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세미나] 역대상 족보에 대한 문학비평적 연구
발표자: 양지웅(Ph.D., 구약학 3학기)
구약성서의 문학적 연구 세미나에서 발표했던 것으로(2009.5.11; 담당교수: 이형원)
다른 연구에 집중하던 탓에 급조한 아쉬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주된 통찰은 Gray Knoppers의 글에서(어느글인지 확실히 모르겠슴) 가지고 온 것인데,
세미나 성격상, 대상 1-9장까지의 문학적 완전성을 구조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성서의 족보에 대한 문학비평적 연구: 역대상을 중심으로
1. 서론
본 연구는 성서의 족보에 대한 문학비평적 연구를 다룬다. 사실 족보는 자료비평이나 전승사비평과 같은 역사비평의 주요한 대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족보라는 특이한 장르를 문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다 생각한다. 이 연구는 본문을 충실하게 읽게 될 때, 발견할 수 있는 문학적 효과와 기능에 대해서 다루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기에 되도록 주석이나 비평적 연구서를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세밀한 읽기”를 통해서 접근하도록 하겠다.
무엇보다도 족보하면, 많은 사람들은 구약에서는 창세기를, 신약에서는 마태복음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계보(tdol.AT, 창 5:1; 6:9; 10:1; 11:10; 11:27; 25:19, gene,sewj, 마 1:1)’라는 특별한 단어가 우리의 주목을 끄는 일은 당연하다 하겠다. 따라서 구약에서 족보를 연구한다면, 자연스럽게 창세기가 떠오르겠으나, 역대기 역시 족보로 내놓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 역대기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대상 1-9; 대상 10-대하 9; 대하 9-36), 이 중 첫 번째 부분이 모두 족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역대기에는 창세기에서와 같이 일관된 ‘계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간간히 ‘족보에 기록하다(שׂחי)’라는 동사를 사용하면서 족보라는 장르를 설정하고 있다(Wfx.y:t.hi, 대상 5:17; 9:1). 한편, 대상 1-9장에서 ‘계보’라는 단어는 한 번 등장한다(~t'Adl.To, 대상 1:29). 이렇게 볼 때, 족보로서 역대기는 새롭게 주목받을 필요가 있다.
족보를 읽어 내려가는 일은 매우 쉽지 않다. 특유한 패턴만이 반복될 뿐, 등장하는 단어들은 우리말로 읽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으니”). 성서를 열심히 읽었다는 사람도, 대상 1-9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목록 앞에서는 두 손 두 발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아담, 셋, 에노스 ...”-말 그대로 인류의 기원이다!)을 모두 규명하는 일은 성서의 족보라는 문학 장르를 잘못 이해한 소치라고 하겠다. 족보를 읽어 내려가는 특별한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족보는 잘 짜여진 직물과 같다. 세로 실과 가로 실이 촘촘히 얽히면서 탄탄한 직물을 만드는 것과 같이, 족보도 촘촘히 얽혀 있다. 물론 세밀하게 살펴보면, 각 실이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 그 원산지를 알아낼 수도 있다: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대하 27:7; 35:27; 36:8),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대하 16:11; 25:26; 28:26; 32:32), ‘이스라엘 열왕기’(대하 20:34), ‘이스라엘 왕들의 행장’(대하 33:18), ‘열왕기 주석’(대하 24:27). 그러나 이러한 원산지를 알아낸다해도 우리는 실을 걸치는 것이 아니라 옷을 입기 때문에, 전체로서의 직물을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시 말해서, 실 한 올 한 올을 캐내는 일은 부적합한 처사이다. 관건은 전체로서 짜여진 족보를, 과연 얼마나 ‘잘’ 짜여졌는가를 평가하는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이번 연구도 대상 1-9장의 족보가 전체적으로 얼마나 ‘잘’ 짜여졌는지를 평가하고 감상하며, 이를 통해서 신학적 메시지를 찾아볼 수 있는가를 주된 목적으로 삼는다. 특별히 대상 1장과 6장의 긴밀한 관련성을 주된 연구 관심으로 삼도록 하겠다.
