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독서] 좋은 책 이야기

[어필]-제국의 생리, 그 시궁창을 통과하니 온 몸에 두드러기가 돋는다.

진실과열정 2009. 7. 29. 09:44

존 그리샴, [어필 The Appeal]

"제국의 생리, 그 시궁창을 통과하니 온 몸에 두드러기가 돋는다."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분노가 치밀며, 희열과 흥분 그리고 낙담과 원망이 교차하는 책이다. 제국은 어떻게라도 망할 수 없다는 불쾌한 진실을 이 책은 담고 있다.

 

어필은 법정용어로, 상소 즉 상급법원에 하급법원 판결의 심사를 구하거나 행정기관의 명령에 대한 심사를 각급 법원에 호소하는 것을 말한다. 이 책에선 거대 기업이 패소 이후에 일어나는 일을 그려내고 있다. 도덕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법리적으로도 완전 유죄인 대기업이 법정의 패배 이후에, 그래서 완전 망할 것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작가는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생리는 이러하다. 판사를 바꾸면되는 것이다! 정치와 돈이면, 어리숙한 꼭둑각시는 쉽게 만들 수 있다. 9명의 판사들은 대게 5대 4의 판결을 보낸다. 한 명만 바꾸면 되는 것이고, 그러한 선거의 과정이 이 책의 두번째 하이라이트이다. 산성과 알카리성이 한 방울에 변환될 수 있듯이, 법정은 순식간에 우익화로 돌아서고, 연이은 대기업의 승소는 이 책의 씁쓸한 흔적으로 남는다.

 

 

대기업들은 수많은 이익 단체와 협약을 통해 우리의 사법 체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만들 음모를 꾸미고 있다. 왜?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어떻게? 법정의 문을 폐쇄함으로써. 하자가 있는 상품을 만드는 기업, 태만한 의사, 약자를 학대하는 요양원, 오만한 보험회사의 손해배상 의무를 제한함으로써. 서글픈 목록은 끝이 없었다. (277)

 

계속 웃어라, 이놈들아. (악덕 대기업 회장) 트루도는 싱글몰트의 위스키를 한 모금 길게 들어켰다. 배꼽이 빠지도록 웃어 봐라. 나, 칼 트루도에게는 푼돈으로 사들인 젊은 호인 (장차 판사가 될) 론 피스크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 (180)

 

 

이 책을 읽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한국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 유명한 '삼0'의 에버00전환사채 관련 법정공방, 그 유명한 반전의 승리가 이 책에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기업은 망할 수 있으나, 제국은 망하지 않는다. 한편, 이 책에서 주요한 인물이기도한, 새로 선출된 판사는, 몇 년전 국회의원이 된 SB0 아나운서 유정0 의원을 생각나게 한다. 매 주일 아침마다 도전노래방1000에서 피로를 풀어준던 인물이었는데, 이젠 365일 내내 피곤함을 전해주는 인물로 바뀌었으니, 죽을 맛이다.

 

이 책은 바위가 계란을 어떻게 응수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볼 때, 바위는 그대로 있는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란보다 더 치밀하고 잔인하고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바위이다. 사실 그래서 바위가 된 것이다. 책을 읽으며, 정의의 승리를 기대했건만, 작가는 우리를 순간의 감상으로 머무리지 않게 하려는 것 같다. 오히려 전투적인 자세로, "우리의 정신을 바짝 차리도록" 일깨워 주는 것 같다(317). 저자가 그려놓은 인물들처럼, "썩은 체제에 강렬한 증오심을 가진 유능한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다(268, 266).

 

요즘 한국사회가 좌익 대 우익으로 오해되면서, 사실을 무시한 감정과 이념의 대결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우익이라고 할 수 있는 편의 전략이 이 책에서 잘 소개되고 있다. 상대를 사회적 악으로 둔갑시키는 놀라운 기술(235), 밑밥을 풀어서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내는 잔기술(257). 이러한 것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우려할 사항이라면, 저자는 그 핵심적인 역할로 '보수적 기독교 집단'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191, 244). 진실이 위장된 기법으로(322), 공포를 심어준다. 공포정치는 만고불변의 기법이다(352). 얼마전에도 DDos 공격의 진원지로, 국정원이 '북한'을 지적하지 않았는가?

 

저자는 경고한다: "후회하면 늦는다"(378,384).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언제나 후회한다. 방송법이 사기행각으로 통과된 이 시점, 후회하면 늦는다. 또 후회할 것이 없는 대한민국을 꿈꾼다. 억울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선진국이다. 균형있는 정의와 냉철한 분노의식이 선진시민의 자격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일종의 인과응보식으로 연출한 판사 아들의 불행한 사고는[401,415], 작위적이다. 사실, 현실에서 그들은 이런 사고를 당하지 않는다. 독자는 거기에서 심리적으로도 쾌재를 부를 수 없다. 그러한 측면에서,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내심 '에스더'를 떠올렸다. 성서의 이상은 신적인 인과응보였다. 사실 거기에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별로 없었다. 신의 섭리를 기다리며 기도를 하는 것이 최선의 행동이라고 성서는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이와 비슷한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책을 덥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초호화 요트와 초호화 여객기를 타면서, 좁은 세계를 한탄하며 피를 빨고 있을 또 하나의 트루도를 생각하니, 많이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