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구. [역사와 이데올로기(2004)]
강철구. 「역사와 이데올로기: 서양 역사학의 유럽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 서울: 용의 숲, 2004
모든 사회가 이익집단들 간의 ‘보이지 않는’ 전쟁터로 여겨지게 된 것은, 아마도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대통령선거 때문이 아닐까 한다(불행하게도 이들 사회는 상당히 조악한 것들뿐이어서 ‘눈감고 아웅’ 하는 식으로 국민들을 기만한다). 어떠한 사건을 찾아내면서 혹은 만들어내면서, 이들 집단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다 극대화한다. 언제나 놀라운 점은 결코 상대방을 ‘전멸’시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상대방’이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므로, 차라리 자신들이 활용할 수 있는 범위내로 적절하게 처리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한 전쟁터는 칼이 아니라 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얼마나 치사한 것인지, 하지만 상대적으로 내가 소속한 집단에게는 얼마나 궁극적인 것인지를 이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로, 기존의 전통적인 사관의 해악을 절감하고, 그 문제점을 상세히 지적하고 비판함으로서 ‘역사의 민주화’를 실현시키고 있다. 저자는 상아탑에만 갇혀있지 않은 실천적 역사가인 것 같다(저자의 블로그: http://blog.daum.net/kangch07).
저자는 역사, 그러니까 미래까지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우리들의 실제적인 삶이 사실은 유럽인들에 의한 거대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거짓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헤겔과 마르크스, 그리고 베버와 같이 절대적인 철학자들의 사상이 사실은 (그들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유럽중심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것이었으며, 이상할 정도로 가속도가 붙은 사회발전의 원인들에 오직 유럽의 것들만 집어넣고 다른 요소들을 제외한 불공평 거래였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유럽형 아파트에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연일 유혹하는 광고 앞에서...
계속해서 저자는 고고학과 관련해서, 학문의 순수성이 정치 앞에 얼마나 약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 편리하고 보기에 멋진 물건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럽인들은 역사 이전시기까지 뒤져가면서 자신들의 더 이른 출발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과학은 아프리카 문명의 존재를 밝혀내면서 유럽인들의 오만함에 침을 뱉는다. 이것은 헬레니즘을 다루는 부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제우스와 비너스가 멋지고 아름다운 조각으로 탄생되어 유럽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을 때, 길가메쉬가 지하에서 웃었을 것이다. 「블랙 아테나」는 꼭 읽어볼 참신한 내용인 것 같다.
“봉건적인 바다에 비봉건적인 섬”이라는 중세 도시의 평가는 거짓이다. “도시는 어디서나 도시일 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재치 있게 유럽 역사가의 말을 무효화시킨다. 중세를 넘어 유럽에 불어 닥친 르네상스 역시 부르크하르트의 지나친 상상력의 거품을 뺀다면, 그것이 역사적 신화였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지구인들의 최대 치부를 드러낸다. 바로 인종주의와 식민주의이다. 사람들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너무나 오랫동안 알지 못해왔다. 왜곡된 동거가 신의 뜻이라는 축복 아래에서 모든 방면의 과학 기술의 응원을 받으면서 실행에 옮겨졌다. ‘결과가 진리이다’라는 유럽의 자랑에 대하여, 저자는 판사의 위치에 서서, 때린 사람의 자기변명(내가 너를 강하게 만들어 준거야)에 준엄하게 심판한다.
“문명과 야만이 발전과 저발전으로 대치했을 뿐이다(423).” 이데올로기는 계속된다.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발견이나 현재의 의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책임이라는 길이었음을 배우게 되었다. 저자는 기존 학자들의 논지를 무너뜨리는데 놀라운 논리력과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베버가 실수했듯이,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서 특정 시대만의 연구를 가지고 일반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며(228), 부르크하르트가 고백했듯이, 대중이 원하는 것을 말해야하는 역사가의 운명은 참으로 불쌍한 것이다(263). 저자는 시대를 제대로 파악만 한다면 현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265, 279, 285, 291, 324). 한편, 서양사에 있어서 기독교의 책임은 곳곳에서 제기된다(339, 368, 417).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며, 성서해석의 역할이 다시금 강조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부분에서 성서연구에 도움이 되는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유럽인들의 우위를 위해 고대로 역사 확장을 했듯이, 출애굽전승과 신명기적 역사와 상관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본서는 기존 역사학의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써 새로운 역사관의 정립의 필요성만을 제시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 목적은 충분히 제시된 것 같다. 이제 ‘진짜’ 역사가 나와야 할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객관적인 역사서술’이어야 할 것이며, 그것은 사실 꿈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A’는 ‘A가 아닌 모든 것’에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세상은 아인슈타인 이후로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을 넘어 ‘역사서술의 상대성’으로 자리 잡지 않았는가? 누가 뭐래도 독도는 우리땅이며, 또한 우리가 아무리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우겨도 저들에게는 자기네 땅이라고 하듯이... 결국, 그렇다면 저자가 새롭게 세우고자 하는 역사관은 무엇인지 「역사와 이데올로기」 2권이 기다려진다.