2. 본론
일단 역대기서 자체의 전체그림을 멀리서 조망하는 일이 필요하다. 역대기의 시작은 ‘아담(~d'a')’부터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고레스 왕의 조서로 해방이 선언되는 상황에서 ‘돌아가라(공동번역, l[;y"w>)’이다. 이는 역대기서를 통해 작은 인류로 축소된 하나님의 백성의 일대기를 그려낸 대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서사시를 보다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역대기의 저자(편의상 ‘저자’라고 표기한다)는 긴 도입부를 소개한다(대상 1-9장의 족보).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의 황금시대를 이보다 더 멋질 수 없도록 그려내고 있다(대상 [10], 11-29장; 대하 1-9장). 이후로 저자는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남유다 왕국을 중심으로 파란만장한 왕국의 역사를 서술해 나간다(대하 10-36장). 이 역대기라는 직물이 만들어 놓은 그림은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다. 성전을 매우 강조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사항들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그림 자체가 나타내려고 하는 바를 순수하게 감상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우선 역대상 1-9장만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이 부분은 목록들과 족보들이 섞여있는 혼합물이다. 따라서 순전히 족보만으로 볼 순 없다. 그러나 주된 내용은 족보가 차지하고 있으므로 전반적으로 족보라는 장르로 보는 것은 합당할 것이다. 1장과 9장을 시작과 끝으로 놓을 수 있으며, 그 안에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족보들이 들어있다. 우선 1장은 (차후에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아담에서부터 시작하여 노아의 세 아들과 관계된 자세한 족보들이 들어있고, 이후에 아브라함의 족보, 마지막으로 에서의 족보가 이어진다. 9장은 앞선 족보(계보)들을 정리하면서, 본문의 역사적 위치를 언급한다: “유다가 범죄함을 인하여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니”(1절). 그리고 비교적 간단하게 레위와 유다 그리고 베냐민 지파를 언급한다. 이러한 언급은 이유가 있는데, 바로 2-8장까지의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족보에 특별한 구성 원칙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일단 2:1-2에서 제시되는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명단은 상당히 생소하다: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단과 요셉과 베냐민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며” 이러한 목록은 기존의 12지파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 낯선 것임에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스불론과 단이 포함되어있지 않으며, 그 순서도 (차후에 1장을 다루면서 살펴보겠지만, 역대기의 족보는 상당부분 창세기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세기의 익숙한 그것과 다르다. 바로 이점 때문에 2-8장의 이스라엘 12지파의 족보는 특별한 구성 원칙이 있다고 상정할 수 있겠다. 이 족보는 일반적인 수순을 따르지 않는다. 물론, 지리적인 영역에 따라서, 즉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나열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실상 2-8장에서 지파의 순서는 2:1-2의 그것과 또한 다르기 때문에, 역대기 저자의 특별한 문학적 기교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저자의 특별한 구성 원칙은 과연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12지파의 족보를 소개하되, 중점을 두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구성과 정보의 양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즉, 저자는 유다와 레위 그리고 베냐민을 중심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유다는 2장 3절에서부터 4장 23절에 이르기까지, 레위는 6장 1절에서부터 81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냐민은 8장 1절부터 40절에 이르기까지 그 위치와 분량이 의미심장하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저자는 방대한 족보의 구성을 처음과 중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리한다는 점이다. 이는 또한 특별히 삼등분의 구성 방침까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앞에서 역대기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는 점을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볼 때, 역대상 1-9장의 족보에서 6장 즉 레위의 자손들에 대한 족보는 상당히 연구의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도 족보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추측하자면, 아마도 역대기 자체가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가 성전이라고 할진대, 만약 그렇다면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을 위해서 저자는 보다 관심을 두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하겠다. 그런데 사실 옷이라는 것이 첫눈에 보기에 하나의 전체로 보일뿐, 어떻게 잘 짜였는지는 쉽게 알아낼 수 없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세밀하게 부분을 읽어내려 가야할 필요가 있다. 연구자는 6장의 1-30절까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이후의 부분들은 그들의 사역과 지역 정보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상 6:1-30에서 그려지고 있는 레위의 자손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 대상 6:1-15; (2) 6:16-30. 그러나 보다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세 부분으로 나눌 수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 6:1-15; (2) 6:16-19a; (3) 6:19b-30이다. 이를 보다 자세하게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1) 6:1-15: 레위의 세 아들(게르손, 그핫, 므라리) 가운데 그핫의 25대 족보.
