 창세기 1장 28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인류를 향한 첫번째 명령입니다: "생육하라!(히브리어로, 페루!)" '파라'라는 '열매를 맺다/생육하다'라는 동사의 명령형입니다.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의 이름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성서는 이와 관련하여 숨은(?) 의도를 보여줍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앞에두고, 야곱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셨던 말씀을 들려줍니다(창 48:4): "내(하나님)가 너(야곱)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리라" 이것은 야곱이 이스라엘로 개명되면서 가슴 깊이 새겼던 약속이기도 하였습니다(창 35:10-11). 그러므로 창세기가 갈음되는 시점에서 야곱의 선택은, 단지 야곱만의 선택이 아니라, 창세기의 핵심메시지가 어떻게 마무리되며 또 새로운 시작을 열어주는지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망각'(므낫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생육하라!'(에브라임)를 선택함으로써 말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물을 엎지르지만,
하나님은 엎지러진 물도 다시 채우시는 분임을 신뢰하게 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습니다."(창 5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