=======================================================================================================
같이 읽어볼 책으로 다음 두권이 계속된 긴장감을 증폭시킬 수 있는 것 같다.
영국 셰필드 성서학과 교수인 David Clines가 이데올로기 비평으로 성서를 해석한 '영감있는' 책
역시, 영국 셰필드 성서학과 교수인 키스 W. 휘틀럼이 이데올로기 역사학을 비평한 책
자세한 내용은 http://blog.daum.net/prophets/7752914를 참고.
========================================================================================================================
다음은 간단하게 [역사와 이데올로기]의 요약이다. 개인적 자료로 남겨둔 것이므로,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읽어보는 것이 낫다.
<내용요약>
1. 유럽중심 이데올로기
유럽: 로마 가톨릭이 무너지며 등장한 세속적 대치물(15-16세기)로 18세기 사상조류에 기초를 마련해(계몽사상), 정치적․지리적 연합체를 이룩한 근대적 산물(32-33)로 ‘근대의 우위’ 이데올로기(57). 이는 예외주의(exceptionalism)로 인간에 의한 ‘기적’으로 묘사된 진보사관이자 독특한 지위를 부여하고(34), 오리엔탈리즘은 유럽의 개념으로 비유럽을 평가하는 것으로 텍스트로 상대화함(36). 결국 비교성과의 우위를 해석(39ff).
이는 철학적으로, 헤겔의 ‘자유의 이념’으로 이성으로 자연을 극복하는 유럽의 우위성(43)과 마르크스의 ‘평등의 확대’를 기반으로 봉건주의를 경험치 못한 아시아를 폄하하고(47), 베버의 유럽의 합리성 대(對) 비유럽의 전통/권위성으로 대결시킴(49). 그러나 아시아를 모든 시대별로 똑같다고 접근하는 것은 문제(51)
유럽중심주의 역사학의 구조: 근대 우위를 고대로 확장하기, 즉 그리스․로마로 출발함(58); 은폐․과장․합리화로 세계화를 이끌어냄(63); 헬라보다 그리스 중요성 높임(64)
결국, 근대성의 개념검토 필요: 시민권, 국가, 개인, 사회정의 등(75); 사관정립과 거대이론에 대한 도전 필요(79)
2. 고고학
진화론으로 서열화된 문화현상으로 규정(92)
그리스 문명을 오리엔트에서 분리시키는 고고학/문헌학에 기원했던 고고학(100)
proofarchaeology(102)
나폴레옹의 이집트 정복(112)
인류의 최초 발생지 아프리카: 빙하기의 기후변화의 영향이 적었던 이유(128)
문명시대에서도 철기문화는 이집트보다 앞서있다는 평가(130)
신고고학(과정고고학): 1960년대 미국, 유물들의 지리적 분포도로 집단의 문화 영역을 파악한 후에 분포의 시기적 변화를 집단의 이주나 문화 전파의 결과로 보는 견해로 객관성을 자신했다. -> 탈과정고고학(1980년대): 물질문화는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구조와 상징적 부호에 의해서 좌우된다. 그러므로 상대주의적이다. (133f)
3. 헬레니즘
“헬레니즘은 문화사의 여러 위기 국면에서 서양의 각 사회나 사상가들이 때로는 서로 모순적인 목적을 위해 무엇인가 자유롭게 빌려오는 담론이다”(148)
그리스는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가(아리스토텔레스는 아랍세계의 철학자로 알려졌을 정도), 18세기 후반에 들어 전환점을 맞는다(151).
페리클레스의 연설: 역사가의 삽입이며 이는 오랜 관습 -> 역사학이 발생초기부터 서사시나 연극과 연결되었기 때문(155f): 과거의 이상화-정치제도의 완벽한 뿌리내림을 위해
「블랙 아테나」: 고고학자나 고대사가들이 학문의 방법이나 동기에 대해 재검토하도록 자극했다. ... 고대에 지중해 연안이 하나의 통합된 문화적 세계를 형성했었다는 암시일 수도 있다(180f).