레위 |
그핫 |
아므람 |
아론 |
엘르아살 |
비느하스 |
아비수아 |
북기 |
웃시 |
스라히야 |
므라욧 |
아마랴 |
아히둡 |
사독 |
아히마아스 |
아사랴 |
요하난 |
아사랴 |
아마랴 |
아히둡 |
사독 |
살룸 |
힐기야 |
아사랴 |
스라야 |
여호사닥 |
여호수아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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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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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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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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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10 |
11 |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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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16-19a: 레위의 세 아들들의 비교적 간단하고 균형 있는 족보
게르손 |
그핫 |
므라리 |
립니/시므이 |
아므람/이스할/헤브론/웃시엘 |
말리/무시 |
(3) 6:19b-30: 레위의 세 아들들의 비교적 자세하고 균형 있는 족보
게르손 |
그핫 |
므라리 |
립니 야핫 심마 요아 잇도 세라 여아드래 |
암미나답 고라 앗실 엘가나 - (사무엘) 에비아삽 얏실 다핫 우리엘 웃시야 사울 |
말리 립니 시므이 웃사 시므아 학기야 아사야 |
이러한 족보를 해석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므로 연구자는 비교적 간단하게 특징만을 지적해보는 수준으로 정리하도록 하겠다. 앞으로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표 1>을 볼 때, 일단 중요한 특징이라면 레위와 사독 사이에 12대가 있으며, 사독과 여호수아 사이에 12대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족보에서는 여호수아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학 1:1,12; 2:2에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다룬 바와 같이 대상 9장이 포로기에서 돌아온 상황을 상정하고 있다면, 그리고 역대기의 주요한 주제가 성전이라고 한다면, 비록 역대기에서 여호수아가 들어있지 않더라도, 제2성전 건축을 이끌었던 여호수아는 족보에 추가해서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건, 이렇게 볼 때, 두드러진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13대 손인 사독이라고 하겠다. 이는 아마도 제1성전을 건축하였을 당시에 존재했던 사독이었을 것으로 보인다(왕상 4:4). 사실 이는 레위의 출애굽부터 시작하여 제1성전 시기 동안의 480년(왕상 6:1)과 제2성전 시기까지의 480년과 맞아떨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중앙’을 집중하는 특징은 이후의 족보 <표 2>와 <표 3>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비교적 간단하게 제시된 족보에서도 가운데 부분은 유독 관심이 많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표 3>에서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그핫의 자손에서 사무엘이 등장하는 장면은 상당한 반전이기도 하다(6:28; 삼상 8:2). 이렇게 ‘중앙’이 강조되는 특징은 대상 6장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삼등분의 구성 법칙을 통해서 잘 짜여진 그림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준으로 다른 본문들도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자는 앞에서 9장이 상당히 간단하게 삼등분의 정리를 보여준다고 언급한 바 있다(유다, 레위, 베냐민). 그렇다면, 1장도 역시 삼등분으로 짜여져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연구자가 주석서들을 찾아보았지만 나열식의 배열 정도로 그치고 있을 뿐이었다.) 연구자는 몇 번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역대상 1장의 족보를 다음과 같이 도식화시킬 수 있었다:
1:1-23 |
1:24-33 |
1:34-54 | |||||||||
1-4 (목록) |
5-23 아담의 후손 |
24-27 (목록) |
28-33 아브라함의 후손 |
34 (목록) |
35-54 에서의 후손 | ||||||
아담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 셈/함/야벳 |
야벳 5-7 |
함 |
셈 17-23 |
셈 아르박삿 셀라 에벨 벨렉 르우 스룩 나홀 데라 아브람 (아브라함) |
이스마엘의 후손 28-31 |
(그두라) 의 후손 32-33 |
이삭 의 후손 에서/ 이스라엘 |
이삭 에서/이스라엘 |
에서 35-37 |
세일 38-42 |
에돔 43-54 |
위의 <표 4>는 앞에서 설명한 역대기의 구성 원칙에 잘 들어맞는다. 즉, 삼등분으로 되어있으며, 그 중에서 중심부가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물론 재귀적으로 깊이 들어가면서까지 중심부가 핵심이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이상에서 전반적으로 역대상 1-9장의 구조적인 면을 정리해보면, 무엇보다도 잘 짜여진 삼등분의 구조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1장 |
2-8장 |
9장 |
아담 - 아브라함 -에서 <표 4> |
이스라엘의 12지파 유다(2장) 레위(6장) 베냐민(8장) |
간략화 된 정리 유다-레위-베냐민 |
6:1-15 레위-12대-사독-12대-여호수아 <표 1> |
3. 결론
이상과 같은 정리는 그 자체로 말하지 않더라도 신학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간단하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세계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역대기의 족보가 아담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서는 1:1-4과 1:24-27에서 접속사(ו)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매우 간결하게 언급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것이 함의하고 있는 성서의 전통은 대단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이름 석자 그대로 표기하면서, 저자는 침묵의 미학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태 정 태 세 문 단 세 ...’하면서 조선왕조를 음미하지 않았었는가? 역사는 이렇게 간결한 특징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지금까지 지속될 수 있었던 근본원인으로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2)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신 족보가 있다. 족보는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사실 족보를 통해서 뛰어난 자들도 간간히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세상에 처음으로 영걸한 자였던 니므롯은 구스의 아들이었고, 이는 함의 자손이었다. 또한 여기에는 블레셋 족속도 나왔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셈의 자손들을 사용하셨다. 그들의 업적은 (본문에 따르자면) 전무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셈을 통해서 아브라함을 이끌어 내셨다. 아브라함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실 역대상 1장만을 본다면, 아브라함에 대한 정보가 가장 미흡하다. 에서의 자손은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이다(35-54절). 그리고 에서의 자손들에게서는 왕들이 많이 나오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평가는 역대기 저자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사용 받는 것으로, 혹은 선택된 것으로 만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하겠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에, 어떠한 평가를 받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과연 누구에게 평가를 받는 것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3) 족보의 치밀한 구성은 무너진 세계에 새질서를 부여하는 하나의 밑그림으로 생각할 수 있다. 분명히 역대기의 사회는, 9:1이 보여주고 있는 바와 같이, 포로기 이후의 혼동 그 자체였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잿더미 위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늘만 볼 뿐이다. 그러나 역대기의 저자는 흩어진 공동체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다. 그것은 바로 역대기를 통해서 두드러지게 강조되고 있는 성전 중심의 예배 공동체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신적 해결의 메시지였다. 그렇기에 저자는 결국 제사장 사독에게 초점의 초점을 맞추면서, 지금 존재하지는 않는 사람이지만,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 사독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고 요구했던 것이다. 이 말은 계급을 나누는 선언은 아닐 것이다. 계급의 차이는 없으되 직능의 차이는 존재하는 차원에서, 더 이상 하늘만 바라보지 말고 쳐진 무릎에 힘을 줘서 일어나 새 역사를 만들라는 도전이라고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