그리스의 문화는 고상한가? 나체는 영웅적 행위(경기)할 때 남자들이 입은 ‘옷’이다. 남성에게만 허용되는 남성우월주의적인 사회적 장치로, 도기에 옷 벗은 그리스인과 옷 입은 야만인으로 등장하기도 한다(188).
4. 유럽의 중세도시, 자유
역사가들은 경제를 중심으로 조직되는 현상을 도시로 규정했다(봉건적인 바다[농촌]에 비봉건적인 섬[도시]). 그래서 자유가 발생할 수 있었다는 논리이다(피렌느; 196, 브로델; 200).
그러나 도시와 농촌의 이분법은 무리이며, 결국 도시는 농촌 안에서 생각해야하는 대상이다(204). 연구의 결과, 중세의 도시민들에게 자유는 거리가 먼 이상일 뿐이고(영국; 210), 경제적 요인보다는 정치적 요소가 더 크게 작용했다(프랑스; 214).
이탈리아도 과두제는 극소수에게만 해당된 것으로 도시만의 자유는 아니다(220). 도시적 요소는 항상 봉건적 요소와 섞여있다(독일, 224). 이슬람은 기존 견해와 달리 상업관습이 발달(227), 중국은 정치와 상관없는 도시가 많았다(229).
유럽의 도시화는 식민지 확장 이후 17세기이다(235). 세계는 보편적이며 도시는 어디서나 도시일 뿐이다(239).
5. 르네상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르네상스는 근대의 출발점(255ff). 현대를 위한 르네상스 연구(247). 역사를 예술/상상력으로 접근(253).
비판: 국가는 예술이 아닌 정치적 실재이다(258); 개인의 등장은 소수의 개인성의 일반화일 뿐이다(262,280); 인문주의(고대의발견)는 이탈리아 시대에 맞는 정책일 뿐 철학은 아니었다(265); 자연과학은 물활론적 세계로 중세적 사고에 머물러있었다(267); 신분은 유지되었고, 여전히 종교적 사람들이었다(272); 원근법은 릴리에보 효과를 따르고 있다(285).
새로운 인식: 근세의 특징은 17세기에 나타난다(289); 르네상스가 비유럽을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290); 부르크하르트의 르네상스는 역사적 신화이다(291).
6. 인종주의
500년간의 식민이념: 우열-지배합리화-인간의 도구화(297)
인종: 생물학적으로 의미없다(299). 사회학적으로 사회환경에 따라 변할 뿐이다(300).
고대사회엔 인종주의는 없었다(303).
중세엔 유대인에 대한 종교적 인종주의(307)와 세계의 발견으로 ‘야만인’ 규정(308)
신의 뜻 아래에서(311,313) 그리고 과학적 이유(314,316), 그리고 언어학적으로(317) 식민화를 지지함
다윈: 진화에 의한 단일인종설의 변이(322) -> 스펜서의 사회적 다윈주의(적자생존/생존투쟁, 324).
반유대주의(328)는 히틀러에 의해 유대인-볼셰비즘음모로 이어져 홀로코스트를 남김(331)
현대는 문화적 인종주의로 가장되었지만 여전하다(335).
결국 인종주의는 과거역사의 정당성을 말하는 이데올로기(339).
7. 식민주의
1960년대 이후 더욱 교묘한 간접지배로 바뀜(345).
식민지 무력화 -> 비공식적 제국주의(협력집단은 거짓, 406) -> 신제국주의(원인제공/주변부이론은 거짓, 유럽의 산업화로 인한 신중상주의의 경쟁일 뿐)
식민주의 이데올로기는 선교라는 정당한 지배(스페인, 365)와 토지개발의 자연법 논리(중국, 367) 등으로 정신적 해방자(371)로 역사적 사명이라고 자평하며, 문명의 복음과 세계를 위한 자원 개발로 이데올로기화함.
식민지배는 “정치를 탈정치화하고 모든 인간사를 적절한 행정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373)
아프리카의 경우와 같이 ‘식민지가 만든 국경은 매우 강인한 힘을 가진다’(376)
식민경제 메카니즘: ‘식민지인들이 조세, 외국무역, 통화에서 주권을 상실하고 식민 모국의 경제에 밀접하게 통합되는 것’(378) 즉 가혹한 조세(부역/전쟁) -> 노동시장의 확대(인구감소) -> 전통 촌락사회의 붕궤(토지약탈): 결국 사회는 재구성되며, 언어(411), 교육(415), 종교(417), 정체성상실(419) 등으로 전통은 해체된다.
현재: 문명과 야망이 발전과 저발전으로 대치될 뿐이다(423).